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한글 독서와 영어독서 반드시 병행해야 할까?
#5 한글과 영어를 배우는 시기
여섯 살 무렵 딸아이는 아직 한글을 잘 몰랐다.
딸아이의 친구들 중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한글을 배우기 위해 학습지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책을 읽어줄 때 글자를 짚어가며 읽어주어 벌써부터 한글을 뗀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어줄 때도 글자보다는 그림에 눈이 머물러 있는 아이를 그냥 놔두었다.
사실 아이가 더 어렸을 때 나도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았었다. 종이에 기억, 니은을 적어가며 가르쳐보려고도 해보았고 학습지 선생님을 불러 한 달 동안 수업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아이는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한글 배우기에 영 소질이 없어 보였고 글자에 대한 호기심도 없어 보였다. 다른 아이들이 한글을 하나, 둘씩 떼고 글을 읽어나가기 시작할 때 살짝 속이 타긴 했지만 한글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만 떼면 되지 뭐..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다가오면서 한글을 가르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알림장도 적어와야 하고 받아쓰기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배우고 입학하는 게 아이가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지인으로부터 EBS 프로그램 한글이 야호가 아이들 한글 배우기에 효과적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한글을 따로 가르치지 않았는데 아이가 한글이 야호만 반복적으로 보다가 한글을 배우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에 솔깃했던 나는 그때부터 아이에게 한글이 야호를 보여주었다. 평소 TV나 동영상을 잘 보여주지 않았던 아이라 그런지 더 즐겁게 보는 것 같았다. 그 프로그램을 시청한 지 약 한 달쯤 되자 신기하게도 아이가 한글을 더듬더듬 읽기 시작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아이들마다 무언가를 배우기에 적절한 시기가 있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일곱 살이 되면서부터 다니게 된 영어유치원에서 영어 알파벳을 익히게 되고 파닉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영어유치원에 다닌 지 8개월째 접어들었을 때 영어로 된 책을 처음 스스로 읽기 시작했는데 한글책 읽는 수준과 영어책 읽는 수준이 비슷비슷했다. 둘 다 더듬더듬 한 글자 한 글자 읽을 수 있는 단계였다.
그때만 해도 나는 아이의 책 읽기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한글 학습도 따로 시키지 않았고 영어도 유치원에서 하는 것 이외에는 따로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아이가 읽어달라고 하지 않으면 내가 먼저 나서서 읽어주는 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유치원 졸업을 앞두고 독서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유치원 졸업을 앞두고 아이에게 한글책과 영어책들을 여러 권 구입해서 읽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문으로 된 글과 한글로 된 글을 읽는 수준이 거의 비슷하게 초보 수준이었기 때문에 한글과 영문의 비중을 같게 해서 책을 읽어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와 함께 동네 중고서점을 방문해서 저렴한 가격에 세계명작동화 시리즈와 명화를 기반으로 한 동화책 두 질을 구입했는데 글자가 크고 그림도 모든 페이지에 들어가 있는 책이었다.
매일 한글책 두 세권, 영어책 두 세권 정도를 아이에게 읽어주었고 처음엔 그림만 보면서 넘기는가 싶던 아이가 가끔 글자를 더듬더듬 읽어보기 시작했다.
영어책과 한글책의 수준이 같아서 특별히 영어책을 더 좋아한다던지 한글책을 더 좋아한다던지 하는 건 없었다. 일단은 그림이 예쁘거나 궁금해 보이면 읽는 것 같았다.
당시 딸아이에게 읽혔던 영어책은 인터넷에서 구입한 중고서적 Golden egg book 시리즈였다.
Golden egg book은 유명한 세계명작동화나 월트 디즈니 동화, TV시리즈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양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당시 아이가 읽기에 글밥이 많은 것도 있었고 적당한 것들도 있었다. 모든 책을 다 읽으려 하지는 않았지만 일단은 그림이 예쁘고 화려했기 때문에 아이가 책 보는 것을 상당히 좋아했다.
난 아이가 한글책과 영어책의 균형을 잘 맞추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때문에 아이에게 영어책을 많이 읽혀서 리딩 레벨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 즈음에도 아이가 한글책 읽기를 멈추지 않도록 도왔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영어로 된 책만 읽히고 한글책을 멀리한다면 어느 정도의 레벨까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몰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상위 레벨로 올라가기에는 어려움이 생기게 되기 때문이었다.
한글책 읽기를 통해 배우게 되는 여러 가지 배경지식과 정서들을 영어로 된 책에서 배우기란 쉽지 않다. 물론 영어 노출이 한국어 노출보다 많은 곳에서 생활한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 수 있지만 한국에서 영어공부를 하는 아이들이라면 영어독서와 함께 한글책 읽기는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