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두 달 만에 텃밭에 갔다. 가기 싫었던 게 아니라 갈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유가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늘어났다.
손가락 염증이 낫질 않아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아침에 더 뻣뻣해진 손가락을 구체관절인형 관절 펴듯이 오른손은 왼손으로, 왼손은 오른손으로 뚝 뚝 펴야 했고, 가만히 있어도 심상찮게 통증이 느껴졌다. 손을 쫙 펴도 가운뎃손가락은 안으로 조금 굽은 상태.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다고 이 요란을 떠나? 민망했다. 하루 두 번 진통소염제를 먹고 수시로 연고를 발랐다. 뜨거운 물로 손을 씻으면 관절이 부드러워져 한여름에 뜨거운 물을 아끼지 않고 콸콸 썼다.
올해 무시무시하게 지속되는 폭염에 밭일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얼치기 도시농부 아닌 시골농부님들은 어땠을까.
한여름 큰 수술을 한 엄마를 병원에서 간호하며 체력이 뚝 떨어졌다. 잠자리에 예민해 보호자용 간이침대에서 잠을 제대로 못 잔 탓도 있었고, 더위에 취약한 몸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많이 힘이 들었다. 저질 체력, 무능하다는 생각이 들어 기가 죽었다. 밭은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갔다.
난생 처음 흑염소 엑기스를 먹으면서 눈에 띄게 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놀라워라. 하루에 한 파우치씩 일주일 먹고 거의 정상 회복. 손가락도 덩달아 많이 나았다. 아싸. 그만둘까 했던 농사를 다시 시작하려 지난주 일요일 텃밭으로 향했다. 방치된 땅에서 별별 잡초들이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농장 주인이 농장 세 파트 중 우리 파트는 초보들에게만 대여를 했는지, 다른 두 파트는 폭염에도 탐날 만큼 채소들이 알뜰하게 자라 깔끔한데, 우리 파트만 지진아 반처럼 어느 텃밭이든 대체로 엉망이다. 1분도 쉬지 않고 잡초를 싹 정리하니 밤이 내려앉았다. 호미를 어디 놔뒀는지 찾지 못한 채 후들후들 떨리는 팔다리를 휘적이며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개운했다.
어제 다시 텃밭에 가 쇠갈퀴로 흙을 고르고, 여유 있게 간격을 두어 괭이로 고랑을 파고, 알타리무 씨를 약 7~8센티 간격으로 두 개씩 넣고, 손바닥으로 흙을 덮어 편평하게 만들었다. 알타리무 파종 시기가 좀 지났다고 하지만 상관없다. 발육 상태가 충분치 않으면 자란 만큼만 먹으면 되니까. 주말쯤 가보면 싹을 틔우고 있을까? 벌써 보고 싶다.
이 매거진을 ‘꿈꾸는 텃밭’으로 이름 지었을 때는 정말 텃밭 판타지를 꿈꾸었다. “꿈 깨.” 나 스스로에게 말하기까지는 석 달도 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쑥쑥 자란 상추를 처음 뜯어다 먹었을 때의 기막히게 부드럽고 달았던 맛, 조오그만 고추가 가지에 매달리고 방울토마토가 존재감을 드러냈을 때의 신기함, 수박이 알사탕만 하게 나와 나날이 부쩍부쩍 커가는 모습을 보던 때의 가슴 벅참은 잊을 수가 없다. 농부의 마음을 한 번이라도 가져본 경험은 정말 특별한 것이 될 것 같다. 손가락 통증으로 내내 꿀꿀했을 때도 후회는 하지 않았다. 진짜 농부들이 본다면 소꿉장난 같겠지만 텃밭이 나에게 준 것은 그 이상이었으니까.
몇 안 되는 채소를 길러냈던 꿈꾸는 텃밭의 최종 작물은 알타리무 한 가지다. 엄마의 주문을 받았다. 야무진 꿈 깨고 간단하게, 쉽게 가라는 뜻이었나. 파란 씨앗이 싹을 잘 틔워 병 없이 잘 자라면 11월 중하순쯤 엄마에게 서너 단 만들어 갖다 줄 수 있을 거다. 채소값이 금값인 때에 귀한 선물이 되겠지? 근데 너무 늦은 파종이라 텃밭에서의 마지막 꿈이 박살나면 어떡하지. 날씨야, 천천히 추워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