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치앙마이 이웃(2)
치앙마이에서 컴백 홈 한 지 16일째. 현금이 아닌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면서도 습관처럼 태국화로 환산하는 걸 보면 아직 마음 한 자락은 그곳에 묶여 있는 것 같다. 택시비가 12,000원이면 ‘300바트? 말도 안 돼! 치앙마이에선 100바트, 4,000원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이런 식이다. 서울에서 웬만한 곳은 지하철로 1,300원이면 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편향된 사랑 탓인가?ㅎㅎ
치앙마이에 대한 사랑을 막바지에 더 깊게 해준 것은 옷 수선집 아저씨였다. 출국을 3주쯤(한 달인가?) 남겨두고 물병 주머니 아랫부분이 터졌다. 그 안에 넣은 동전이 길바닥에 떨어져 굴러가는 것을 보고 알아챘다. 겉감뿐 아니라 안감까지 터졌는데 씨줄 날줄이 심각하게 풀어져 회생 불능으로 보였다. 버릴까? 하다가 길을 오가며 보았던 옷 수선집이 생각나 가져갔다.
손바닥만 한 가게 안엔 젊은 여성 두 명이, 가게 바깥쪽엔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각각 재봉틀을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일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다른 손님과 얘기 중이어서 아저씨에게 물병 주머니를 내밀었다. 역시나,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하며 ‘어렵겠는데’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언제 찾으러 올래?” 하고 물었다.
“천천히 찾아도 돼요. 다음 주 월요일에 올게요.”
아저씨는 시간이 넉넉하다며 좋아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영어를 나만큼은 하셔서 유창한 영어를 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소통이 잘 되었다.
“어디서 왔어?”
“한국이요.”
“아, 한국.”
웃는 모습이 순수의 결정체 같았다. 60살 전후로 보이는데, 어떻게 살아왔으면 저런 웃음을 가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접수증 받은 걸 잊고 주인용 접수증까지 챙기려다 “줬는데?” “못 받았는데?” “안 줬나?”... 이런 해프닝이 벌어졌다. 지갑에 노란 접수증이 들어 있는 걸 발견하고는 “저 바보예요” 내 머리를 콩콩 쥐어박았더니 아저씨는 “Same same” 하며 자기 머리를 콩콩 두드렸다. 인사하고 돌아가며 길게 손을 흔들었다.
다음 주 월요일, 물병 주머니는 감쪽같이 수선돼 있었다.
“매직!”
엄지를 치켜들고 소리쳤다. 과장 없이 ‘수선의 달인’이었다. 아저씨 얼굴에 자동으로 지어지는 순수의 결정체 웃음. 수선비는 고작 1,600원이었다.
다음엔 얇은 담요를 가져갔다. 동쪽으로 난 창으로 이른 오전부터 햇빛이 진군해 들어와 커튼용으로 쳐놓았던 담요였다. 옷감 파는 곳을 못 찾아 침구류 파는 데서 구입했다. 커튼이 달려 있었지만 한 겹 더 쳐야 할 만큼 햇빛은 침투력이 엄청났다. 담요 양쪽 끝에 구멍을 내 끈을 끼웠던 터라 누굴 주더라도 수선은 해서 줘야 할 것 같았다. 어쩌면... 수선의 목적보다 아저씨를 한 번 더 보려는 목적이 컸을지도 모른다.
아저씨 손은 금손. 담요도 구입했을 때보다 더 야무진 형태로 말끔히 수선되어 있었다.
“퍼펙트!”
순수의 결정체 웃음을 유발하려 골라낸 단어였다. 물론 마음에 없는 말은 아니었다. 아저씨는 허허, 바로 그 웃음으로 응답했다. 담요는 첫 나눔 때 만났던 치앙마이 장기 체류자에게 주고 왔는데 사진을 찍어놓지 않은 게 아쉽다. ‘태양을 피하는 법’에 몰두해 사진을 찍을 정신이 없었다.
다시 옷 수선집에 갈 구실을 찾은 건 출국 사흘 전이었다. 짐을 싸다가 담요 후임으로 베란다 창에 달아놓았던 옷감 두 개를 발견하고 머릿속에 전구가 탁 켜지는 것 같았다. 옷감은 용도를 알 수 없게 원통형으로 되어 있었는데, 솔기 한쪽을 터서 직사각형으로 평평하게 펴지도록 만들어야지 싶었다. 내친 김에 코끼리 바지가 내 몸에 우스꽝스러워 대타로 산 코끼리 치마도 수선용으로 뺐다. 길이가 너무 길잖아.
더위를 먹어 시들시들한 때였지만 한 보따리 싸서 들고 갔다. 아저씨는 시간이 좀 빠듯하다고 했지만 내가 원한 ‘사흘 후 저녁 7시’까지 모두 수선을 해놓겠다고 했다. 출국 날이지만 밤 11시 30분 비행기라 시간은 충분했다.
아저씨는 옷감으로 치마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는데, 치앙마이가 아니면 입고 다닐 수 없을 것 같아 사양했다. 그냥 치마를 만들어 달라고 할 걸 그랬나? 그러면 사흘 동안 옷을 만들 수는 없으니 치앙마이에 남아 있을 수도 있었는데.ㅎㅎ
마침내 치앙마이를 떠나는 날 저녁. 마야 푸드코트에서 한식 비빔밥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옷 수선집으로 갔다. 이번에도 내가 원하는 대로 옷감 두 개와 치마는 잘 고쳐져 있었다. 엄지 척! 수선 범위가 넓었지만 총 수선비는 6,000원. 너무 착하다니까.
“저 오늘 밤 한국으로 돌아가요.”
“정말?”
아저씨의 표정이 쓸쓸해 보인 건 순전히 내 맘대로의 해석이었을까.
두 주먹을 눈 밑에서 돌리며 잉잉 우는 시늉을 해 보였다.
“Same same.”
아저씨도 우는 시늉을 했다.
“안녕히 계세요!”
손을 흔들고 돌아서 오다가 아 참, 하고 되돌아갔다.
“It’s for you.”
마야 CAMP에서 아저씨 주려고 사온 과자를 깜박했다. 덕분에 아저씨를 한 번 더 볼 수 있었으니 잘 잊어먹은 거였지. 노란 리본이 묶인 과자 봉지를 받고 아저씨가 “내꺼?” 하며 좋아했다. 그리고 진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Good luck!”
몸 상태가 좋았다면 진짜 잉잉 울었을까.ㅎㅎ 당시엔 공항까지 가서 무사히 귀국하는 게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작별의 아쉬움은 그때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큰 것 같다. 수하물 무게를 줄이느라 옷감 하나는 작은 선물과 함께 뷰도이 메이드에게 주고 왔는데, 두 개 다 가져올 걸...
아저씨 잘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