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언제 와도 상관 없는

by iwasyourone

오늘은 애인과 함께 산 지 일 주일, 결혼식은 딱 열흘이 남은 날이다. 내가 약속이 없으면 애인이 있고 애인이 약속이 없으면 내가 있어서 살림을 합쳤는데도 그 동안 같이 식사한 적이 없다. 그 약속들은 얄궂게도 전부 청첩장 모임. 오랫동안 못 본 친구들도 만나고 결혼식에 와 주는 것이 고마워서 밥을 사는 귀한 자리이건만 사람들을 매일 매일 만나는 것은 체력적으로 힘이 든다. 결혼식 전에 몸살나는 건 아니겠지? 청첩장을 빨리 찍어서 미리 미리 모임을 가졌어야 했는데. 뒤늦게 후회가 되지만 결혼이 처음이라 잘 몰랐다.

그래도 애인과 매일 잠을 자고 눈뜨는 기분은 색다르다. ‘집에 도착했다’라는 카톡 속 집이 우리 둘의 집이라니. 이사한 다음 날 애인은 독서 모임을 하러 나가 오후 내내 집을 비웠고 나는 아주 오랜만에 외로움을 느꼈다. 마치 애인과 함께 여행을 간 곳에서 그가 나를 혼자 두고 어디로 가버린 기분이었다. 이전에 우리는 함께 사는 것을 상상하면서, 스무 살 이후 내내 혼자 살았던 내가 혼자 있고 싶어할까봐 걱정했었다(애인은 평생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그런데 합가 첫날부터 외롭다니. 그날은 보고 있던 책도 드라마도 다 재미없어서 결국 침대에 누워있다가 몇년만에 긴 낮잠을 잤다. 눈을 뜨면 애인이 집에 와 있길 바라면서.

기대와 다른 것은 또 있었다. 나는 나보다 일찍 결혼한 친구들이 집안일 때문에 요란하게 싸우는 것을 보면서 애인과 같이 살면 얼마나 싸우게 될까 궁금했다. 사귀는 동안 별로 싸우지 않았어서 살짝 기대까지 되었다. 그런데 애인이 늦게 귀가하는 일 주일 동안 빨래와 청소를 내내 혼자 했는데도 이것이 억울하다거나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엄마는 집안일을 하고 아빠는 바깥일을 하는 집에서 자라서 이런 상황이 익숙한 걸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애인은 그럴 사람이 아닌데도 애인이 내가 여자라서 집안일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할까봐 두려웠다. 그가 집에 돌아왔을 때 깨끗한 집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과 내가 집안일을 더 하는 상황이 계속될까 두려운 마음이 서로 싸웠다. 결과적으로 청소기를 돌렸던 이유는 집안일은 어차피 딱 절반씩 할 수 없으니 내가 좀 더 한다는 마음으로 해야 잘 산다던 조언이 떠올라서였다.

결혼하면 머리카락을 잘 치워야 한다고, 신신당부한 사람은 엄마였다. 전화를 걸 때마다 이야기를 하셔서 나도 모르게 집안에 머리카락을 흘리고 다니지 않았나 살피게 됐다. 유부남 친구들도 와이프 머리카락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던데. 여자의 두피와 머리카락은 별로 친한 사이가 아닌가. 나는 안경을 안 쓰고 눈이 나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잘 보지 못 해서 퇴근하면 청소기를 두 번씩 돌렸다. 그런데 욕실에 걸린 수건에 짧은 머리카락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두 번까지는 안 돌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인이 내 머리카락을 참아주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은.

애인은 아침에 일어나면 물을 한 컵 마시고 컵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둔다. 그런 다음 씻고 옷을 갈아입는다. 두 번째 울리는 알람 소리에 내가 일어나고 그는 침대로 다시 와서 가구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이불과 베개를 정돈한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집에 들어오면 그는 오자 마자 입은 옷을 예쁘게 접어 스타일러에 넣는다. 그리곤 30분 정도의 유튜브 타임. 씻고 온 애인은 한손에 책을 든 내게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먼저 말해주고 그렇게 한참 수다를 떤다. 열한 시 반은 비교적 빨리 찾아오고, 내가 자겠다는 말을 하면 애인이 불을 끄고 굿나잇뽀뽀를 한다. 뽀뽀를 하고 나서 불을 꺼도 될 텐데 어둠 속에서 하는 바람에 턱에다 뽀뽀를 하고 말았다. 열두 시에 자는 애인은 내가 눈부실까봐 스탠드 조명에 커튼을 덮고 핸드폰으로 과학 유튜브를 켠다. 음량을 제일 작게 해도 내 귀에 잘 들린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어차피 재미가 없어 잠이 잘 오기 때문에. 결혼식까지는 이제 아흐레가 남았다. 언제 와도 상관이 없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새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