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별 일 없이 산다

엄마의 커리어 : 외국계 명품회사편

by Nemo

"저는 월 100 받는파견직 인턴입니다. 제가 정직원이 되기 위해선 최소 3년이걸린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퍽 운이 좋은 경우라고요. 아웃소싱담당자에게 이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가 힘주어 이야기한 것은 회사가 가족 같은 분위기라 제마음에 쏙 들 거라는 개소리였네요. 부장님 말마따나 '인턴나부랭이'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유감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분하다. 그 부장 나부랭이 면상에 대고 저렇게 또박또박 이야기해 줬어야했다. 그만 두는 날, 눈물 콧물 범벅에 꺽꺽 대며 우느라말도 제대로 못 했다. 망할 눈물 같으니라고.


스물 다섯이 인생의 기념비적인 나이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스물 다섯의 가을,-세상어디에도 그런 법칙은 없다 나만의 착각이었다고 해 두자- 계약직 1년반의 경력을 발판삼아 억척스럽게 다다른 곳은 한 프랑스 명품 브랜드의 피알마케팅팀(PR-marketingteam)이다. 비록 인턴이긴 해도 명품 회사의 홍보팀에서 일한다고 하면 다들 부러워할것 같았다. 카펫이 깔린 고급스러운 사무실에서 근무하면 나름 성공한 커리어이지 싶었다.


그 곳의 부장은 새 인턴을 뽑기 세 달 전, 외국계 코스메틱 회사에서이직해 왔다. 오자 마자 자신과 맞지 않는 직원에게 쇼룸 물건을 훔쳤다는 누명을 씌워 잘랐다. 잘린 직원과 사이가 좋았던 남은 직원은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너무나도 혼란스러웠고 새로 온 인턴이 세상 꼴보기 싫었다. 인턴은 그에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부장이 미우니 부장이 뽑은 인턴도 덩달아 미웠던것. 부장은 인수인계가 잘 이루어지고 나면 눈에 가시인 남은 직원도 자를 궁리였다. 따라서 배척된 인턴은 제대로 된 인수인계도 받지 못했고, 밥도 매일같이혼자 먹었다. 인턴은 일 년 같은 한 달을 겨우겨우 버텨냈다.


부장은 전에 있던 직장의 한 인턴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그 인턴은일을 엄청나게 잘 했단다. 얼굴과 이름, 성별과 나이도 알지못하는 부장의 전 직장 인턴 한 명 때문에 나는 늘 '인턴 나부랭이'로전락했다. "인턴 나부랭이 주제에!" 곰곰이생각해보면 이 말은 툭 치면 나올 법한 부장의 입버릇이었다. '인턴 나부랭이'라는 말이 갑자기 튀어나오지는 않았을 것 이므로.-그런 말을 그에게처음 들었고 그 이후로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과연 그에게 인턴은 인턴 나부랭이이고 사원은 사원 나부랭이대리는 대리 나부랭이 였던 것일까?


일은 늘 이런 식이었다. 한번은 기자 동반 출장을 간다며 항공편을예약하라고 했다. 제휴가 되어있는 여행사에 문의해 예약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문제는 출장자인 부장과 기자가 자신들의 스케줄을 조정하며 말을 수십 번 바꾸는 것이었다. 말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날짜, 시간, 경유지 등에 맞춰 항공편을 다시 알아보고 경유 스케줄까지 확인해서 출장자들에게 선택 가능한 여러 안을 확인시켜주고그에 대한 답변을 받아 여행사와 다시 일정을 맞추고 확정된 스케줄을 받아 출장자들에게 공유하고… 변경하라고할 때마다 바로바로 대응했는데 부장 마음엔 안 드는 구석이 있었나 보다. "너는 그렇게 간단한일 하나도 빠릿빠릿하게 못 하니? 인턴 나부랭이 주제에!"


세 달 계약기간을 버틴다 한들 달라질 건 없겠다 싶었다. 나의 길이아님을 인정하고 일찍이 발을 뺐다. 그만두기로 결심한 날, 남은직원에게 먼저 말했다. 엄밀히 그는 내 사수였으니까. 1인분에1만2천원짜리 된장찌개를 파는 곳에서 우린 함께 점심을 먹었다. 청담동은 된장찌개도 비싸구나. 가슴 아프게 떨려 난 이의 자리를얼결에 차지한 대가도 참으로 비싸구나. 모든 걸 내려놓자 남은 직원은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내게 가장필요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인턴이 정직원이 되기 위해 한국->홍콩(아시아허브)->프랑스(본사) 순으로 컨펌을 받아야 하며 운이 좋을 경우 최소 3년이 걸린다고했다. 파견직 인턴이 정직원이 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소리로 들렸다. 내 결심은 더욱 굳어졌고 곧장 부장에게 가서 그만두겠다고 통보했다. 고작한 달 일했기에 챙길 짐도 얼마 없었다. 건물을 나와 역으로 걸어가는 길, 회사와 멀어질수록 발걸음이 점점 가벼워졌다.


산부인과 대기실에 앉아 7년 전의 일을 가만가만히 떠올려 본다. 유명한 산부인과라 그런지 예약을 해도 늘 대기시간이 길다. 많은유명인들이 이곳에서 자연분만을 했다고 한다. 처음이라 더욱 철저하게 검증된 곳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매일 지났던 길인데도 7년 전에는 청담동에 이렇게 큰 산부인과가있는지 몰랐다. 관심사가 아니기도 했고 주변으로 돌릴 마음의 여유가 없기도 했을 테니 말이다.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그때는 내 몸뚱이 하나만 챙기면 됐는데 뭐가 그렇게 힘들고 고되었을까 싶다. (과거의 내가 들었음 기절초풍했겠다.) 결코 일신을 챙기는 게 쉽다는뜻이 아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선택지가 눈 앞에 있었는데 보지 못하고 몹시 위축되어 안타깝다는 뜻이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부장과 남은 직원 사이의 정치적인 요소들을 관전하며 적절히 즐길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욕쟁이 할머니 식당에서 내 돈 내고 밥과 욕을 먹는 기분으로 '인턴나부랭이'라는 말 따위 흘려 들었을 것 같다. 혼자 여유롭게밥을 먹고 남는 시간에 책도 좀 읽었을 것이다. 복잡한 프로세스 때문에 그 곳에서 정직원이 되지는 못하더라도좀 더 버텨서 다른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이는 단지 선택의 문제이며, 인턴을 곧장 그만둔 것도 선택의 하나일 뿐이었다. 20대의 나는복잡하지 않은 문제를 상당히 복잡하고 어설프게 다뤘구나 싶다. 다시 생각해보면 억울함에 꺽꺽 울 정도는아니었는데, 내 행동은 왜 그리도 어렸을까.


물론 그 때보다 지금의 내가 더 단단해진 연유도 있을 것이다. 시간도제법 흘렀거니와 엄마가 되어가는 시간과도 착실하게 맞닥뜨리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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