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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를 즐기는 법

by 나나꽃

나는 여자를 흉내 내고 싶었지만 잘 할 것 같지 않았다. 차라리 그 풍경을 바라보는 게 더 나았다.

여자를 도와주고 싶어 시작된 일이었다.


챙이 있는 러블리한 모자와 원피스 차림. ‘곱다’는 말이 어울리는 여자였다. 치앙마이에 온 지 며칠 안 되었다며 영어 미사에 늦어 밖에 있었다고 했다. 여자는 한인 미사가 있는지를 물었다. 평일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정보는 아니라 휴대폰으로 홈페이지를 찾아보았다. 한인미사는 안내되어 있지 않았다. 짧게 인사를 하고 바로 헤어졌다. 거리를 두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수십 미터 뻗어 오른 나무들 사이를 거닐었다. 넓은 정원 가장자리의 작은 건물에서 한국인들이 나오는 게 보였다. 자동차 트렁크에 무언가 커다란 짐을 싣는 남자에게 인사하고 물었다.

“안녕하세요. 한인 미사는 언제 있나요?”

여자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이미 성당을 떠난 게 아니라면.


남자는 코비드 때문에 한국 신부님이 귀국한 이후로 한인 미사는 없다고 했다. 성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인 커뮤니티를 소개하며 그는 야유회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자동차로 10분쯤 걸리는 훼이 뜽 타오 호수로 간다고 했다. 가보고 싶던 호수였지만 머뭇거렸다. 나 이럴 때 낯을 가리는 사람이었지, 자각하는 순간 나와 비슷할 것 같은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생각났다.


여자는 성모자상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여기 한인 분들 호수로 야유회를 간대요. 같이 가실래요?”

“좋아요.”

기대하지 않았던 대답. 경쾌했다. 모자 챙 아래로 얇게 쌍꺼풀 진 눈이 깜찍해 보였다. 야유회를 제안한 남자가 자동차 문을 열고 손짓했다. 꽤 여러 대의 자동차가 성당을 빠져나갔다. 아, 이건..... 조용히 있기엔 더 나을지도 몰랐다.


한 바퀴 걸어서 돌면 한 시간쯤 걸리지 않을까. 호수는 불규칙한 곡선을 그리며 넓게 펼쳐져 있었다. 호수 건너편으로 길게 이어진 대나무 수상 방갈로가 보였다. 호수를 따라 걷다가 방갈로를 빌려 간단히 음식을 시켜 먹고, 호수를 바라보다가 잠깐 낮잠도 자고 싶었다.


방갈로가 없는 공터에서의 야유회. 호수는 가까이 있으나 멀었다.

초록색 작은 가스통과 연결된 가스레인지에서 고기를 굽고, 바게트 샌드위치에 넣을 패티도 굽고, 토마토와 양상추를 썰고..... 접이식 테이블을 펼치고, 일회용 종이컵과 종이 그릇을 나누고.... 명랑한 야유회였다.

원피스 여자는 토마토를 자르고 고추를 썰며 생기 있게 어울렸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깍듯한 예의를 갖추면서도 잘 웃고 잘 먹었다. 나는 여자를 흉내 내고 싶었지만 잘 할 것 같지 않았다. 차라리 그 풍경을 바라보는 게 나았다.


호수는 가까이 있으나 멀었다. 하지만 야유회는 방갈로에 들어가 호수를 바라보는 게 아니었다. 호수가 있는 곳에 자리를 펼치고 준비해온 음식을 먹으며 곧 잊어버려도 될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고 웃음꽃을 피우는 것이었다. 치앙마이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다음에 갈 훼이 뜽 타오 호수에선 호수를 따라 걷다가 방갈로를 빌려 간단히 음식을 시켜 먹고, 호수를 바라보다가 잠깐 낮잠도 잘 것이다. 그 호수는 목적에 따라 다른 호수가 될 수 있다. 이전의 호수도, 다음의 호수도 나쁘지 않은 하루의 기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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