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과 팥빙수와 코19

by 나나꽃

우리집은 명절에 차례를 지낸 후 티타임을 가지며 의식의 흐름대로 대화를 이어가다(즉, 아무 말 대잔치라는 뜻) 과일, 한과 접시가 비워지면 본격적으로 윷놀이를 시작한다. 가족이 두 편으로 나뉘어 1인당 만 원 내기, 좀 더 쓰면 2만 원 내기를 하며 아시안게임보다 더 시끌벅적 승부욕을 불태운다. 감기 환자인 나는 올 추석엔 마스크를 쓴 채 뒤로 빠져 구경만 했다. 밥도 베란다에 나가 혼자 먹었다. 흑흑.


며칠 몸살과 목감기와 기침으로 시달렸던 나는 소파에 축 늘어져 윷놀이하는 사진만 두 장 찍어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한참 경기가 무르익고 있을 때 누군가 내기 돈으로 ‘설빙’ 빙수를 배달시켜 먹자 했고, 이견 없이 모두가 동의했다.


“난 반댈세.”


자격도 없는 구경꾼인 내가 나섰다. 팥빙수를 어떻게 배달해주냐고 물으니 오빠가 자상하게 설명했다. 스티로폼 상자에 드라이아이스 채워 하나도 안 녹게 배달해준다고. 뭬이야?


“팥빙수 먹자고 요란한 스티로폼 쓰레기를 배출해야겠어? 지금도 정신 못 차리면 2050년엔 지구가 초토화된다는데. 기후위기로 리비아 사막이 물바다 돼 몇 만 명 죽고 여기저기 환경문제 때문에 난리인데, 배웠다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무식하게 놀아? 환경문제는 생각 안 해? 아까 우리나라 출산율이 어쩌고 젊은층이 아이를 낳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저쩌고 걱정하던데 지구의 미래 같은 건 관심도 없나?”


우리 가족은 나 빼고 다 순하다. 모두 한 마디 반박도 없이 ㅎㅎ 웃으면서 자기 차례에 윷가락만 던졌다.


방에서 한숨 자고 거실로 나갔을 때 빵 터지려는 웃음을 참았다. 편의점 팥빙수를 몇 개 사다 사이좋게 나눠먹는 우리 가족. 누군가 방출한 꿀팁으로 흰우유를 부어 얼음과 섞어 먹으며 만족해하는 모습이 귀여운 한편, 왠지 내가 감기 중에 카리스마를 내뿜은 것 같아 어깨가 부풀었다. 사실 편의점 팥빙수도 먹고 나면 플라스틱 쓰레기지만 그 얘기까지는 하지 않았다.


추석 전에 빨간색 한 줄만 그렸던 코로나19 진단 키트는 추석 다음날 두 줄을 그렸다. 감기 증상이 시작된 지 일주일 만이었고, ‘감기는 약을 먹어도 일주일 안 먹어도 일주일’의 법칙을 깨고 오히려 더 무기력해졌을 때였다.


가족과 최근의 밀접 접촉자들에게 연락해 모두 아무 증상 없다는 답을 들었다. 다행이다. 이번 코로나는 질리게 독한 것 같다. 내 안에 기생하면서 몸속의 양분이란 양분은 쪽쪽 다 빨아들이는 것처럼 기력을 빼앗고 있다. 퀭하니 들어간 눈에 깊이 파인 다크서클이 디스토피아에 살아난 생명체 같아 거울도 보기가 싫다.


엄밀히 따지면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도 인간이 만들어낸 감염병 입자들이다. 밀림을 개발한답시고 마구잡이로 훼손해 갖가지 동물들을 멸종시키는 가운데 야생동물들과의 접촉이 늘면서 생겨난 것들 아닌가.


만물의 일개 생물일 뿐인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며 다른 생물들에게 갑질을 하면서 초래한 결과들이 지금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는데도 인간은 1미터 앞만 보고 살겠다는 듯 별로 긴장하지 않는다. IAEA와 뇌물 거래로 보고서를 조작해 전 세계를 속이고(일본 외무성 고위직으로 추정되는 제보자가 한국의 탐사 매체에 여러 차례에 걸쳐 제보한 내용들은 근거가 너무 확실해 믿지 않을 수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 우리 주류 언론은 이에 대해 한마디도 보도하지 않는다) 핵폐수를 바다에 버리는 충격적인 일까지 자행하는 나라도 있지 않은가. 일본. 일 년에 수차례 8천여 톤씩 30년간 버린다고 하는데, 끝없이 버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5개월 후에는 우리 바다에 핵폐수가 당도한다는데 너무나 공포스럽다. 심각하게 공포스럽다. 일본 총독부가 아닌가 싶은 현 정부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후쿠시마 핵폐수 해양 방류를 지지하고 우리 세금으로 일본 핵폐수가 안전하다는(이게 괴담 아닌가?) 가짜뉴스 광고를 내보내고 있어선지 많은 사람들이 설마, 하고 있는 것 같다.


코19 증상 열흘째, 연휴에 진료하는 병원을 찾아 코로나 검사 음성 확인을 받고 집에서 진단 키트로 다시 한 번 음성 확인을 한 후 다시 병원에 가서 영양제 주사를 맞고 왔다. 기운이 좀 나는 김에 오랜만에 손가락 수다를 떨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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