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전 내 마음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이기 이전에
나 자신으로서의 '나'를 위해
복직을 한다.
어린 아이들을 키우며 일을 안해본 것도 아닌데
1년만에 다시 시작하려는 일은
내 온몸을 갑작스레 경직하게 만든다.
대충 먹은 점심도 소화가 안되는 것 같고
첫 날은 무슨 일을 할까, 어떻게 보내야 할까
또다시 신입처럼 쩔쩔맨다.
내가 선택한 일임에도 목구멍까지 탁 막힌듯 답답함과 막연함에 대한 걱정도 있다.
지금까지는 걱정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설렘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려고 했고, 일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많은 이들처럼 나 또한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또 다른 삶으로의 복귀는 나를 다시 매우 긴장하게 만든다.
나는 그 긴장이 그리워서 돌아가려고 했을지도 모르면서.
당장 내일 아침 출근을 해야 한다는 걸 잊고 아이들을 맡길 곳도 찾아보지 않았다.
어떻게 되겠지라는 이 막연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근거없이 나오는 것일까.
다행히 유치원 문을 일찍 열어주겠다고 했고,
안되면 다른 엄마에게라도 며칠 부탁해볼까. 하는 이런 막연함.
아직 복직 전인데 오후는 한 시간 정도 일찍 나갈 수 있을까,
아니면 유치원이나 학원에 그냥 더 있게 해달라고 하면 되겠지 라는 막연함.
모든게 철두철미해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다 방책을 세워놓아야 할테지만,
그럭저럭 또 잘 되지 않을까라는 이 근거없는 막연함은
나를 다시 일하러 가게 한다.
세상에 대한 공부를 할수록,
내가 무슨 일이든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이 세상에 숨 쉬고 살아가고 있는데,
나 자신으로서의 삶이 없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와 세상을 더 탐구하고 공부하기에도 시간을 쓸 수 있는데
나는 현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일단 해보며 생각하자고 또 나를 내몰고 있다.
모든 일을 잘 할 수 없지만, 무슨 일이든 해야한다는 생각에
무언가를 하지 않았을 때는 답답한 마음이 들곤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된다.
주부는 주부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직장에서는 일로서.
내가 가진 경험은 어디에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보면
세상은 자전거타기와 같다는 아인슈타인 말이 떠오른다.
균형을 잡기 위해서 계속 굴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
제발, 이만하면 됐어. 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나는 무슨 바퀴를 굴리고 있는걸까.
저마다의 바퀴를 굴리는 이들이 존경스럽고 대단하게 느껴진다.
내 머릿속은 뒤죽박죽, 원하는 것도 잘 모를 때가 많고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분류하기도 아직은 어렵다.
막연히, 그렇게 막연히 살아가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정리를 참 못하는데, 그래서 더 정리하게 되고
기록을 잘 못하는데, 그래서 더 기록하려고 한다.
자기를 거스르는 것,
누군가 나에게 P형이 J형이 되려고 한다고 얘기했다.
펭귄이 자기 날개로 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날개짓을 하는 책이 떠올랐다.
자기 날개로 못날지라도 결국 다른 방법으로 날았던 펭귄.
내가 원하는게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모습과 많이 다를지라도
내 마음에 들어왔다면,
나는 그것을 하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언젠가, 아니 지금부터 조금씩 더 계획형 인간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다이어리가 각잡힌 글들로 가득하진 않아도
어느정도 분류되고 기록되어 쌓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에게 들어온 이 마음을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