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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해

by iwasyourone

심은하, 성유리, 이송정.


엄마는 닮았다고 듣는 유명인도 남달랐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를 통해 예쁘다는 표현이 천차만별인 걸 알았다. 사람들은 엄마에게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해서 경국지색이다, 살면서 이렇게 예쁜 여자는 본 적이 없다, 강원도에만 있기에는 아까운 인물이라고 했다. 대학을 서울로 오면서 그래도 서울에서는 엄마보다 예쁜 사람을 많이 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중에 3살 어린 동생이 대학에 와서 “누나, 근데 서울에도 엄마보다 예쁜 사람이 없더라.”고 했을 때 같은 궁금증을 품었다는 데 놀랐다. “아, 누나보다 예쁜 사람은 엄청 많음.”이라고 덧붙이는 말에는 니킥을 날려야 했지만.


엄마는 소위 말하는 ‘사기캐’였다. 요리부터 다림질까지 집안일을 완벽히 해내는 것은 물론 평일에 문화센터에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쳤고 자기 전에는 일본어를 공부했으며 주말에는 성당에 나가 청소를 했다. 그와중에 동생과 아빠의 식사까지 모두 챙겼고 전화를 잘 받지 않는 딸에게 연락을 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제일 바쁜 사람을 묻는다면 동생과 나, 아빠는 단번에 엄마라고 말할 것이었다. 그리고 올해 봄 엄마의 모든 스케줄이 멈췄다.


엄마가 입원하기 전날 회사에 있을 때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와도 통화를 자주 하는 사이가 아니어서 무슨 일이 있구나, 금방 알아차렸다. 아빠는 엄마가 작은 검사를 받아서 다음 날 서울에 가니 내게 연차를 내고 병원에 오라고 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병원에서 보호자를 한 명밖에 못 들어오게 하니까 내가 병원에 와도 들어올 수는 없고 입구에서 헤어져야 한다고 했다. 회사에서 전화를 받았기에 효율을 따졌다는 핑계를 대고 싶지만 나는 아빠가 있는데 왜 나까지 병원에 가야 하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아빠. 나 내일 일해야지. 병원 앞에서 잠깐 인사만 하러 갈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냥 이번 주말에 원주로 갈게.”


“…결과가 암일 수도 있어. 아니 암일 거야. 엄마가 너한테는 말하지 말랬는데. 그러니까 잠깐이라도 와서 얼굴 보여주고 가.”



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 찾아왔던 기분은 생소함이었던 것 같다. 여전히 얼굴에서 광이 나는 엄마가 암에 걸린다는 상상, 아빠보다 8살이나 어린 엄마를 먼저 잃는다는 상상은 살면서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에게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그 다음에 찾아온 건 나 자신에 대한 혐오였다. 병원에 안 간다고? 내가 방금 뭐라고 한 거지. 엄마가 평소에 입버릇처럼 말하던 “죽기 전에 100번도 못 보겠다”는 말이 떠올랐다. 엄마, 우리 진짜 100번도, 100일도 못 보면 어떡해. 엄마가 쓸데없는 말을 해서 이런 일이 생긴 거야. 엄마 말대로 되면 어떻게 할 거야.


휴가계를 내고 퇴근길에는 교보문고에 들렀다. 병원 침대 책상에서 하면 좋을 100자 퍼즐, 스도쿠 책, 일본어 잡지를 여럿 샀다. 계산대에서 23만원이라는 금액을 듣고서야 정신이 좀 들었던 것 같다. 진정하자. 너무 많이 샀다. 다음 날 엄마에게 퍼즐 세 개와 잡지 두 권만이 담긴 종이가방을 전했고 엄마는 이게 다 뭐냐며 그저 명절이 아닌 때에 딸을 만났다고 기뻐했다. 바쁠 텐데 이 멀리까지 왔다고 자신의 병을 미안해 하는 사람. 암에 걸리고도 내 걱정을 하는 엄마가 믿기지 않아 울분이 일었지만 슬픔 대신 모성애를 느끼기로 택한 엄마의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서로의 눈을 3초 이상 바라보지 못하는 모녀가 안쓰러웠는지 아빠는 서둘러 병원으로 들어가려고 했고 그때 엄마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커다랗고 하얗고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그것을.



“이제 나는 쓸 일이 없으니까, 너 주려고 가져왔어.”


“엄마. 이렇게 큰 걸 담을 데도 없는데 어떻게 들고 가.”


“어머, 미안. 그 생각은 못 했네. 다시 넣어야겠다. 다음에 집에 와서 갖고 가.”



엄마와 아빠는 허둥지둥 병원 안으로 들어갔고 회전문을 빠져나오는 사이 으흑흑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엄마는 어쩜 저럴까. 저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당신의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하러 오면서 딸에게 주겠다고 생리대를 챙길 수가 있을까. 자식을 낳으면 부모님의 마음을 알게 된다던데 나는 딸을 낳게 된다 해도 감히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것 같았다. 엄마에 대해 생각하다가도 결국 엄마가 그래서 내가 이렇다며 나를 이해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말았던 긴 시간이 떠올랐다. 가족이 우선순위가 아니라서 미안하다는 자책에 “민초 너가 그냥 그런 사람인걸 어쩌겠니.”라고 되려 나를 위로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기억났다.


암은 다행히 초기였고 제거 수술도 성공적이었던 덕분에 수술 후 딱 반년이 흐른 지난 주말 엄마의 항암 치료가 끝났다. 완치 판정은 5년이나 걸리지만 우리 가족은 조금은 축하를 하기로 했고 나도 엄마가 간식으로 먹을 그래놀라를 사서 원주로 내려갔다. 머리에 두건을 둘러 80년대 영화배우처럼 보이는 엄마는 표정이 많이 밝아져 있었고 전보다 자주 만나는데도 여전히 내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놀라를 주워 먹으며 식탁에 앉아 있는데 맞은편에서 핸드폰을 만지고 있던 엄마가 말했다.



“너는 뭐 그래놀라를 너 먹으려고 사왔냐.”


“어머, 미안. 그만 먹을게. 근데 이거 진짜 맛있다.”


“지금 계좌로 50만원 보냈어. 그때 너 1박으로 간호한 수고비야. 고생도 많았을 텐데 내가 한턱 낸다.”


“아니 엄마. 진짜 황당하네. 나 엄마 아픈데 아무것도 안 했는데 돈을 왜 줘. 나 나 진짜 아무것도 안했는데 왜 돈을 줘.”



입을 닫고 식탁에 놓인 휴지를 잔뜩 뜯어 양쪽 눈에 갖다댔다. 앞에서 엄마도 휴지를 뜯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큰 눈에는 휴지가 더 많이 필요할 텐데. 모녀가 적신 휴지는 길었지만 슬픔은 묻어 있지 않았고 당분간 못난 딸이 아름다운 엄마를 생각하는 시간은 오로지 그를 이해하는 데만 쓰일 것 같았다. 새는 소리 없이 내려간 우리의 입꼬리가 많이도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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