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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의 나무들

by 나나꽃

“치앙마이에 살았다” "치앙마이에서 지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치앙마이의 무엇을 떠올릴까. 란나 왕조의 옛 수도다운 눈부신 사원들? 마음을 사로잡았던 매력적인 카페들? 하루도 빠짐없이 ‘먹방’을 하도록 만들었던 버라이어티한 음식들? 길고긴 워킹 스트리트에서 펼쳐지는 야시장과 각종 마켓? 교복 입은 학생들부터 노인들까지 다 타고 다니며 거리를 누비는 오토바이? 나는 이 모든 것에 우아하거나 경이로운 배경이 되었던 야생적인 나무들을 떠올릴 것 같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오토바이 소음과 매연 속에서도 피로가 쌓이지 않는 것은 어디에나 있는 나무들 덕분이다. 사정없이 고막이 할퀴어지고 목이 깔깔해졌어도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서면 초록의 나무들과 새소리가 귀를 달래주고 눈을 씻어준다. 공원이나 산이 아니라도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나무와 식물들이 있다. 외출을 하고 싶지 않은 날도 골목을 따라 저녁 산책만큼은 꼭 하는 이유는 어느 집, 어느 골목에서나 나무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모든 골목과 모든 집들이 이처럼 풍성한 풍경을 가진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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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값에 인테리어 값이 들어가 있을 모던한 감각의 카페보다, 좀 어수선해도 아무렇게나 자란 나무들이 가지를 축축 늘어뜨린 카페가 좋다. 치앙마이에서 연남동이나 가로수길 카페를 찾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구글맵에서 가볼 만한 카페를 찾을 때, 네 개 이상의 별과 함께 고려하는 것은 초록의 나무가 주요 배경인 사진이다. 치앙마이에서 나무가 없는 카페는 일단 패스.

나무가 있는 카페.jpg

아, 너무나 평화로웠던 카페를 깜박했다. 란나 아키텍처 센터 안의 카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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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시장과 야시장, 노점이 늘어선 거리를 더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몇 백 년 그곳에 있었을 나무들과 사방으로 가지를 키워 나무 중의 나무로 자란 키다리 나무들이다. 자리값 그 이상의 멋스러운 값어치를 더하는 나무들이 없다면? 아마도 야시장과 노점 거리는 한가해지지 않을까.

식당이나 행사장에서도 얼른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게 만드는 건 십중팔구까지는 아니고 십중칠팔은 나무들이다. 이보다 더 멋진 아웃테리어, 이보다 더 훌륭한 무대가 어디 있을까.


나무가 있는 시장.jpg


배경이 되는 나무.jpg


나무들에 영이 깃들어 있다는 느낌에 오싹 움츠러들기도 한다. 단지 줄기와 뿌리 끝의 생장점에서 열심히 세포분열이 일어나 부피를 늘린 것이라고 하기엔 깊고 깊은 숨결 같은 게 느껴지는 나무들이 있다. 나이테 하나하나에, 펼쳐낸 줄기 하나하나에 수많은 이야기를 새기고 담아냈을, 몇 백 년 나이의 나무들이다. 어른 여러 명이 팔을 벌려 둘러싸야 할 만큼 커다란 나무 앞에 불단을 세우고, 때마다 색동의 띠를 친친 감아 장식하는 것도 그 나무에 깃든 영을 위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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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사흘간, 치앙마이에서 꽃 축제가 열린다. 사실 나는 꽃축제에 가져다놓은 무더기로 만발한 꽃들보다 계절에 따라 꽃을 피우는 동네의 꽃나무들에 더 감탄한다. 벚꽃축제에서 촘촘히 줄을 서 폭발하듯 꽃잎을 터뜨리는 벚나무들보다 우리 동네 산책로에서 화사하게 꽃을 피우고 점점이 꽃잎을 떨어뜨리는 벚나무들이 더 예쁜 것처럼.

그래도 올드시티의 농부악핫 공원의 꽃축제엔 가보려 한다. 지난달 꽃축제 준비로 문을 닫은 것도 모르고 갔다가 허탕치고 돌아온 농부악핫 공원. 그곳의 나무들은 꽃 천지가 된 공원에서 신이 나 초록의 숨결을 마음껏 뿜어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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