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의 다양한 모습들

by 나나꽃

치앙마이는 대기오염 수치 세계 최악으로 잿빛이 되었다. 1월의 깨끗하고 차가운 파란색 하늘은 없다. 하지만 꽃들은 더 많이 피었고 도드라지게 예쁘다. 어느 하루 느꼈던 치앙마이의 두 모습 같다.



수요일이 휴일인지 모르고 갔다가 헛걸음한 뒤 다시 찾아간 올드시티의 Kalm Village Chiangmai. 카페 겸 식당과 갤러리, 도서관, 의류와 공예품 전시 판매점, 워크숍을 위한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된 복합문화공간이다. 뷰도이 맨션과는 먼 거리임에도 꼭 다시 오고 싶었던 이유는 첫 방문에 동행했던 ㅇㅎ님의 한 마디를 빌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치앙마이에서 제일 좋은 곳 같아요.”


외관만으로도 내부가 기대되는 곳이었다. 조선시대 고관대작의 저택을 떠올리게 하는 기와지붕, 회색 벽돌과 티크 목재로 지어진 현대적 건축, 시원하게 오픈된 입구에 설치된 2층 높이의 설치미술 작품, 3층의 집 모양 목재 구조물과 거기 매달린 오색의 오브제들…….


내부는 기대 그 이상이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어느 공간이나 앉아 쉴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모두 다른 디자인적 요소를 가지고. 하늘까지 뻥 뚫린 안뜰에도, 방문객이 지나다니는 이동로에도, ‘Library’라 이름 붙여진(도서관이라 할 수는 없고, 란나 왕조 건축과 디자인 관련 책들이 인테리어의 한 부분을 담당하며 꽂히거나 놓여 있다) 쉬며 공부하는 곳에도, 이곳저곳 발길이 머무는 곳에도…….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낯설게 어울리는 배경처럼 흘러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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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겸 식당에서 신발을 벗고 라이브러리로 올라가는 나선형 목재 계단에 새겨진 나뭇잎들이나 화장실에까지 가져다 놓은 결코 허술하지 않은 작품들, 어디에 자리를 잡을까 자발적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 앉을 곳들의 유니크함……. 이곳이 정말 치앙마이에서 가장 좋은 곳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그 공간을 최고의 것으로 만들려 한 자부심이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꼭 고급한 재료를 쓰지 않더라도 치앙마이 사람들의 타고난 예술적 우월함은 종종 알아채곤 했는데, Kalm Village Chiangmai에서 그 정점을 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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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하듯 Kalm Village Chiangmai를 천천히 둘러보고 라이브러리 편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치앙마이에서 가장 독서에 집중했던 시간. 방석 몇 개를 등뒤에 받치고 비스듬히 누워, 유리벽 너머 화사한 꽃나무들이 그림 같은 올드시티의 고요한 골목을 가끔 내다보며 책을 읽었다. 뭔가 융숭히 대접받는 기분으로.


그 기분이 뭉개진 것은 바로 그날 선데이마켓에서였다. ㅇㅎ님이 보여준 꽃수 놓인 작은 천가방을 몇 개 사고 싶었다. 여행 선물을 하는 건 이제 촌스러운 일이지만 생각나는 이들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꽃수만큼 예쁘다는 노점상 아가씨는 찾지 못하고 보고 싶지 않은 풍경을 마주했다. 대체 이 나라에선 왜 미취학 아동들에게 생계형 노동을 시키는 게 아무렇지 않은 일인지…….


입구부터 분위기가 묘한 상가로 들어간 것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뭐 하는 곳일까. 각 부스마다 진열된 유리병들, 그 안에 들어 있는 녹회색 이파리들, 그로테스크한 장식, 평범치 않은 옷차림과 아우라를 지닌 사람들……. 대마초를 파는 상가였다. 지난해 대마가 합법화된 태국은 급속도로 대마 판매업소가 늘고 있다. 웨스터머들이 우글거리는 올드시티엔 대마잎 파는 곳을 쉽게 볼 수 있고, 현지인들이 많이 사는 싼티탐에도 하나둘씩 늘고 있다. 대마가 들어간 음료나 치약 같은 것은 세븐일레븐에서도 판매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대마를 하는 것에 별 거부감이 없다. 누구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니까. 잘은 모르지만 중독성도 없다고 한다. 실은 몇 번 대마를 해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기도 했다. 콜라 사러 슈퍼마켓에 들어가는 것처럼 대마 판매점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 몸에 어떤 반응이 올지 무척 궁금했다.

여튼, 대마족들이 모여드는 그곳에서 행상하는 여자아이를 보았다. 밤 9시 라이브 바, 그러니까 술집에 과자를 팔러 들어왔던 아이, 타패 게이트에서 소수민족 어린애들이 하는 장식 머리끈을 내밀던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유아였다. 그것과 똑같은 머리끈을 한 판 목에 걸고 작은 여자아이가 등받이 없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렇게 어린애가 왜 대마초 파는 곳에? 이유는 한 가지, 앉아서 쉴 소파가 있으니까. 땟국물이 흐르는 얼굴로 머리끈을 내미는 그 아이는 피곤에 지친 모습이었다. 수많은 여행객들이 오가는 선데이마켓에서 행상을 하다가 들어온 것 같았다. 묘한 음악 속에서 마냥 즐겁기만 한 대마인들은 누구도 이 아이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국제적 오지랖인 내가 머리끈을 사줄 수밖에.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어주니 그 아이도 힘없는 웃음으로 답했다. Kalm Village Chiangmai에서 치앙마이를 선망했던 나는 마음속으로 치앙마이를 욕했다. XX XXXX 이래도 되는 거야??


치앙마이에 머문 지 이제 두 달 반. 게으르게 살수록 시간은 빨리 간다. 어쨌든, 지금의 치앙마이는 나에게 복합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젊은이들이 경제의 주축이 되어 약동하는 치앙마이, 각종 마켓과 마사지와 음식과 예술적 영감을 주는 인프라가 강력하고 확실한 매력 있는 치앙마이, 하지만 한껏 보살핌을 받아야 할 아이들이 시장에서 행상을 하고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아야 하는(놀고 있는 게 아니다) 후진 치앙마이(인스타 성지로 부상한 카페 BOB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들이 넓은 주차장에 자가용을 세우고 부티 나는 옷에 나이키, 아디다스를 신고 카페로 들어와 사진을 찍고 수다를 떨다 간다. 굳이 알아보지 않아도 태국의 심한 빈부격차가 눈에 보인다), 디테일한 서비스와 함께 넘쳐나는 엄청난 비닐 쓰레기의 치앙마이, (특히 서양인들에게) 아양에 가까울 만큼의 친절함과 공손히 예의를 다하는 친절함과 도도함과 이따금씩의 무례함과 마음을 녹이는 순진무구함의 치앙마이…….


야, 야, 또, 또, 또,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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