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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플민트 Oct 30. 2022

쇼핑 좋아하는 남편과 산다

“또 옷이니? 무슨 옷을 매일 사? 쓸데없이 돈 쓰는 걸 알면 어떤 남자가 좋아하겠니?”

이틀이 멀다하고 배송되는 택배물품에 엄마는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런가…  쇼핑을 좋아하는 날 좋아하는 남자는 없나?’

반신반의 했는데, 좋아해주는 남자를 찾았다.


바로 나만큼 쇼핑을 좋아하는 남자.




“근처에 에어조던 운동화만 파는 곳이 있대. 한 군데만 더 가보자.”


일본 오사카 오렌지스트리트의 운동화 가게를 샅샅이 뒤진 남편은 한 군데만 더 가보잖다.

오후 내내 내 지갑을 사려고 쇼핑몰을 돌아다닌 터라 다리가 저릿저릿하지만 거절하기가 미안하다.

남편은 굵은 빗줄기를 뚫고 으슥한 골목 구석에 위치한 가게를 찾아내고야 만다.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희귀템이 있는지, 가격은 어느 정도인지 구경하며 한껏 들뜬 표정이다.


해외 여행을 가면 그 곳의 나이키 매장과 운동화 편집숍을 샅샅이 뒤지는 게 일정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한국에서도 집 근처 나이키 매장을 참새방앗간처럼 다니지만, 각 나라마다 매장과 상품의 특징이 있어서 꼭 봐야 한단다.

남편의 운동화에 대한 열정은 쇼핑을 좋아한다고 여겨온 나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주말 아침, 늦잠 자는 날 흔들어 깨워 쇼핑 나가자고 재촉하는 이도 남편이다.

쇼핑몰에 들러 서로 어울릴만한 아이템을 찾아주고는 어울린다, 안 어울린다 평가하며 돌아다닌다.

나갈 떄마다 무언가를 사고 소비하는 것은 아니다. 

신상품을 구경하고 신상품의 기능에 대한 설명도 듣고 신거나 입어보거나 하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남편은 나 혼자 대형마트를 가는 것도 섭섭해한다.  

어느 고기가 싸고 맛있는지, 제철 과일은 뭐가 나왔는지, 가격은 어느 상품이 합리적인지 구경하고 꼼꼼히 비교하는 게 재미있단다.

백화점이나 마트 등 쇼핑을 따라다니지 않고 사다주는대로 먹고 입는 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엄마는 사위를 보며 신기하다며 나와 천생배필이라고 감탄한다.



하지만 부작용이 있다.


“고마워. 예쁘네. 언제 또 준비했어?”

생일선물을 뜯어본 남편이 석연찮은 웃음을 짓는다.


“왜? 또 마음에 안 들어?”

“아냐, 아냐. 예뻐. 근데 다른 건 어떤 게 있었어? 같이 가서 골라볼까?”


모자를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고심 끝에 산 하얀 캡모자가 취향에 맞지 않나 보다.

머리 부분을 많이 덮는 깊은 모자를 원하는데 내가 산 건 작아서 그렇게 쓰기 힘들단다.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난 매장에 상품을 바꾸러 올 수 있다고 예고해놓긴 했다.


사실 내가 고른 선물이 남편 마음에 든 적은 거의 없다.  

밸런타인데이 선물로 준 스트라이프 티셔츠도, 지난해 생일에 준 팔찌도, 그 전해 선물로 준 스웨트셔츠도 그는 바꿨다.   

매번 수수께끼를 푸는 마음으로 남편의 선물을 사지만, 취향을 맞히기가 쉽지 않다.


내 옷이나 액세서리를 남편 모르게 사기가 힘들다.  

쇼핑에 관심이 많다보니 내 아이템도 한 번 본 거나 입은 건 잘 안 까먹는다.  

혹여 내가 혼자 가서 새 옷을 사면 “이건 못 보던 건데?” 라며 한 눈에 알아챈다.

"언제 산 거야? 얼만데? 왜 혼자 가서 샀어? 같이 가지. "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적응하며 산 덕에 소비에 제대로 길들여진 부부.

쇼핑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결혼해 함께 쇼핑하고 서로 진심으로 조언해주는 쇼핑메이트가 됐다. 

상대의 아이템에 관심을 갖고 소비하는 시너지 효과(?)까지 나고 있다.

미니멀 라이프, 비우는 삶이 시대적 가치로 부상했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먼 나라 얘기다.


그나마 수입과 지출 개념이 약했던 내가 이대로 살다가는 파산할 것 같아 매달 쇼핑 예산을 책정하고 그 안에서만 소비하려는 계획성이 생긴 게 다행이라고 할 정도다. 


엄마 말대로 임자를 제대로 만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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