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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꽃 Jun 03. 2024

꽃다발보다 예쁜 루꼴라 다발

이제 텃밭에 가면 ‘뭘 해야지?’ 머리가 생각하기 전에 눈과 손과 발이 알아서 일을 한다. 눈에 띄는 대로 잡초를 뽑고, 불필요한 곁가지들을 가위로 잘라내고(필요한 가지들도 잘려나갈지 모른다), 일주일에 한 번쯤 토마토 가지 수박 등 비교적 큰(혹은 클) 작물은 모종삽으로 주변을 동그랗게 파 커피찌꺼기와 달걀껍데기가루를 넣어 덮어주고, 일렬로 심은 작은 작물들은 그 사이를 직선으로 파 똑같이 양분을 주고, 적당히 자란 상추와 깻잎을 착착 따 자전거 짐바구니에 넣어두고, 홀로 뚝 떨어진 곳에 있는 호박부터 시작해 텃밭에 두세 차례 물을 준다. 이러다 보면 한 시간 반이 훌쩍 가버리고 농장에 엷게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채소들이 더욱 농밀하게 초록을 뿜어내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서서 농장을 바라보면, 빈틈없이 풍성한 다른 텃밭들에 비해 내 텃밭은 흙이 가장 많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작물의 양이 적다. 상추 10포기, 강낭콩 3포기, 들깻잎 6포기, 수박 2포기, 토마토 6포기(나무처럼 생겼으니 ‘그루’?), 열무를 수확했던 가로세로 1미터 남짓의 땅에 저밀도로 심은 얼갈이배추 8줄. 종류는 다양하지만 재미로 몇 개씩만 심어 다른 집 텃밭들보다 확실히 조촐해 보인다. 채식을 하는 수도자의 텃밭 느낌이랄까.      

하지만 혼자서 그 정도면 충분하다. 마음껏 자라주는 상추와 깻잎을 매일 충분히 먹을 수 있고 가끔 엄마와 친구에게 갖다 주기도 한다. 풍성히 자라기 전에 알뜰히 뜯어 먹어 언제나 이발을 시킨 모습이다. 상추가 배추만 하도록 크게 자란 텃밭도 많은데, 상추 잎이 두 손바닥을 덮을 만큼 클 때까지 키우는 게 일반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연하고 보드라운 상추를 아작아작 씹어 먹는 맛은 너무 성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바로 따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며 상추 포기가 커지기 전에 가장자리 잎을 주저 없이 따낸다. 포기도 작고, 듬성듬성 심어 물도 양분도 더 많이 섭취할 테니 나의 채소들에겐 좋은 환경일 것이다.     



아직 따먹지 못한 아이들도 ‘조금만 기다려’ 꽃이 진 자리에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토마토가 빨갛게 익고 고추가 음식 재료가 될 만큼 클 때를 기다린다. 토마토 나무 가까이 갈 때 ‘찐’하게 코끝을 자극하는 토마토 냄새는 정말 환상적이다. 올망졸망한 방울토마토들이 귀여운 음표처럼 보이고, 랑랑랑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노스텔지어는 후각과 청각에서 온다던가. 아주 어릴 적 여름방학에 시골 친적집 텃밭에서 이른아침 하나씩 따 평평한 우물에 던져 넣었다 건져 먹던 진짜 토마토 냄새다. 여름철 토마토를 특별히 좋아하는 나로서는 내 텃밭에서 나는 푸르디푸른 토마토 향에 짜릿짜릿 흥분될 수밖에 없다.      


결실을 맺기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한 콩, 수박, 가지도 어느 날 아주 조그만 우주를 구현해 내 눈을 똥그랗게 만들어줄 것이다. 우리에게 시원달달한 투 머치 수분을 제공하는 수박은 그만큼 많은 물을 먹고 큰다는 것을 1년 계약 도시 농부가 되어 처음 알았다. 수박에게 필요한 물을 먹이려면 내가 그만큼 신경을 써줘야 한다는 말. 수박은 주변에 흥건히 물이 고일 만큼 물을 많이 주고 있다.     


이웃 텃밭에 자라는 다른 작물들을 보면 나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감자, 고구마, 땅콩은 이미 파종 시기를 놓쳤다. 옥수수는 6월 말까지로 아직 시기가 지나지 않았으니 두 포기만 시도해봐야겠다. 텃밭 가장자리를 따라 루꼴라를 길렀던 이웃이 날을 잡아 어제 전량을 다 수확했다. 열무만 해진 루꼴라 여섯 포기를 선뜻 주시는 이웃 농부님. 감사히 받아 자전거 바구니에 실었다. 

“꽃다발보다 예뻐요!”

내 말에 “그래요?” 하고 웃으신다.     


텃밭은 어쨌든 힐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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