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 마지막 작물 알타리무 씨를 파종한 지 25일이 되었다. 그 이후로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 때문에 노심초사했다. 차가워진 흙속에서 씨앗이 싹도 틔우지 못할까 봐, 겨우 싹을 틔운다 해도 제대로 자라지 못할까 봐, 마지막 농사가 망할까 봐.
김장김치 저장용 비닐봉투를 여러 개 구해다 두 모서리를 가위로 오려 펼치고, 텃밭의 가로 세로 길이에 맞을 만큼 테이프로 이어 붙였다. 텃밭에 덮기 위해서였다. 일종의 비닐하우스? 누구의 조언도 아닌, 순전히 내 상상과 계산에서 나온 응급조치였다. 비닐을 덮으면 좀 따뜻하지 않을까. 숨은 쉬게 해야 할 것 같아 펀칭기로 비닐에 구멍을 뽕뽕뽕뽕 뚫었다. 별 걸 다 하네. 파종 시기를 놓치니 할 일이 많아지는구나.
비닐 아래로 연녹색 새싹이 나온 걸 봤을 때 내 입은 스마일을 그렸을 것이다. 얼마나 기쁘던지. 조금 자란 싹이 비닐에 닿자 밭 가장자리로 나무젓가락을 쭉 꽂아 비닐의 천장을 높였다. 누더기 비닐하우스에 어디는 높고 어디는 낮고 울퉁불퉁 볼만했다. 물을 줄 때는 걷었다가 물을 다 주고는 다시 덮고 참 분주했다.
알타리무 잎이 6~7센티미터쯤 자라면서 비닐을 아예 걷어냈다. 더 이상의 비닐하우스 관리는 능력 밖의 일. 이 정도 자랐으면 아침저녁의 싸늘함은 충분히 견디지 않을까. 이제 알타리무가 얼마나 더 자라주든 물만 주고 잡초만 뽑아주면 되었다. 최근엔 물을 주러 가기 전날 비가 오곤 해 밭에는 드문드문 갔다. 이제 내 텃밭의 알타리무는 청소년기쯤 되었으려나. 청장년기로 보이는 다른 텃밭의 채소들보다 한참 어리지만 보기가 좋다. 그래도 많이 컸다. 대견하다.
엄마가 심으라고 했던 알타리무의 건강한 성장에 대해 얘기했더니 엄마가 말했다.
“채소들은 추우면 더 빨리 자란다.”
순간 머리에서 띵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순간 경건해졌다. 엔딩이 가깝고 시간이 없을수록 더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이 아이들 뭐지? 시간이 없을수록 오히려 그걸 핑계 삼아 ‘하지 말자’고 손을 털곤 했던 게 누구였지?
내 인생에 중요한 어떤 일에 대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분량이 얼마 안 됨에 강조 표시를 하며 슬그머니 옆으로 치워두고 있는 지금 ‘깨어나라’ 가르치는 알타리무. 일기장에 두 문장을 적어두었다.
‘깨어나라. 추워지면 더 부지런히 자라는 채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