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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37도의 열기가
영혼을 잠식한다

by 나나꽃

치앙마이에서의 3개월을 다 채우지 못한 채 이틀 앞당겨 귀국하게 되었다. 체력이 바닥났다. 햇빛에 꼼짝 못 하는 딱한 체력엔 낮 기온 37도, 38도까지 오르는 날씨가 유독했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는 게 아니라, 더위가 영혼을 잠식하고 그래서 불안해진다.


숙소 에어컨이 망가져 아침 7시부터 베란다 전면 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와 저녁까지 방을 온장고로 만드는 햇빛을 선풍기 하나로 방어하는 건 불가능. 그것마저도 밤 10시 이후엔 켜지 못한다. 옆 방 소년이 내 방 선풍기 바이브레이션 때문에 잠을 못 잔다고……. 주인 아케는 방콕에서 휴가 중이라 에어컨 수리를 요청할 수도 없다. 그의 컴백 날짜인 내일로 항공권을 예약 변경했다. 보증금은 받아가야 하니까. 겨우 이틀 일찍 떠나며 수수료 15만 3,000원을 지불했지만 시들시들 늘어진 채로 이곳에 버티고 있는 건 의미가 없다.


나흘 전 한밤에 병원 응급실엘 갔고 오늘 아침에도 병원을 찾았다. 그들이 해줄 수 있는 건 약 처방뿐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찬물에 샤워하는 것밖엔 없었다. 디테일한 영어 구사를 할 수 없어 한국어 통역사를 불렀는데, 하염없이 진료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통역보다 말벗을 해주었다.

치앙마이대학에서 부전공으로 한국어를 공부했고 한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는 26살의 청년은 치앙마이대학교 한국어과 교수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눈웃음에서 착함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 종이와 연필을 꺼내 짧은 편지를 썼다. 읽으면서 한국어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부러 어려운 어휘를 섞어 괄호를 치고 태국어 해석 대신 영어를 써넣었다. 편지를 받고 좋아하는 모습이 어린이 같다. 치앙마이의 20대는 정말 어린이처럼 순진하고 때가 타지 않은 듯 보인다.


의사를 만나려면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하나. 위급한 사람은 돌아가시겠다. 통역사 선생님에게 아픈 증상에 대해 한국어로 티칭을 했다. 기운은 없어도 입은 살아 있으니까.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메스껍다, 혈액순환이 안 돼 손발이 저리다, 입맛이 없다(‘밥맛 없다’의 또 다른 의미도 설명), 체력이 바닥났다, 멘붕 왔다...


‘한국어 → 태국어’ 번역기에 써서 보여주며 설명하니 내 휴대폰을 자기 폰으로 찍는다. 긴 시간 옆에 있어준 데 대한 보답이에요, 통역사 선생님. 진료 후 처방을 받고 수납까지 끝난 후 한국어 교수를 꿈꾸는 청년, 통역사 선생님을 응원해주었다.

“선생님, 잘 하실 거예요. 선생님 똑똑해 보여요.”

“감사합니다.”

또 착한 눈웃음. 여기 애들은 순수한 웃음으로 사람을 녹인다.


이제 어디로 가서 뭘 먹어야 하지? 입맛이 없을 땐 죽을 먹어야지. 죽은 국적 불문 아픈 사람들의 음식이니까. 참 신기하게도 석 달 가까이 한국 음식을 안 먹고 잘 지내왔는데, 몸이 안 좋으니 태국 음식은 전혀 먹을 수 없고 한국 음식만 생각난다.

택시를 타고 죽을 잘 하는 ‘싼티탐 브렉퍼스트’로 갔는데, ‘쪽’이라고 할 걸 ‘라이스 스프’라고 잘못 얘기했다. 육수에 밥을 말아 온 직원에게 “콥 쿤 카~” 하며 속이 상했지만 남김없이 먹었다. 기운을 내야지. 태국 식당의 1인분은 양이 얼마 안 되는 데다 특별한 향이 없어 괴롭지 않았다.


좌석 하나 차지하고 하루 종일 시원하게 있을 수 있는 MAYA의 코워킹스페이스 CAMP로 왔다. 요즘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무조건 택시. 햇빛 속에 걷는 게 공포스런 일이 되었다. 기온이 37도, 38도까지 오르는 날에 소매 없는 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태연히 거리를 걷는 사람이나 공원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보게 된다. 얼마나 건강하면…… 근데 난 왜 이 모양? 열등한 인간인 것 같아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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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싼티탐 아카아마가 아니라 대한민국 우리 동네 ‘카페 오늘’이다. 디귿 자 엎어놓은 모양의 나무 기둥 입구도 없고, 야외 테이블도 없고, 축축 늘어진 나무들도 없다. 순한 어린이들 같은 스태프들도 없다.

MAYA CAMP에서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한 채 ‘우울해진다’에서 멈추었고, 다음날까지 겨우 버티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옆에선 카페 단골 아줌마들이 거침없는 목소리로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다. 아카아마의 손님들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수다 떠는 아줌마들이 불편한 게 아니라, 갑자기 낯설다.


서울에 도착해 꽃망울을 터뜨린 산수유와 벚꽃을 보고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 시원한 공기라니.

아침 8시 반 공항철도 창밖으로 지나가는 잿빛 도시(때맞춰 흐린 날씨)와 스마트폰을 경배하고 있는 각진 어깨의 무표정한 직장인들, 어딜 가나 스르르 앞길을 터주는 자동문, 반듯반듯 깨끗한 보도블록 길들에 느닷없이 눈물샘이 터졌다.


무엇보다, 멋대로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들과 여름이 시작되면서 유독 색깔이 도드라진 꽃들 대신 싹 이발을 시킨 가로수가 일렬종대로 서 있는 거리가 너무나 허전해 보였다. 날카로운 무엇이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았다.

더위에 영혼이 잠식돼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었던 치앙마이가, 내 집 문을 열기도 전에 그리워 죽을 것 같았다. 치앙마이야, 보고 싶다. 이제 한국을 애정하고 살다가 어느 날 또 너에게 날아갈게. 덥지 않을 때.


3개월 동안 쌓인 먼지를 긴 시간 닦아낸 나의 집.

아카아마에서 마지막 커피를 마시고(더위로 숨이 차 조금도 음미하지 못했다) 되는 대로 사온 드립커피를 마시며 그리움을 달래본다. 좀 많이 사올걸. 치앙마이에선 라떼만 마셨는데(아카아마 바리스타는 내가 가면 알아서 “라떼, for here, 세븐티 밧” 했다) 이 드립 커피도 정말 정말 맛있다. 아카아마의 명성에는 거품이 없다.


치앙마이에 3개월 있으면서 브런치 글을 18꼭지밖에 쓰지 못했다. 쯧쯧.

이제 귀국을 했으니 ‘나 지금 치앙마이에 있어’는 이것으로써 끝내야 할까.

아니.

아직 내 마음의 절반은 치앙마이에 있으니 몇 번 더 쓰고 마감을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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