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작가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가 쓴 《내 방 여행하는 법》이란 책이 있다. 인터넷 서점을 둘러보다가 이 책을 주문한 이유는 순전히 표지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분홍-초록 보색 조합에다 평범한 명조체의 제목과 대조적으로 어울리는 클래식한 의자가 대책 없이 내 마음을 끌었다(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물은 나무, 그 다음은 의자다). 표지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어. 가끔은 이렇게 단순해지는 내가 좋다.
두 번째로 혹한 것은 책 소개였다. ‘18세기 서양 문학사에 여러 모로 선구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도스토옙스키, 니체, 프루스트, 카뮈, 보르헤스, 수전 손택 등은 이 작품을 극찬하거나 영감을 받아 자신의 작품에 직간접으로 반영했다.’ 작품을 보는 눈이 무뎌서인지 그 정도의 감동을 받지는 못했으나, 문장의 기품과 작가의 빛나는 발견에 대해서만큼은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직업 군인이었던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가 어떤 사건으로 42일간 가택 연금을 당해 방에서 ‘행운의’ 여행을 한 이야기는 그의 방을 상상하게 하는 42개의 꼭지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것은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의 ‘내 방 여행하는 법’에 관한 것이 아니라 엄마의 ‘내 방 여행하기’, 정확하게는 ‘내 집 여행하기’에 관한 것이다. 조금 큰 수술 후 집에 갇혀 있다시피 한 엄마가 집 안을 걸어다니는 것을 보며 《내 방 여행하는 법》을 떠올렸다. 남들이 보면 그리 감탄할 만한 것은 아니겠으나, 나에겐 적어도 무위하거나 무의미하지 않고 충분히 감상할 만했다.
척추 협착과 어긋남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던 엄마는 허리에서 등 한가운데까지 약 15센티미터를 절개하고 수술을 받았고 2주 만에 퇴원했다. 수술 부위가 완벽하게 아물지 않아 매일 약을 먹고 마데카솔을 바른다. 엄마는 자기 관리에 부지런한 편이라, 의사의 당부가 없었는데도 매일 수시로 걷기 연습을 한다. 새벽형 인간이라 오전 4시에 일어나 묵주기도를 한 뒤 긴 아파트 복도로 나가 최대 열 번을 왔다 갔다 하고, 식사 전이나 후에도 집 안을 걸어 다닌다.
엄마의 걷는 모습은 조심조심 느릿느릿 소리 없이 걷는 구름 위의 산책자처럼 보인다. 그렇게 거실에서 안방으로, 안방에서 주방으로, 주방에서 작은 방으로 한 발 한 발 발을 옮기며 집 안 곳곳에 배어 있을 삶을 휘휘 둘러보고 있는 것 같다. 감정의 오르내림 없이 담담하게. 평생, 밟아야 할 땅의 조건을 따지지 않고 수없이 나타날 도착점들을 향해 걸어왔던 길을 다시 걷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젠 구름 위를 산책하듯이.
그 길들엔 가혹하게 닥친 가난 속에 나를 업고 일을 하러 다녔던 길, 남편 사업장과 어린 자녀들과 반신불수 시아버지 사이를 바삐 오갔던 길, 가끔 '내 맘대로' 기분파 남편이 오토바이에 태워 데리고 가 공휴일을 보냈던 어떤 길, 마음을 나눌 절친 친구네로 놀러가던 길, 약국을 하는 딸의 젖먹이 아이들을 봐주러 오가던 길, 두 딸을 따라 남편과 함께 여행했던 제주도에서 이른 아침 해녀들에게 전복을 사러 바닷가로 가던 길…….
엄마는 아버지의 사진 앞에 잠시 멈춰 두런두런 말을 건네기도 한다.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엄마의 관용어가 된 한 마디다. “우리 애기.” 그 한 마디에 사랑과 미움과 그리움과 미안함이 다 담겨 있는 것 같다. 삶의 길에서 방향과 속도가 자주 안 맞아 엇박자를 많이 냈던 시간을 ‘우리 애기’라는 한 마디로 아름답게 마무리한 엄마는 이제 자유롭게 혼자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버지에게 간간이 말을 걸면서.
걷기는 반드시 신발을 신고 물리적인 공간의 일정한 거리를 걷는 것만은 아니다. 한정된 공간을 맴돌면서도 마음속에 펼쳐지는 길을 따라 얼마든지 길고 긴 걷기를 할 수 있다. 홀로 걸을 때, 걷기의 단 하나뿐인 주인은 자기 자신이므로.
* 헤더 사진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