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가족

by iwasyourone

결혼을 한다고 이야기했더니 사람들이 축하한다는 말 외에 한 마디를 더 했다.

“민초는 입장할 때 무조건 울 것 같아.”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 오기가 생겨 절대 안 울 거라고 하고 싶지만 나도 내가 울까봐 걱정이다. 별로 안 친한 사람의 결혼식에 가서도 티슈로 눈을 찍어대는데 내 결혼식이야 오죽하랴. 고개만 90도로 숙여 눈물을 떨어뜨려라, 속으로 샤이니의 링딩동을 아주 맛깔나게 불러라, 얼마짜리 메이크업인지 되뇌어라. 여기저기서 많은 꿀팁을 얻었거늘 요즘은 그냥 손수건과 부케를 같이 쥘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 혼자 입장하면 좀 나을 것 같은데 우리 아빤 평생 딸이랑 식장 입장하는 상상을 해 온 분이시다. 이 정도면 그날의 메이크업이 방수가 잘 되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몇 달 전에는 전혀 울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도 눈물이 터졌다. 엄마는 도서관에서 오랫동안 오카리나를 배워왔고 해마다 여는 연주회에도 참가하고 계시다. 항암 치료를 했던 작년만 빼고. 부모님이 내게는 연주회를 한다고 알려준 적이 없어서 올해는 엄마를 놀래켜 주려고 몰래 연주회 도중에 숨어들어갔다. 그런데 무대 위 건강해진 엄마를 보다가 그만 셔츠 카라가 다 젖을 만큼 통곡을 하고 말았다. 연주회가 끝나고 부모님 앞에 깜짝 등장했지만 엄마 아빠는 내 빨간 눈을 보고 더 놀란 것 같았고 곧 훌쩍훌쩍 눈물을 훔치기 시작하셨다. 주변 사람들이 각자 사진을 찍기 바빠 우리에게 관심이 없어 다행이었다. 다들 누굴 닮아 눈물이 이렇게 많은 건지.

나는 서울에 혼자 살고 부모님과 동생이 사는 강원도 본가에는 명절에만 가는 편이다. 그런데 최근 나와 가까이 사시는 애인의 어머니가 집에 자주 놀러오라고 하신 다음부터 이상하게 본가에 자주 내려가야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정말 요상하고도 요상한 심리였다. 나는 애인의 부모님이 나를 챙겨주시는 것이 너무도 감사하고 애인의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애인의 집에 가는 날을 정말로 고대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본가에 가고 싶어지는 것일까. 결혼하면 부모님을 더 못 볼까봐 덜컥 겁이 나는 것일까. 이제 지 씨 집안이 되고 유 씨가 아니게 되는 것 같아 방어기제를 발동시키는 것일까? 요 심리의 근원을 알 수 없었다.

몇 달 전부터 유명한 간식을 발견할 때마다 애인의 부모님께도 보내고 있긴 했다. 귤, 견과류, 아오리사과, 마카롱, 커피 드립백. 모두 한 세트씩 사서 양가에 똑같이 보냈다. 아직 결혼하려면 멀었는데 조금 과한가 싶었고 회사 사람들도 시댁에 너무 저자세를 보이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 하지만 그런 말이 기분 나쁠 만큼 본가에 보내는 것을 시댁에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걱정이 있다면 나중에 결혼 전에는 그렇게 잘하더니 그때만 그랬다는 소리를 안 듣고 싶은 정도. 앞으로 계속 잘 하면 되니 문제는 아니었고 미래를 미리 걱정해서 지금의 감정을 무시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근데 방금 이건 사랑에 빠진 사람이 하는 소리 아닌가요?

여기까지 쓰고 보니 본가에 자주 내려가고 싶은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결혼도 안 했는데 덜컥 시부모님을 좋아해 버려서 엄마아빠에게 미안해 하고 있다. 바람을 피우는 기분이 살짝 들지만 크게 죄송하진 않다. 애인을 키워주신 분들을 좋아하지 않을 이유도 없으므로. 나는 평소에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의 다른 가장 친한 친구는 잘 맞는다’는 가설을 믿는데 애인의 부모님과 대화가 무척 잘 통한다고 느꼈다. 특히 애인의 어머니는

처음 뵌 날 ‘장녀들은 남한테 뭐든 다 퍼줘서 가끔 외롭다’는 애환을 나누었고 그 동안 어머님께 받은 선물도 많다. 집에 오라고 하시는 것도 혼자 사는 애가 집밥을 얼마나 자주 먹겠냐며 불러주시는 것인데. 하. 또 눈물날 것 같아?

다 커서 생기는 가족이 새로운 기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직 그 어떤 상처도 주고 받지 않았고 서로를 적당히 예의를 갖춰서 대하는 관계가 ‘가족’이라니. 또다른 부모님. 인생에 주요한 소식을 나누고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분들이 늘어나니 삶에 책임감이 더 생긴 것도 같다.


식장을 계약하고 다시 뵙는 자리에서 어머님은 말씀하셨다.

“민초야. 결혼 축하해!”

애인의 부모님께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나와 그분들은 지금 썸 단계에 있는 연인 같아서 한창 좋기만 할 때라고. 하지만 어머님이 ‘고맙다’, ‘환영한다’가 아니라 축하한다고 해 주시는 이 말을 듣고 이 환상이 아주 오래 갈 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당신의 자식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결혼이 중대사라는 사실을 봐 주시는 분들과 가족이 될 수 있어 감사하다. 곧 있을 어머님 생신에 무슨 케이크를 사갈지 벌써부터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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