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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플맘 Nov 16. 2020

육아와 일 사이 그 어딘가(2)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일까 

(이번 글을 쓰며 1편의 내용을 약간 수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글에 들어가는 삽화는 새로운 스타일을 한번 시도해 그려보았습니다.)


'나는 과연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한동안 나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서 일없이 지냈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 

과연 내가 현재 엄마로서 육아와 일을 과연 잘 병행하고 있는 것인가...

둘 다 잘하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 했다...

... 등등의 의구심이 들었고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 그동안 내가 작업해서 인스타에 올리던 

"네덜란드에서 지내고 있는 나의 일상과 육아생활"에 대한 

개인 작업들은 잠시 중단하게 되었다.

나 자신이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한번 느껴지기 시작하니 아무것도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알고 지내던 네덜란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친구는 아이가 둘에다가 이 곳에서는 다양한 페스티벌과 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는

'열혈 워킹맘 엄마'이다. 

이 엄마를 알게 된 것은 다른 네덜란드 워킹맘 엄마(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예술가)를 통해서였다. 

예술가 엄마는 과거에 내가 애플이를 낳고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초췌한 모습으로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길에서 만났었는데 (그때는 건너서 얼굴만 알던 지인이었다)

그러면서 집에 초대받아 함께 차를 마시고 작업을 하며 

육아의 고충과 각자의 엄마로서의 삶 등을 얘기하다가 많이 친해졌던 지인이었다. 

(전 세계의 양육자들은 육아 이야기와 아기 이야기로 쉽게 대동 단결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예술 쪽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워킹맘 엄마에게 나를 소개해줬고  

그 후 이 열혈 워킹맘 엄마와는 같이 일을 하면서 친해진 것이었다. 


열혈 워킹맘 엄마: "J, 요새는 인스타그램에 그림도 안 올리고... 무슨 일 있어?"

(이 열혈 워킹맘 엄마는 이후부터는 "열혈맘"으로 부르겠습니다)


나: "아니.. 그냥... 요새 좀 이런저런 이유들로 

나 자신에게 자신감이 떨어져서 개인 작업들을 못 그리고 있어."


열혈맘: 오우 노우... J.... 그러면 안되쥐~ 네가 얼마나 멋있는 사람인데! 자신감을 가져! 넌 잘 될 거야! 

다름이 아니라 이렇게 연락한 이유는...

내가 너의 인스타그램을 내가 알고 있는 네덜란드 기획자에게 보여줬더니 흥미롭대.

그 사람이 곧 너에게 연락을 할 거야." 


나: 앗... 정말? 너무 고마워...ㅠㅠ


그 후 열혈맘이 소개해주었던 기획자에게서 연락이 왔고 

몇 번 메일을 주고받다가 오프라인에서 직접 미팅을 할 수 있었다.

애플이는 어린이집에 가는 날이었기에 나는 아무것도 쫓기지 않고 홀가분하게 

관련 자료들을 꼼꼼하게 준비해 든 채로 미팅 장소에 나갈 수 있었다. 


와... 아이 낳은 후 이렇게 미팅하는 것은 오랜만이다...
애 없이 혼자 굽 있는 구두를 신고 외출하는 것도 얼마만이냐...
와.. 가방에 기저귀와 물티슈, 물통이 없으니까 엄청 가벼워... 감동이다...


다행히도 기획자는 나의 포트폴리오와 아이디어등에 

긍정적인 관심을 보였고 

그 후 함께 할 프로젝트들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기로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열혈맘과 다른 아티스트 맘 친구는 자신들의 일처럼 기뻐하며 

정말 잘 되었다고 그것 보라고 너는 할 수 있으니 자신감을 가지라고

으쌰 으쌰 나를 많이 응원해주었다. 


기획자는 싱글이라 아직 아이가 없는 분이었는데도 

내가 엄마가 된 이후로 만든 나의 개인 작업 물들을 마음에 들어했다. 


그렇게 업무 관련해서 만난 클라이언트가 

 내가 '엄마'이자 또 '크리에이터'로서 만든 

나의 개인적인 감정과 상황들이 녹아들어 간 작업물을 인정해주자 

나는 그날 처음으로 one of them 이 아닌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는 Only one 이 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모든 일은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지만 일단 지금은 긍정적인 미팅 결과와 

그 후의 미팅 결과들에 의의를 두며 이 글을 썼다.)


그날 오후 내내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오늘 일은 아니러니 하게도 내가 '엄마'라서 얻어진 결과물이야. 
내가 만약 그동안 아기를 키우며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힘들다고 
그냥 일을 포기했거나 그동안 (산후우울증 때문에 시작한 것이긴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오늘 같은 긍정적인 미팅 자리는 없었겠지...
아이러니하게도 그쪽에선 내가 엄마가 된 후로 만든 작업 물들을 좋아했으니까.

앞으로도 나는 육아와 일 둘 다 잘 해내고 싶어.
물론 힘들겠지만 한번 계속해보자...




그날 결심한 이후 나는 육아와 일 사이의 구분선을 확실하게 짓기로 했다. 

아기를 돌보는 시간에는 일에 대한 나의 열정의 스위치는 확실하게 끄고 

오롯이 아기, 육아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내 머릿속에 스위치를 만든 후 

내 시간표에 맞춰 그것을 켰다 끄는 것을 상상했다.

 스위치를 켰다.

내 시간을 갖는다. 내 일을 한다.

스위치를 껐다.

아이에게만 집중을 한다. 


이렇게.


대신 그 열정은 아기가 어린이집을 가거나 잠든 밤, 

나 혼자 있을 때 꺼내어 마음껏 활활 태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자 육아와 일 사이에서의 뚜렷한 구분선이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

또 일을 하는 시간이 확실하게 정해지니 일을 할 때는 

집중력이 무시무시하게 높아지는 업무 효율성도 얻었다. 

(내가 예전 아기 낳기 전에 이 집중력으로 일했어야 했는데...)



그리고 일은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하되 

오버해서는 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때로는 아쉽더라도 포기할 거는 포기하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마침 읽던 동화책에서 내 마음과도 같은 대목이 눈에 띄었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그림책 <엄마는 해녀입니다> 중에서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인스타그램에 내 개인 작업을 그려 업데이트했다.

업데이트 버튼을 누른 후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어두운 밤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서늘한 밤공기가 들어왔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는지 이웃의 모든 집들은 불이 꺼져있었다.

조용한 밤이라 이 세상에 나 혼자 뿐인 기분이 들었다.

나는 밤공기를 마시며 아주 오랜만에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내일은 또 하루 종일 혼자 아이를 돌보며 정신없는 하루가 될 것이지만 

아이가 잠든 이 밤은 오롯이 나만의,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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