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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플민트 Dec 01. 2022

나만 모르는 사내연애

"앞으로 내 눈에 띄지 마라. 죽여버리는 수가 있다. "

"너야말로 눈에 띄지 마!"


김민희· 이민기 주연의 영화 <연애의 온도>에서는 사내연애가 실감나게 그려진다.

3년의 비밀 연애가 이별로 마무리되는 순간, 메가톤급 치졸한 공방전이 펼쳐진다.

매일 서로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선물로 줬던 노트북을 돌려달라고 하고, 상대방의 물품을 착불로 보내고, 회식자리에서 서로 욕하고.

보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주고 받게 되고 이별인지 아닌지조차 헷갈리는 상황이 온다.

동료들의 수군거림도 감당해야 한다.


한없이 추한 결말을 맞거나 후유증이 오래 갈 거라는 것을 알고도 시작한 10개월간의 사내연애.

마녀의 독이 든 사과처럼 치명적이지만 너무나 달콤했다.  





회사에서 꽤 벗어난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눈에 익은 얼굴이 맞은편에서 걸어온다.

뜨거운 냄비라도 잡은 것처럼 화들짝 놀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남자친구와의 간격을 넓힌다.


“뭘 그렇게 놀라?”

“놀라지, 그럼. 소문이라도 나면 어떻게 해? ”

“소문 나면 나는 거지. 그렇다고 손을 그렇게 확 빼. 섭섭하게. ”


남자친구는 또 표정이 굳었다. 


우리의 사내 연애를 비공개하기로 한 건 내 의지였다. 

남자친구는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연애가 잘못도 아니고, 어차피 둘만의 일이니 남들과 회사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 될 일 아니냐는 것이다. 

사람들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는 관계는 건강하지 않다, 거짓말을 위한 거짓말이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등등 그의 주장은 구구절절 틀린 게 없었다.  


하지만 비밀연애를 절대 양보할 수 없었다.  

36살, 10년차 싱글 여자 직장인에게 가장 무서운 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거였기 때문이다. 

이미 사람들은 나만 보면 연애, 결혼 얘기부터 물어본다.

업무상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식사 자리에서 내 결혼 유무는 아이스 브레이킹용으로 사용됐고 "왜 안 했냐",  "남자친구는 없냐" 등등의 후속 질문과 참견들이 오가면서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사내연애사의 주인공이 되면, 회사 사람들의 관심은 증폭될 것이다. 

특히 연애 상대가 아는 인물인데다, 6년 후배이고 4살 연하라는 남다른 스토리의 연애사라면 더더욱 할 얘기가 많아질테지.  

내 연애가 남들의 대화 소재, 안줏거리로 전락하게 두고 싶지 았았다. 


업무적으로 불편한 상황이 생기는 것도 싫었다. 

나는 팀원들에게 신뢰를 얻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6년차 아래 후배를 사귀는 날 과연 지금까지와 같은 시선으로 봐줄까 걱정됐다. 

공과 사를 구분 못하고 분별 없는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 철 없다고 하지 않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사내연애가 이별로 결말을 맺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 "여자가 손해"라는 말에 반감을 가져왔지만, 막상 사내연애를 시작하니 헤어질 경우 그 말이 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린 남자후배가 분수도 모르고 연차 높은 여자 선배 꼬셔 사귀더니 차였다란 말이 아닌 연차 높은 선배가 어린 후배 꼬드겨서 사귀더니 결국 차였다거나, 아래 후배가 좋다고 분별없이 같이 좋다고 그러더니 꼴 좋다는 등의 말이 나올 게 뻔했다.

그런 말이 안 나오더라도 "안 됐다", "그 나이에 헤어져서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 섞인 말들이 오가는 것쯤은  불 보듯 뻔했다. 




그 모든 게 걱정되면 안 하는 게 맞는 사내연애.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이길 만큼 달콤했다. 

적당한 고난과 역경은 연애에 감칠맛을 더하는 법. ‘사내’란 단어를 앞에 붙일 수 있는 연애만이 가질 수 있는 짜릿함이 있었다. 


사내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버락 오바마와 미셸 오바마는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다가 회사에 여름방학 실습 온 버락 오바마와 결혼하게 됐다. 

지금은 이혼했지만, 빌·멀린다 부부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와 마케팅 매니저로 만나 결혼에 골인한 커플이다. 




결혼 한 달 전.

지금의 남편과 나는 청첩장을 함께 회사에 돌리며 우리 사이를 공개했다.

회사 사람들은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공개하는 거야? 축하해. 둘이 사귀는 거 다 알고 있었는데, 뭐. "

"알고 계셨어요? "

"응. 둘이 같이 다니는 거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


우리끼리만 비공개고 다들 알고 있었다니. 

우리가 민망해하고 헤어질까 봐 말하지 않고 있었단다.

지금 생각해봐도 회사 사람들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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