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플민트 May 08. 2023

낮술 친구가 콜라를 주문하다

딩크, 난임 부부 되다

01. "나 임신했어"


"난 시원하게 생맥!"

"난 콜라 마실게. "


만나면 늘 반주하기를 즐겼던 C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고 봄바람 살랑살랑 부는 테라스 자리에서는 생맥이 딱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콜라 주문이라니. 어리둥절해하는 내게 친구는 수줍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나 임신했어. 3개월 됐어. "


C의 임신 소식은 예상치 못했다. 결혼이 나보다 1년이나 더 늦었고, 아이를 굳이 낳을 필요 있냐던 친구였다. 만나면 딩크 예찬을 하며 우리 부부, 너네 부부 같이 놀러 다니면서 살자고 해왔다.  


작정한 건 아닌데, 예상치 못하게 아이가 생겼다고 전했다. 막상 아이가 생기니 가족들이 많이 기뻐해줘서 여자로서 많이 행복하단다. 항상 똑떨어진 재킷에 정장 바지를 입었는데 헐렁한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것부터가 C의 두드러진 변화였건만, 둔한 나는 눈치채지 못했다.  


임신이라는 말에 파블로프의 개가 조건반사하듯 나는 "축하해"를 소리치며 하이톤으로 호들갑을 떨었다. 임신에 대한 주변인들의 반응, 몸의 느낌은 어떤지, 일상의 변화가 있는지 등의 질문을 요란스럽게 쏟아냈다. 하지만 속내는 복잡했다. 축하 말고도 드러내지 못한 본심이 있었다. 이기적이고 못난 내 마음속의 말.


너마저 임신하면 나는 어떻게 해?



02. 딩크가 점차 사라지다


결혼 직후, 주변에는 딩크족을 하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신혼을 즐기기 위해, 집을 장만할 때까지, 서로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해, 아이를 경쟁사회에서 키우기 싫어서, 육아에 대한 부담,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반발,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위해 등등 사유도 다양했다.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신혼부부 통계 발표에서 봐도 결혼 1~5년 차 신혼부부 중 44.5%가 자녀가 없었다.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하지만 결혼 5~6년 차를 넘어가면서 주위에서 딩크족들은 점점 줄어든다. 통계청 자료에서 5년 차 부부로만 좁혀보면 자녀가 없는 비중이 20.4%로, 5쌍 중 1쌍꼴이다. 5년 차 이후 부부로 좁히면 딩크족 숫자는 더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동조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사회적 신념이나 개인적 확신에 따른 딩크가 아닌, 나처럼 '굳이 낳을 필요가 있나' 정도의 '어쩌다 딩크'들은 아이를 낳을 때까지 출산 여부를 고민한다. 세상은 변했다지만 나를 둘러싼 작은 세상 밖으로 나가면 출산을 의무처럼 얘기한다. 집안 어른들은 만나면 한숨 돌리기가 무섭게 "아이는 언제 낳을 거니?"라는 돌림노래를 부른다. 결국 주변 사람들과 비슷한 행동을 하고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동조 현상은 대부분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가장 많은 이들이 춤추는 박자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정답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처음 와 본 외국 식당에서 식사 예정을 잘 몰라 헤매게 되더라도 주위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하면 곤란한 상황을 잘 넘길 수 있는 것도 그 예다. 집단 내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따르는 방식에 함께 동조함으로써 안도감을 얻게 된다.


그렇게 딩크족은 사회구성원의 소수가 돼간다. 삶의 대부분을 육아가 차지하는 주변인과의 대화에 진지하게 끼는 것은 쉽지 않다. 주워들은 얘기에 기초한 나의 공감과 호응은 겉도는 수준일 뿐 더 깊은 상호작용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자녀를 통해 맺어지는 인간관계와 단절되면서 소외감이 들기 시작했다.   



03. 미완의 삶


대체로 다수에 속해 살아왔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초중고교를 나왔고 4년제 대학을 다녔다. 이후 회사에 취업해 월급쟁이로 살아왔다.


처음 사회적으로 소수가 된 경험을 했을 때가 36살까지 결혼이 늦어졌을 때다. 대단한 소신이 있어서 늦어진 게 아니라 내 짝을 찾지 못해서였다. 대다수의 사람들과 크게 차이 없이 생애 주기의 흐름에 따라 정답처럼 여겨지던 삶을 살아왔는데, 엉겁결에 뒤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뭉쳐 놀던 친구들, 또래의 회사동료들 대부분이 결혼을 한 상태였다. 모두가 코인을 사면 사야 하고, 모두가 샤넬 백을 사면 하루종일 대기를 감내하고서라도 사야 하는, 지극히 대세에 따르는 삶을 살아온 나였다.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은 모두 최대한 경험하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온 터였다.


남들과 같은 생애주기에 끼지 못한다는 생각에 조급증과 도태 불안이 생겼다. 가장 부러운 이가 결혼한 사람이었다. 빨리 결혼이라는 숙제를 해치워서 생애주기 속도를 최대한 맞추고 싶었다. 33~36살까지 인생 최대의 목표는 결혼이었다. 15년 넘게 살아온 월세살이를 청산하고 내 집을 장만하고 싶다는 꿈, 자격증을 따고 싶다는 계획 등등은 죄다 결혼 이후로 미뤘다.


내 스스로 내 삶은 미완이라고 여긴 것이다. 우리 사회도 혼자 사는 삶이 미완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규정한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방송에서는 3~4인 가족을 이상적으로 그린다. 혼자 사는 사람들을 단지 혼자라는 이유로 '미운오리새끼'라고 부르고 그들의 행동을 철없고 한심하다 한다. KBS 주말 드라마 '진짜가 나타났다'는 대놓고 비혼주의자를 결혼시킨다.


                                                                                                                    



37살이 되기 15일 전에 한 결혼으로 다른 사람의 생애주기에 뒤늦게 합류할 수 있게 됐을 때, 밀린 숙제를 끝낸 후련함이 몰려왔다. 사회적 절대 다수에 속하고서야 인생의 다음을 그려나가겠다는 여유도 생겼다.


무자녀 결정으로 또다시 남들과 같은 생애주기를 맞추지 못하자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딩크를 맘 먹었지만, 대다수가 정답이라고 말하는 삶을 나 혼자 독단적으로 외면하는 게 아닌가 라는 불안감.



04. 1인분 이상의 삶


딩크를 함께 논하던 친구들의 임신 소식을 그렇게 나의 불안감과 조급함을 건드렸다. 오랜 세월 익숙하던 '딱 1인분의 삶' 너머의 풍경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딩크였던 친구가 아이를 향해 전에 볼 수 없던 환한 웃음을 지으며 혀 짧은 소리를 낼 때, 출산과 육아의 세계에 어떤 파랑새가 있길래 사람이 저렇게까지 바뀔 수 있는 걸까 궁금했다.


마흔 언저리 나이에 맞지 않게 문득 너무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이상 내게 아이를 낳으라고 압력을 넣는 사람도 없을 때쯤 또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전 04화 부부의 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