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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의 강북 싼티탐 vs.
치앙마이의 강남 님만해민

by 나나꽃

일요일 아침.

치앙마이 천주교 피정센터의 성당에서 미사를 본 뒤 가까운 님만해민으로 향했다. 배고프다..... 아케가 추천한 7개의 식당 중 유일하게 가이드북 추천과 겹치는 식당 꾸어이띠여우 땀릉으로 결정. 기대가 되었다. 10시 30분. 손님이 많지 않을 시간이니 느긋하게 맛있는 국수를 즐길 수 있겠군. 그런데..... 꾸어이띠여우 땀릉은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오전 8시 30분에 문을 여는 집인데, 안내문도 없이 자기들 마음대로네?


모든 치앙마이 가이드북에 필히 가봐야 할 곳처럼 되어 있는 ‘SS1254372’를 떠올렸지만 그만두었다. 따갑고 독한 햇빛을 받아내며 10분이나 걸어갈 의지가 없었다. 게다가 이 집은 우주선을 닮은 건물과 갤러리 숍, 화려한 플레이팅 때문에 인기가 있지 않나 싶을 만큼 음식 맛에 대해서는 박한 평가가 적지 않다. 인스타를 장식하고 싶다면 강추.


님만해민 로드의 시작점 ‘원 님만’이라는 유럽풍 쇼핑몰이 바로 옆이라 구경삼아 들어갔다. 마음을 사로잡는 예쁘장한 상점들을 따라 엔틱한 타일 바닥을 걸어간 끄트머리에 푸드코트가 있었다. 배고프다..... 늦게 문을 여는지 장사를 시작한 부스가 몇 개 없었다. 타이푸드 부스에서 치킨샐러드밥을 주문했는데..... 아주머니, 이걸 먹으라고 내놓으신 거예요? 일회용 용기에다 보온밥통에 오래 묵힌 쿰쿰한 밥 냄새하며 조미료 범벅인 샐러드하며, 이 정도면 정크 푸드보다 나을 게 없었다. 양이 놀랍도록 적어 다행이었다. 지금 장난하심?


가방 안에 있는 빵이나 꺼내 먹을걸. 다니다가 출출할 때 먹으려고 넣었던 게 뒤늦게 생각났다. 싼티탐 로컬 식당 음식보다 훨씬 비싸고 훨씬 맛없는 음식을 아귀아귀 입에 퍼 넣었다. 배고파 먹는다, 돈 아까워, 유럽풍 건물에 있음 뭐해, 밥이 이 모양인데. 밥알과 함께 불만을 씹어댔다. 부스 앞에서 메뉴 사진을 살피는 모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맛없어요. 마음속 외침이 들렸는지 모녀는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식사는 망했으니 커피로 서러운 위를 달래자. 멀지 않은 곳의 Restr8to Lab으로 직행했다. 치앙마이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중 하나인 Restr8to의 분점이었다. 음, 과연. 야외 테이블이 낭만적인 카페를 보자마자 꽉 뭉쳤던 마음이 풀렸다. 가로수길이나 연남동 같은 곳에 가면 왠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손님을 사무적으로 대하는 직원, 감탄스러운 라떼 아트 때문에 ‘satan latte’를 주문했는데 흔하디흔한 나뭇가지와 이파리 그림이 그려져 나온 라떼, 치앙마이에서 최고로 비싸다고 확신할 수 있는 라떼 가격(스벅은 빼고), 맛은 괜찮지만 '아주'는 아닌, 가성비 말고 절대평가로 해도 싼티탐 아카아마나 BULOV의 라떼가 아트나 맛 모두 위였다(양이 많다는 것과 나무 컵받침은 맘에 들었다). 야외 테이블에서 정수리로 햇빛을 받아내며 엽서 한 장 쓰고 바로 나왔다.


님만해민에서 마야몰로 건너왔다. 마야몰 5층 공유작업공간 CAMP에서 간만에 열일하면서 바닥을 파고 들어갔던 기분을 만회했다. 해가 지고 님만해민을 한 바퀴 돌았지만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치앙마이의 강남 같은, 그냥 상업지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곳 님만해민. 나에겐 그랬다.


싼티탐 숙소로 돌아오니 강남에 있다가 강북 나의 집으로 돌아온 딱 그 느낌. 우리 동네가 좋다! 짐을 내려놓고 동네 로컬 식당에 가서 핫한 원님만의 푸드코드 음식보다 싸고 몇 배 맛있는 야채볶음밥에 달걀프라이를 추가해 먹었다. 너무 맛있잖아!


강북 태생이고 강북의 정서가 맞아서 그런지, 치앙마이의 강남 님만해민보다 치앙마이의 강북 싼티탐이 오래 편하게 입은 옷처럼 익숙하고 편하다. 이렇게 이국에 와서까지 강북 의식이 발동하는 일이 유쾌하지는 않다. 품위 없는 자본주의는 어디에서나 피곤한 것이기에. 강남이라고 다 싸잡아 품위 없다고 할 수 있냐, 항의할 사람들이 있겠다. ‘다’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난 강남 잘 모른다(얼마나 가봤어야 말이지). 강남 스타일이 내 스타일은 아닐 뿐.


서울의 강북에서도 가장 서민적인 동네 우리 집 근처, 10년 가까이 커피값을 올리지 않고 네다섯 시간을 앉아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카페 오늘’의 정말 맛있는 카페라떼가 생각나는 밤이다.


* 아 참, 밤에 보는 님만해민의 커다란 나무 가로수길 'WHITE MARKET'은 '갬성'이 끝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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