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내가 같이 써야 할 현금이 5만 원 생겼다. 누군가 점심 사먹으라고 모녀에게 준 돈이었다. 엄마는 사양하는데 내가 점심 맛있게 먹겠다며 감사히 받았다. 그 ‘누군가’가 어려운 사이도 아니고 꺼낸 돈을 다시 지갑에 넣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3만 원이 남았다. 요즘 모자에 꽂힌 엄마가 내 모자에 탐을 내 남은 돈으로 똑같은 모자를 사다주겠다고 했다.
모자를 샀느냐고 엄마가 전화를 했다. 시내에 나갈 일 있으면 사오려 했는데, 벙거지모자가 그렇게 쓰고 싶은가.
저녁에 모자를 사러 나섰다. 마을버스로 몇 정거장 가서 지하철을 갈아타려 개찰구를 통과했는데 어라? 교통카드 넣을 지갑이 가방에 없었다. 버스에서 교통카드를 손에 쥐고 있었는데, 지갑은 무릎에 올려놓았다가 그냥 일어나 하차했나 보았다. 지하철역이 터닝포인트라 마을버스가 5분쯤 정차했다 돌아가지 참. 다시 개찰구를 나와 마을버스 정거장으로 뛰어갔지만 버스는 떠나고 없었다. 망했다.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가 올라탔다.
“바로 전 버스에 지갑을 두고 내린 거 같은데요.”
기사님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창문 모서리에 걸린 동그란 송수화기로 동료 기사를 불렀다.
“그 차 탔던 손님이 지갑을 두고 내리셨다는데? 어, 있어?”
우와, 이런 게 있었네? 이리하여 나는 앞차를 따라가는 뒤차에 타고 종점까지 가야 했다. 와, 우리 마을이 이렇게 넓었나. 돌고 돌며 30분을 넘게 가더라는... 모자 사러 가는 건 포기했다. 엄마, 좀 더 기다려야겠다.
그런데 맥이 빠지기는커녕 모험을 하는 듯 흥미진진한 이 느낌은 뭐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길을 마을버스 타고 달리며 구경하느라 눈동자가 바빴다. 여행이 별거야? 이건 여행이었다.
종점에 다다라 건너편에 대기하고 있던 마을버스로 옮겨 탔다. ‘나 지갑 잃어버린 사람.’ 얼굴에 써 붙였나? 앞차의 기사님은 내가 올라가자마자 지갑을 내주었다.
“다른 손님이 갖다 주더라고요. 카드 같은 거 다 있는지 보세요.”
물론 다 있었다. 3만 원도.
“그래도 지갑이 있으니 다행이지 뭐야.”
어느새 뒤차 기사님이 앞차로 와서 해피하게 웃었다. 나보다 더 좋아하시네.
“그럼.”
앞차 기사님이 끄덕였다.
이럴 때 감동해도 되는 거지? 감사 감사.
두 기사님은 나에게 교통카드를 찍지 말라고 하셨다. 지갑을 잃어버려 당황하고 볼일도 못 본 채 마을을 돌아야 하는 나에 대한 배려였다. 한 번은 찍었고 또 한 번은 찍지 않았다.
“버스 타고 여행 잘 했어요. 감사합니다. 다음에 뵈면 인사드릴게요.”
“그래요, 잘 가요.”
경례를 하는 기사님에게 얼떨결에 경례를 해버렸다.
모자는 사지 못했어도 오늘 훈훈한 에피소드를 남겼다. 그럼 됐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