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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플맘 Apr 01. 2021

나는 왜 새벽까지 일을 할까

타국에서 나의 존재의 이유란

'나는 왜 새벽까지 일을 할까?'
'그리고 나는 굳이 왜 네덜란드에 살아야할까?'




내일이면 벌써 2021년의 4월이 된다.

지난 3월은 정말 바쁘고 정신없던 한 달이었다.

책 표지 외주 프로젝트 두 개에 

난생처음으로 네덜란드에서 하는 개인전 준비에...

거기다가 두 살 아기 애플이도 거의 한 달 내내 아팠다.


애플이는 어린이집을 일주일에 이틀 가는데

3월에는 내가 일할 시간이 너무 물리적으로 부족해서

일주일에 하루씩을 추가로 더 신청했었다. 

그런데 정작 아기는 그 추가 날짜에 어린이집을 갈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이 아팠었다.

거기다가 남편도 아프고 나도 덩달아 아파서

겁이 덜컥 난 우리는 다 같이 코로나 테스트도 받았었다.

(풍문대로 눈물 나게 따끔하더라!)


다행히 가족 중 아무도 코로나 환자는 아니었지만 

결과를 기다리는 48시간 동안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아픈 아기와 집에만 있는 것은 쉽지 않았다.

원래 아기에게 스크린을 지나치게 보여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데 

나도 남편도 너무 지치다 보니 아이에게 어쩔 수 없이 유튜브를 많이 보여줬었다.


이런 폭풍 같은 3월의 한가운데서 

어떻게든 엄마로서 또 프리랜서 창작자로서 

육아와 일을 모두 다 "잘" 잡고 싶었던 나는 

육아 퇴근을 한 밤 11~12시부터 일을 시작해 

매일 새벽 4~5시를 넘어서 일을 하다가 잠들었다.

(솔직히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못 하고 멍하니 있다가 그냥 잠든 적도 많다.)


새벽에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 

애플이와 놀아주고 밥을 챙겨주고 책 읽어주고 산책하고 

하다 보면 아기의 낮잠 시간. 

정말 죽은 시체처럼 낮잠 자는 아기 옆에서 함께 자고 일어나 

저녁을 다 같이 먹고 좀 쉬다가 남편과 아기가 잠든 밤이면 

아기 장난감 등으로 엉망이 된 집을 치우고 식기세척기 돌리고 등등..

다시 밤 11시부터 책상에 앉아 새벽까지 일을 했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정말 정신없이 하루하루 살다 보니 

집에서 며칠 동안 밖에 나가지 않은 적도 많았다.


그렇게 지내다가 문득 거울 속의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온 나를 보고 든 생각.


나는 왜 이렇게까지 일을 할까? 
왜 남들은 다들 자는 이 새벽까지 (수명을 깎아가며) 일을 할까?



물론 수입이 있으면 좋긴 하지만

굳이 그것 하나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슨 이유가 있는 기분이었다.


지난 며칠 나는 곰곰이 이 이유를 생각해봤다.

그리고 오늘 문득 남편의 옆모습을 보고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


나는 현재 네덜란드에 살고 있다.

남편을 만나 이곳에 산지 어언 4년째가 다 되어간다.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 동안 이 곳에 살며 처음보다는 많이 적응했지만 

그래도 아직 이 곳은 내게 한국보다는 낯선 나라이다.


근데 나는 단지 남편 때문이 아닌...

난 아마도 내가 이 타지에서 살고 있는 또 다른 이유를 찾고 싶은 것 같다.


꽃 놀음도 한 철이지...

설렘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일상의 한 부분이 된다. 

사랑이라는 이유 하나로만 한 사람에게 의지해 

내 평생을 이 낯선 나라에서 살게 된다면 결국 나 자신이 힘들어진다. 


내가 이 나라에 살면서 

출산 후 향수병과 산후 우울증이 극에 달 했을 때 

'내가 너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내가 왜 굳이 여기에 살아야 할까...'

등등...

이런 생각들을 가끔 했었고 남편하고 싸울 때도 종종 입 밖으로 꺼냈었다.

(미안...)


그러면서 한 사람에게만 의지해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도 버겁고 

나 자신에게도 참으로 버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신이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이고 그러므로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100% 맞춰줄 수는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에서 갈등은 생기게 된다.


나도 처음에는 남편에게 많이 기댔었는데...

살면 살수록 상대방에게 의지를 하면 하는 만큼 

내가 작아진다고 느껴졌었다.


내가 네덜란드에 사는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나는 이 나라에서 남편이 아닌 나의 존재의 이유를 찾고 싶다.


시간이 흐른 후 

'내가 여기에 온 것은 너와의 사랑 때문이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이 곳에 사는 것은 나를 위해서야'라고 

생각하고 싶다. 


사람마다 각자의 기준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타지에서의 행복한 삶이란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 존재의 이유를 

내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만들어내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 


사랑한다고 상대방에게 기대는 것이 아닌

내가 오롯이 혼자서도 그 옆에 설 수 있는 것. 

인생이라는 길을 상대방에게 업혀서가 아니라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것.


그런 마음가짐으로 

비록 늘 수면, 체력 부족이라 피곤하지만 

하나하나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면서 

내일 하루도 열심히 살자고 마음먹는다.



아기가 아프면 정말 일상이 정지된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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