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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이사

by iwasyourone

이 년 전 합정에 있는 회사를 다니게 되어 한 정거장 떨어진 당산으로 이사를 갔다. 헌데 들어간 회사가 잘 맞지 않아 그만 세 달 만에 당산에 살 이유를 잃어버렸다. 오피스텔은 일 년을 계약했지만 이사가 귀찮아 육 개월을 더 연장했고 그 사이 논현에 있는 회사로 이직을 했다. 새 회사까지 칠십 여분이 걸렸지만 서울에서 이 정도는 별로 먼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말 불편한 것은 집이었다.


당산에서 살던 오피스텔은 네 평이었는데 바로 직전 십 평짜리 원룸에 오래 살았던 나는 오피스텔에 살아보고 싶은 로망이 있었고 그 로망은 집의 크기가 반 이상 줄어든다는 사실을 무시할 만큼이었다. 사실 집을 보러 갔을 때부터 크기에 조금 놀라긴 했다. 하지만 필라테스 강사라는 세입자가 켜 둔 조명 때문인지 집은 좁아보이기보다는 아늑해 보였다. 이삿날 당일에 침대와 행어, 서랍장을 두니 어른 한 명 누울 자리가 겨우 남는데도 원했던 대로 오피스텔에 살게 되었으니 괜찮았다. 그러나 서랍장과 책장에 들어가지 못한 책과 옷이 바닥에 쌓였고 나는 그것들을 사들이는 짓을 멈추지 못 했다. 혼자 살면서 벽과 문에 부딪히고 물건 더미를 타넘는 생활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침대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방바닥에 앉을 때, 대각선으로 요가 매트를 펴고 그 위에 요가를 하다가 팔이 서랍장에 부딪칠 때면 실시간으로 가난해지는 것만 같았다. 인스타그램으로 친구들이 커다란 테이블에서 홈파티를 하는 사진을 보는 날이나 실제로 그런 곳에 다녀온 날에는 더 비참해졌다. 다들 결혼해서 남편이랑 돈 모아서 집 사는데 나는 이렇게 살다가 망하는 거 아닐까? 소설 <모순>의 안진진이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라고 외치던 장면이 좁은 방 안을 부유할 때쯤 계약이 만료되었고 나는 서둘러 도망치듯 당산을 떠났다.


다음 집은 무조건 넓어야 했고 이 년 안에 결혼할 수도 있으니 월세로 구해야 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것은 계획에 없었지만 수중에 큰돈도 없었다. 분당에 위치한 보증금 육천, 월세 육십사에 팔 평짜리 오피스텔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사를 하자 마자 그간의 비참함을 씻어내듯 틈만 나면 앱으로 웹으로 ‘오늘의집’에 접속하면서 스마트TV, 스탠딩 조명, 책상 의자, 전자레인지, 토스터기를 사들였다. 첫 일주일간은 청소도 열심히 했다. 바닥이 아닌 식탁에서 밥을 먹고, 요가를 하며 팔을 길게 뻗어도 손에 걸리는 곳이 없는 집. 돈을 써서 삶의 질을 올렸으니 이제 더 행복해질 일만 남았다고, 당산보다 분당에서의 삶이 훨씬 행복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일주일이 지나도 이주일이 지나도 별로 행복해지지가 않았다. 이상하다. 원래 이것보다 훠얼씬 행복해야 하는데. 행복이 아주 철철 넘쳐 흘러야 하는데에에?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통근길이 반으로 줄어들었지만 나보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그러니까 친구들은 여전히 홈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어디에 살아도 나보다 근사하게 사는 사람들은 늘 존재했다. 책상 밑에 있는 것을 당기기만 하면 되는 이동형 식탁을 꺼내기 귀찮아 바닥에서 밥을 먹던 나는 불현듯 진실을 깨물었다. 내가 이사한 동기는 비좁은 집이 아니라 조급함이었다는 것. 당산에서 정말 불편했던 것은 네 평짜리 오피스텔이 아니라 가만히 침대에 누워 열심히 피드를 올리며 남의 집을 부러워하던, 결혼한 친구들을 부러워하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을 피해가지 못한 나였다.


‘이런 마음으로는 아파트와 남편이 생겨도, 아니 리조트에 산다 해도 안 행복할 거야.’


인스타그램 밖에서는 진지하게 결혼을 말리는 친구, 퇴근하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도 있지만 나는 이 년마다 집을 옮기지 않아도 되고 퇴근해도 조잘조잘 떠들 수 있는 동무를 둔 친구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공간을 두 배 늘리고 분당이라는 부촌에 오고 집에 비싸고 좋은 것들을 많이 사고 나니 감히 말할 수 있는 것도 같다. 결혼한다고, 아파트를 가진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지 않을 거라는 걸. 결혼과 아파트가 나의 어떤 불안을 잠시 해결해 줄 수는 있겠지만 행복 자체를 보장해 주지는 않으며 행복은 그렇게 생기는 게 아니라는 걸. 물론 애인과의 결혼을 상상하면 너무 좋고 행복할 것 같지만 그건 지금의 내가 애인과 너무 좋기 때문이고 지금 애인과 사이가 나쁘면 불행한 미래를 그릴 것이다. 행복은 다름 아닌 지금에 달려 있으니까.


그래서, 아이러니하지만 결혼과 아파트가 전부는 아니어도 그것들을 원하는 나의 욕망에도 솔직해지기로 했다. 비혼주의자인 척 그만하고,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인정하고, 점점 잘생겨지는 연하 애인의 얼굴을 보며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을 받아들이고. 애인, 너를 너무 사랑하지만 결혼이 전제가 아닌 연애는 못 해. 내가 이렇게 시시한 사람이라서 미안해가 아니라 시시하긴 뭐가 시시해. 떨치려고 애써도 불안한데 어떡해. 너가 대한민국에서 삼십 대 여자로 살아봤어? 어? 누나라고 불러! 아 이건 너무 멀리 갔네. 나도 삼십 대 남자로 안 살아봤어. 미안..


며칠 전 집에 놀러온 애인은 이번 집은 더 나 같다고, 따뜻한 도서관 같다면서 책을 두 권이나 빌려갔다. 당분간은 내 취향으로 가득 꾸며놓은 이 집에서 잘 지내겠지만 돈은 열심히 모을 생각이다. 그러다가 이사하고 싶어지면 이사하고 결혼하고 싶어지면 결혼하지 뭐. 아주 만약 둘 다 잘 안 된다고 해도 그건 그때의 내가 잘 해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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