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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플민트 Oct 30. 2022

36살, 연하남에 반하다

10년의 직장 생활에 지친 나는 정신적으로 쉴 곳이 필요했다. 성공하고 듬직한 오빠가 구질구질한 현실에서 날 멋지게 구해주길 원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멋드러진 구원을 위해서 한 살이라도 어린 남자는 연애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36살 여자의 확고한 신념은 와르르 무너졌다. 연하남의 연하 같지 않은 매력이 강렬했기에.



-. 열정에 반하다


“가요. 집에 바래다줄게요. ”

“야, 됐어. 혼자 간다니까. ”

“집에 가면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잖아요. 나랑 밥 먹고 가요. ”


우리 부서 막내인 남자후배는 퇴근 후 회사 근처에서 내가 나오기를 기다렸나 보다.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한 남자 후배는 그 날부터 매일 날 기다린다. ‘기다릴 필요 없다’,  ‘난 연하남과 사내 연애는 절대 하지 않는다’ 는 거절의 말은 신경도 안 쓴다. 


자신이 출장이라도 가게 되면 매일매일 동영상을 찍어 반응 없는 내게 메일로 보낸다. 다음 날 졸릴지라도 밤늦게까지 전화기를 붙들고 놓지 않는다. 


참 오랜만이다.


싫다는데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는 남자. 

“좋아죽겠다”, “너 아니면 안 된다”며 쫓아다니는 행위.  


주로 만나온 30대 후반·40대 초·중반의 남자들은 "좋아죽겠다"는 표현을 거의 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 죽을만큼의 감정을 표출하게 만드는 상대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예의 바르고 세련된 매너를 갖고 있지만, 감정 표현은 조심스럽고 신중했다. 


호감이 있다면서도 하루에 간단한 전화통화 1~2통, 만나자면서도 주말이나 쉬는 날 정도 시간을 냈다. 연애 상대에게 많은 신경을 쓰고 시간을 쓰기에 그들은 중요하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고 바빴다. 


나이가 든 나는 그런 상대 남성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게 철 든 행동이라고 믿었다. 그게 20대 여성들과는 다른 철이 든 여성으로서의 매력이자 장점이라고 여겼다. 그런 그들에게 내가 갖는 호의를 다 표현하지 않고 감정을 절제하는 게 나 스스로를 보호라는 길이기도 했다. 


서로가 신중한 연애. 

반복된 이별과 아픔으로 그도, 나도 두터운 보호막을 치고 있었다. 상처 받기 싫은 맘, 일의 중요함을 잘 알기에 그게 또 이해가 됐다. 그게 30대 중후반의 여자가 성숙하게 연애하는 법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거침없는 후배의 열정은 신중한 연애에 익숙해진 나를 순식간에 뒤흔들어놓았다. 어떤 연애를 해도 좀처럼 변화없던 내 일상을 20대 때처럼 예상 불가능하게 헤집어놓았다. 다음 날 출근을 위해 밤 10시 전에 귀가하고 밤 12시 전에 자야 하는 생활 패턴, 긴 통화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성향, 예정돼 있지 않은 퇴근 후 만남을 귀찮아 하는 것 등등을 다 바꿔버렸다. 


신기한 건 그렇게 내 일상을 뒤흔들어버리는 그가 밉지 않다는 것이다. 30대 중반까지 유지해온 고정된 생활 패턴을 다 깨버리는 그의 행동, 그의 의외성과 즉흥성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행동은 차분한 내 감정에 설레임을 불어넣었고 내 일상에서 큰 소리의 웃음이 나오게 했다. 


상처 많은 30대 중반의 여성도 불같은 연애가 하고 싶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 반전 매력, 듬직하다. 


못 이기겠다는 듯 시작한 연애. 그가 좋았지만 남들의 시선이 의식될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없는 걱정도 만들어하는 내게는 더욱 그러했다. 


“우리 연애, 괜찮을까?”

“4살 차이는 너무 많지 않아?”

“6년 아래 후배 꼬신 선배가 되고 싶지 않아.”


남자후배를 좋아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말끝마다 걱정을 달고 산다.  어리다는 이유로 ‘남자 후배가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르는 게 아닐까’, ‘순간의 감정 아닐까’ 싶어 걱정됐다. 연차가 6년이나 높은 선배가 후배가 좋다는데 정신 못 차리고 동조한다고 할까 겁이 났다. 무엇보다 또 다시 이별의 아픔을 겪을까 봐 두려웠다.  


그는 한결같이 대답했다.


“후회하는 일 없게 할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선배가 꼬셨다는 말 안 나오게 내가 잘 할게요.”


“내가 잘 하겠다”는 그 말, 그 흔한 말. 모든 걱정을 잠재우고 그를 의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마법의 언어였다.  나이는 어렸지만, ‘네가 잘 해야지’, ‘그렇게 힘들면 헤어져’ 라고 말했던 남자들보다 듬직했다. 


한결같은 그 모습은 그 어떤 연상남보다 내게 신뢰를 줬다. 



-. 맨스플레인이 덜하다


이전까지 만났던 연상 또는 동갑의 남자친구들은 내게 “잘난 척하고 기가 세다”고 지적했다. 톡톡 쏘는 말투는 취재 당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을 좀 부드럽게 할 것을 권하기도 했다.  연상남들은 내게 “넌 어떻게 한 번을 안 지려고 하냐?”라고 꼬집었다.


난 ‘내 연애 방식에 문제가 있나 보다’, ‘연애 부적격자인가 보다’라는 자격지심이 생겼다. 반복된 이별에 내 말투가 연애하기에 부적절하고 성격이 못 돼서 연애를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의 말에 잘 호응해주고 따라주는 여자가 돼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겼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짧은 문장으로 결론부터 말하는 내 말투에서 자신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요리에는 관심 없는 내게 자기가 요리를 잘 한다며 요리를 좋아하거나 배울 필요가 없다고 했다. 


나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줬다. 

 




연하남의 매력을 논했지만, 이 모든 건 나이와는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남자후배와 내가 인연의 실로 이어져있었던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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