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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플민트 Sep 01. 2018

나를 망가뜨리는 사랑

                                                                                                                                                                            

                                                                                                                                                

"야, 이 나쁜 놈아. 니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남자친구의 전화를 받던 친구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옆에서 커피를 마시며 안 듣는 딴청을 피우던 내 눈은 동그래진다.


이후 분노가 고스란히 담긴 그녀의 어휘는 더욱 놀랍다.

욕설까지 서슴지 않는 모습은 25년지기인 나조차 처음 보는 모습이다.

욕은 커녕 화가 나도 좀처럼 언성을 높이지 않는 그녀인데,

내 눈과 귀로 직접 보고 듣고도 그녀의 격앙된 모습은 믿기지가 않는다.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화가 났어? "


카페를 나가 밖에서 한참을 통화하고 들어온 친구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분이 안 풀린 듯 친구는 물 한 컵을 순식간에 들이킨다. 

30초 정도 지났을까. 친구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꺼낸다. 


"미안. 놀랐지? 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은데. "


자신도 이렇게까지 화를 낼 수 있을지 몰랐단다.

어디서 들었는지 알지도 못하는 욕으로 분노를 표현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단다.

화를 치솟게 만드는 건 그의 침묵이란다. 

친구의 말을 듣는지 안 듣는지 알 수 없고 친구가 화가 나도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반응. 

아무리 재촉하고 다그쳐도 침묵을 가장한 쌀쌀함은 친구를 분노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다. 

한 번 몰아친 분노를 친구의 표현대로 이성을 잃게 만든단다. 


격한 감정을 소모한 친구는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 친구의 모습이 짠하다. 


"그렇게 화를 머리 끝까지 내는 네가 더 힘들 거 같아."

"응. 정말 힘들고 슬프고 그래. 내 자신을 갉아먹는 느낌이야. "





멕시코의 대표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는 21살이나 많고 이미 2번 결혼해 아이가 4명이나 있는 디에고 리베라와 격정적인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이 사랑은 칼로에게는 독이었다.

18살 때 교통사고로 쇠파이프가 척추와 갈비뼈를 부러뜨려 평생 보정기를 착용하며 육체적 고통에 시달려온 칼로에게 리베로는 병적인 외도로 정신적인 고통까지 가중시켰다. 

유산을 겪은 프리다가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동안 디에고는 아내의 여동생과도 불륜을 저지르기까지 했다.  


칼로의 작품에는 디에고에게 받은 상처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몇 개의 작은 상처들'(1935) 속 프리다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고 그 앞엔 칼 든 디에고가 서있다. 

상처투성이가 된 칼로의 사랑은 예술로 승화돼 대작을 낳았지만, 여자로서 그녀의 삶은 처절했다.


<몇 개의 작은 상처들, 1935년 >



세상 무엇보다 잔인하고 살을 베는 듯한 고통을 주는 사랑이 있다. 

나조차도 몰랐던 최악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극한의 상태로 몰아붙이는 사랑. 

나를 갈아먹고 상처를 주는 사랑은 끊임없이 관계에 대한 회의를 들게 한다. 

관계에 대한 회의는 나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자책을 초래하고 우울감을 만든다.  


상처받고 망가진 시간이 길어지면 상황에 적응하고 순응하게 된다. 

상황에 젖어들면 스스로가 망가지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스스로 판단할 능력을 잃기 전에 상처를 받는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사랑을 멈추고자 노력해야 한다.

내가 하는 사랑이 나의 악한 면을 부각시키고 나를 해한다면 그만해야 한다. 

고통스러울수록 사랑이라고 느낀다면 그건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자신을 해하는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생존 본능을 발휘해야 한다. 


사랑은 내 장점을 부각시키고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이라고, 더 특별한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줘야 좋은 사랑이고 그 안에서 안정감과 자존감을 얻는다. 

자존감은 나 자신이 사회에서 활동하고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어쩌면....

나를 해하고 망가뜨리는 사랑은 사랑이 아닐 수 있다.

스스로 그 고통을 감내할 이유가 없다. 

나에게 맞는, 나를 반짝이게 해줄 또 다른 인연을 분명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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