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커리어 : 중견기업편
첫째아이가 사과주스를 마셨는데 술 취한 사람처럼 얼굴이 붉어졌다며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하루는 미세먼지가 많은 날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 논 아이의 숨이 갑자기 가빠졌다. 어느 날은 생선포를 먹더니 입 주위가 붉게 부풀어 올랐다. 세상에는조심해야 할 것들이 참 많다는 걸 아이를 키우며 느낀다. 동네 소아과에서 소견서를 받아 대학병원으로알러지 검사를 하러 갔다.
검사 예약 날, 택시 안에서 안전밸트가 불편하다며 보채던 아이는 이내내게 기대어 잠이 들었다. 고요해진 틈을 타 창 밖을 바라보는데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 아는 곳인데? 내가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회사의 본사 건물인데 있어야할 곳에 회사간판이 없다. 심지어 1층에는 파스타집이 들어와 있다. 이사 갔구나… 그러니까 그 곳은 더 이상 내가 일했던 회사가 아니라 그 회사가 존재했던 터인 것이다. 왜 인지 첫 추억까지 바래진 것 같아 가슴 한 켠이 조금 아렸다.
난 홍보팀의 막내였다. 2008년2월 4일, 대학교 졸업식을 3주 앞두고 취업에 성공했다. 샴푸,세제, 치약 등을 만드는 국내 중견기업의 홍보팀이다. 졸업전에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러웠지만 안타깝게도 6개월 계약직이었다. 알바도 6개월보다는 오래 했는데,고작 6개월이라니… 출근 전날엔 계약직이라는사실이 서럽고 쪽팔려 펑펑 울었다. 차라리 인턴이라면 허울이라도 좋지!
홍보팀은 사장님 직속 부서였다. 그래서 마케팅이나 영업 등 타 부서와는달리 사무실이 오픈 되어 있지 않았다. 아, 홍보가 뭔지는몰라도 핵심 부서인가보다. 그렇게 시작한 첫 '핵심 업무'는 풀칠과 칼질과 복사, 스크랩 배달, 까대기(박스정리의 일종), 믹스커피타기, 설거지, 부서비용처리 등 온갖 잡무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집안일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매일매일 악착같이해도 티는 안 나는데, 안 하면 바로 지적거리, 핀잔거리가되는 것들이다.
일을 잘 한다는 칭찬을 들으며 계약을 6개월씩 두 번이나 연장했다. 일 년 반을 채우면 정직원이 되도록 해주겠다고 구두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결국 계약을 다시 한 번 연장하자는 제안만 돌아왔다. 당시 들은 가장 어이없었던 말은 "지혜씨, 의리가 있지! 반년만 더 계약하자."였다. 혹시 상무님이 '의리'의 뜻을 헷갈렸던 건 아닐까?더 이상 끌려 다니고 싶지 않았다. 그래! 1년반의경력이 구직에 분명 도움이 될 거야. 내가 있을 곳을 잘 찾아보자!
최선을 다 했지만 정규직이 되지 못했고, 남고 싶었지만 떠나야 했다. 후임까지 뽑고 회사를 나왔다. 내 이름과 같은 이름의 지원자가 뽑혔다. 내가 일을 잘 한 것도 아마 한 몫 했을 것이다. 물론 후임이 나에게고마워할 일은 아니다. 그 지혜도 정직원은 절대 못 될 것이므로.-실제못 되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회사 비용절감의 차원에서 언제 까지고 계약직으로 메울 요량이었던것이므로. 밖에 나와서 보니 수가 보이더라. 꼼수! 내 첫 번째 회사생활은 사기와 눈물과 좌절로 얼룩진 실패의 시간이었다. 좋게말하면 드디어 현실에 눈을 뜬 것이라고나 할까.
그 때는 몰랐고 지금은 아는 것, 이제 와 새삼스레 알게 된 사실이있다. 당시 아침 8시 출근이라 못해도 7시 50분에는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다. 무언의 약속이었다. 그럼에도 매일8시에 아슬아슬하게 출근하는 차장님이 있었다. 다들 신문에 집중하는 고요한 아침의 사무실, 정적을 깨는 건 그 차장님이 벌컥 문을 열며 내 쉬는 거친 숨소리다. 다들고개를 까딱거리며 인사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호의적이지는 않다. 남편이 경제지 기자라 조금 참아주고 있을뿐이란 걸 겨우 막 입사한 계약직 사원도 금세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싫어했던 그 차장님은 다른 남자직원들은지겹도록 하는 자식자랑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내가 그 곳에 몸 담았던 1년 반 동안 그가 자기 자식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못 봤다. 과연우연일까? 그렇게 지독하게 말을 아끼며 차장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걸까? 나도 그를 싫어했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면 워킹맘으로서의 삶이 참 고달팠겠구나 싶다.
대학병원에서 아이의 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첫 피검사가 무섭고아팠을텐데 잘도 견뎠다. 대견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아이를 꼭 안았다.택시는 왔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 간다. 다시 붉은 벽돌의 눈에 익은 건물이 보이고 찰나아련했던 마음은 제법 냉철해진다. 저 곳에 일했던 사람들 중 누구도 나를 애틋하게 기억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저 늘 변함없이 취업에 절실한 이들을 위해 열려 있을 '계약직'의 자리에 아주 잠시 머물렀다 간 사람이었을 뿐이니까. 뭐, 이제는 상관없다. 지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