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직업으로서의 나의 일
교육,
내가 업으로 삼은 그 단어를 사랑한다.
처음 대학에서 뭣도 모르고 들었던 교육학 수업들을 기억한다.
교육심리, 교육사회, 교육철학 등
처음부터 교직에 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런 수업을 들을 때 교육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과 묘한 흥미가 어렴풋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교직을 선택한 건,
차선책이었다.
왠지 선생님은 시간이 많을 것 같다는 착각과
선생님을 준비하는 그 시간동안 내 미래에 대해 더 생각해볼 수 있다는
시간적 유예 때문에 대학마저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첫번째 대학에서의 교직이수는 어쩌면 지금 내 삶을 이끈 작은 연결고리였을지 모른다.
일을 하다보면 첫번째 직장처럼 시들해질까, 금방 뛰쳐나올까봐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이 직업, 하면 할수록 첫해보다 두번째 해가 더 좋고
두번째 해보다 세번째 해가 더 좋다.
늦게 시작한만큼 나이에 비해 배테랑도 아니었지만,
이전의 사회경험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나의 직장은 이전 직장에 비해 지상 낙원처럼 느껴졌고
파릇파릇한 아이들이 나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니
학교라는 곳은 사회가 만들어낸 안전한 울타리처럼 느껴졌다.
나의 성장시절을 모두 보내온 학교라는 곳을 졸업해서
다시 학교로 돌아가게 될 줄 상상도 못했거늘,
나는 다시 이 작은 교실로 돌아왔다.
20대, 나는 열정이 많은 선생님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교실을 만들고자 새로운 교육방법들을 시도해보고 신선한 수업들로 학급을 운영했다.
작은 시골학교의 풍경은 참 예뻤다.
내가 오롯이 이 교실, 이 학급을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 책임감이 들면서도 충분히 설렜다.
음악시간에는 아이들과 운동장 큰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깔고 수건놀이를 하며 노래를 불렀다.
매일 4교시 끝나기 전, 반원으로 모두 모여 그림책을 한장 한장 넘겨주며 읽어주었다.
아이들은 그 시간들을 기다리고 참 좋아했다.
누군가가 좋아하는 일을 내가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일이 참 벅찬 일이었다.
아이를 갖고 오랜 기간 휴직을 하며 다시 학교로 돌아갈 때,
설렘보다 큰 두려움과 용기가 필요했다.
충분히 공부하고 준비하며 보낸 후 시작했던 교직과
엄마로서 충실하다 어느덧 중년이 가까운 상태에 빈 손으로 돌아간 것 같았던 복직은 느낌이 참 달랐다.
사회생활은 그 자체로 용기를 내야만 했다.
하지만 학교는 움츠려들었던 내 어깨를 다시 펴게 만들기도 했다.
아이들의 환대,
내가 뭐라고,
아이들은 선생님을 참 좋아한다.
엄마가 되고 돌아간 학교에서 나는,
매년 바뀌는 교육현장에 빠릿빠릿한 젊은 선생님들과는 다른 느낌이었고
그렇다고 경력많은 베태랑 교사도 아니었다.
첫 교직에 섰을 때처럼 반짝반짝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지만,
마음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았다.
내가 맡은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그 자체로 빛이 났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 우리반 모든 아이들을 마음으로 만나게 됐다.
함께 음악을 듣고 어제의 이야기와 힘든 일과 즐거운 일, 각자의 추억을 듣고 말하는
일상을 나누는 사이가 되어 한 해를 함께 꽉 채워 보냈다.
교실은 나에게 참 안전한 공간이었기에
아이들에게도 행복하게 숨쉴 수 있는 공간이길 바라며 우리반만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바깥에서 힘든 일이 있었어도
이 곳에서는 모두가 안전할 수 있도록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이끌었다.
작은 다툼과 시기, 질투는 가족 간에도 있을 수 있지만, 가족을 미워하진 않으니깐
우리반은 하나의 공동체이자 가족같은 존재로
모두가 이 안에는 안도하고 행복하길 바랐다.
실제로 나는 교실에 들어오는 순간이 행복했고 아이들에게도 말했다.
학교에 오면, 특히 교실에 오면
너희들만 만날 수 있으니깐 참 좋다.
다른 어른들 눈치도 안봐도 되고, 좋은 아이들만 볼 수 있으니깐 좋다.
몇 몇 튀는 아이들은 복도에서 우당탕 뛰다가 다른 선생님 혹은 교장선생님께 혼나기도 했는데,
보통 그 말썽쟁이라 불리던 아이는
내가 교장선생님께 혼날까봐 오히려 미안해했다.
어떤 아이는 내게 더 혼날까봐 걱정하기도 했다.
"교장선생님께 혼났다며? 괜찮아. 쫄지마. 뛸 수도 있지, 뭘 혼내시고 그럴까. 그치?"
"다른반 선생님한테 혼났다며?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왜 우리반 아이를 혼내셨을까.
엄마들이 내 자식이 다른 어른한테 혼나고 오면 기분 나쁘잖아. 그래서 나도 그게 기분 나쁠 뿐이야."
우리들은 우리들만의 이야기로 교실을 가득 메웠고,
나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아이들이 좋았다.
아이들도 자기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교실이 좋았으리라.
방학 때는 손편지를 써서 우체국에 편지를 보냈다.
어른들의 고지서 가득한 우편함만이 아닌, 내 편지가 있는 우편함이 반갑길 바라며.
모범생은 모범생 나름대로 예쁜 행동을 하고,
소위 요주의 인물이라 불리는 아이들은 그 나름대로 예쁜 행동을 한다.
모두 다 아이다.
물론 내 통제를 벗어나는 아이도 있지만, 그 아이마저도 내가 주는 마음은 느낀다.
그걸 느끼고 있다는 걸 나 또한 느낀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만큼의 마음을 주면 되는 것이다.
그 아이로부터도 다 받는다.
교실에서 이렇게 반짝반짝한 아이들을 알까 싶어 궁금해하지도 않을지 모르지만,
엄마들에게도 그렇게 전화를 하곤 했다.
나만 알기 아까워서. 알려주고 싶어서.
엄마들도 이 마음들을 다 느낀다.
그런데, 엄마들이 아는 것이 뭐가 중요하나.
내가 아이들과 나눈 그 교실, 그 시간 속 온기가 중요하지.
한 해를 마치고 통지표 정리에 정신이 없다가도 마지막 인사를 돌리며
OO이를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고
울컥하기도 한다. 내가 엄마가 아닌데, 이게 무슨 말인가 싶지만,
나는 이제 아이들의 성장을 못 지켜보는데, 각 아이의 엄마들은 계속 함께 할거니깐
나도 모르게 그런 말들이 나오고 말았다.
가장 말 안 듣던 아이도 선생님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더 미안하다.
많이 혼났던 아이들끼리 "선생님 보고 싶지 않냐?"
"말하지마. 말하면 더 보고싶으니깐."
이런 대화가 오갔다니, 나 참 행복한 선생님 아닌가.
그래서 , 일하지 않아도 일상에 허덕이는 내가
현장으로 돌아간다.
더 허덕일테지만, 또 다른 행복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