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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플민트 Oct 30. 2022

능력있는 연상녀

“남자친구가 4살 어리다고? 이야. 00 씨 능력 있네.”


연하 남자친구와의 사랑, 내 연애는 쉬운 가십거리가 된다.

오늘도 낯선 이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윤활유로 내 연애사가 오르내린다.  

사람들의 반응은 방청객처럼 한결같다.

32살 남자가 36살 노처녀를 만나는 것이 납득이 안 가는 사람들은 내가 능력 있는 여자라고 결론 지어 버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받고 자란 덕에 능력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경제력을 떠올린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거나 비상식적인 일이 생겼을 때 사람들이 수긍하는 가장 쉬운 배경은 돈이다. 

부모형제를 죽이는 패륜 범죄도 돈 때문이고, 가족을 해하는 범죄도 보험금 때문인 세상이니까.

여성이 4살이 더 많은 일반적이지 않은 연애가 여성의 경제력 때문이라고 여기면 납득할 만한 상황인가 보다.


"하여간 대단해. 어린 남자를 어떻게 꼬였대? "

심지어 당연하다는 듯 내가 '꼬였다'는 말을 내뱉는다.

내 경제력이 연하 남자친구에게 가장 매력적인 요인으로 작용했고, 내가 그걸 이용했다는 듯 들린다. 


연애 초, 연하 남자친구는 말했다.

“내가 가진 건 몸뚱이 하나뿐이에요. 그래도 누구보다 열심히 살 자신이 있어요.”


결혼 준비에 착수하면서 흘려들었던 그의 말을 실감하게 됐다.

 

신혼집을 구할 때는 남자 측이 더 많은 돈을 내는 게 불문율처럼 여겨진다.

서울에 전셋집이라도 구하려면 수억 원은 필요한데, 겨우 직장 생활 5년차인 남자친구가 그 돈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의 부모님도 넉넉한 상황이 아니라 집 얘기가 나오면 남자친구가 난감해하는 게 느껴진다.

사실 사회생활을 10년 넘게 해온 내가 더 많은 돈을 모았고 둘이 합치고 대출을 받으면 전세금 정도는 마련할 수 있다. 

난 주저없이 저금통장을 털었고 우리는 집을 구했다.


"미안해요. 내가 능력이 없어서..."


불문율로 인해 부족한 남자친구가 돼 버린 그는 마음이 영 불편한가 보다.

능력 없는 남자라 자책하는 걸 보니 안타깝다.

그도 남성 중심사회의 희생양이구나.


“미안할 것도 많다. 자기가 나보다 더 오래, 더 많이 벌 텐데 뭐가 걱정이예요.”

“응. 내가 열심히 벌게.”


집 구하는 비용, 결혼 비용을 누가 더 많이 내는 게 중요한가.

'호모 이코노미쿠스'로서 충실한 삶을 살아온 엄마는 딸을 이렇게 결혼시키는 게 속상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난 결혼을 하는 게 더 좋다.

내게는 결혼 비용을 누가 더 많이 내든 개의치 않는 능력이 있다. 




사람들은 4살 많은 노처녀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내 남자친구를 이해타산에 밝은 남자로 판단했다.   


하지만 내 남자친구의 능력은 따로 있다.  

매사에 걱정 많고 부정적인 나를 안심시키고 차분하게 만드는 능력.

내가 같은 말을 반복하며 짜증을 내도 남자친구는 지치지 않고 한결같은 톤으로 달랜다.  


“왜 갑자기 말이 없어?"

“몰라.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 슬퍼. 이유를 모르겠어.”

“응. 이유 없이 그럴 때도 있는 거야.”

며 내 손을 잡고 내가 스스로 감정을 다잡을 때까지 아무 말 없이 기다린다.


지금껏 만나온 다른 남자들은 내가 변덕스럽고 예민하다며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 성격 때문에 곁에 있기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남자친구는 달랐다.

“괜찮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고 공감해줬다.

우울한 감정에서 스스로 털고 나오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곁에서 기다려줬다.

감정을 툭툭 털고 나오면 진정되는 신세계를 접하게 해준 남자친구가 구세주 같기도 했다.  


내 우울한 감정을 진정시키는, 나에게만 특화된 남자친구의 능력은 탁월했다.




  

어느새 결혼 11년차...

남편의 경제력은 커졌지만 나에게 특화됐던 진정 능력은 안드로메다로 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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