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커리어 : 중소기업편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첫째아이와 공원산책을 하던 중 아는 얼굴과 마주쳤다. 이전회사의 사수다. 먼저 나를 알아본 그의 목소리가 몹시 떨렸다. 이유를알 것도 같았지만 굳이 알은체하고 싶지 않은 목소리의 떨림… 그와 일했던 회사를 그만둔 직후 회사사람모두를 메신저에서 차단했다. 싫어서는 아니었다. 대기업 공채에합격했다는 사실을 솔직히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떳떳하지 못함이 그들을 피하게 했다. 늘 시작보다 끝맺음이 백 배쯤 어렵다. 우리는 우연한 만남 속의불편함을 애써 외면하며 다정한듯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내일 다시 만날 것처럼 가벼운 작별인사를하고 헤어졌고, 그 후로 다시 마주치지 않았다. 그를 차단한시간만큼 우리의 오해는 깊어질 대로 깊어 졌을 터다. 잘 지낸다는 것만 확인했으면 그걸로 된 거다.
직원 열 명 남짓의 화물항공사를 운영하고 있는 두꺼비상의 사장은 누가 봐도 술을 좋아하게 생겼다. "자네, 술은 좀 하나?"첫 면접자리에서 그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저는 지금껏 취해본 적이 한 번도없습니다." 너스레를 떨었다. 술이 약해 늘 취하기전에 뻗었으므로 거짓은 아니었다. 사장의 눈이 커졌다. 진짜인지몹시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면접을 보고 일주일도안 되어 나는 그 사무실로 출근하게 된다. 청담동 인턴을 때려치고 두 달쯤 지났을 때다. 원래 계획은 일 년 정도 숨을 고르며 심신을 재정비하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너무 일찍 새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따라서 면접자리에서 떨었던 술에 관한 허풍의 진위도 너무 일찍드러나 버렸다. 환영식 겸 첫 저녁자리이자 주량시험대에서 나는권하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 마시며 떡이 되어버렸다. 집까지 걸고 온 고깃집 빨간 앞치마가 그 증거였다.
월 200만원을 받았는데 인턴때와 비교하면 월급이 2배 뛴 것이다. 사장은 벌이가 좋은 달에는 보너스를 더해 두 배의월급을 입금해 주었다. 배 곯고 자란 부모님 세대라 그런지 먹는 것에도 결코 박하지 않았다. 사장이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직장을 큰 불만 없이 다녔을지 모른다. 하나의 사무실로 이루어진 회사의 단점은 잠깐 커피 한 잔 하고 오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직원수가 적은만큼 위계질서도 엄격해서 출장기회가 생기면 선배가 늘 우선이 된다. 즉 사원에게는 시야를 넓힐 기회가 쉬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 것때문에 줄곧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마침 사장이 담배를 사무실에서 피우고 직원들의 요청에도 고치지않아서 옳다거니 이직을 결심한 것인지도 모른다. 진실은 나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10년 회사생활 중 이 곳에서의 1년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싫어지기 전에 나왔기 때문이 아닐까싶기도 하다. 계속 반복되는 업무가 겨우 1년 한 사이클돌았을 뿐이라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느낌이 덜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역시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중간에 직원을 한 명 더 충원했다. 사장은 내게 구인공고를 올리라고했고 이력서를 취합해 면접 볼 대상을 추리라고도 했다. 작은 회사라 인사팀이 없었는데 사장은 내게 권한을위임하고 일을 믿고 맡겼다. 그렇게 뽑은 직원은 내가 나온 대학교 출신이었다. 내가 일을 잘 하니 내 후배도 잘 할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기분이좋았다. 이 사회의 패배자라고 생각했던 내가 학교 후배를 취업시키다니 놀라웠다. 하지만 그 이후로 다시는 내 모교의 학생을 뽑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끝이 개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은 업체이지만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것 같다. 여동생이 항공화물을다루는 일을 하게 되어 간간히 그 곳의 소식을 듣는다. 그 회사사람들은 여전히 내 메신저의 차단목록에올라 있지만, 그들이 잘 되고 있다니 마음이 좋다. 차라리순서가 바뀌었다면 어땠을까. 대기업에 다니다 그만두고 이 곳에 왔더라면 한껏 넓어진 시야가 이 업무를하는데 엄청난 힘이 되어 주었을 것이고 일이 더 흥미롭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아무도 알 수없는 문제이지만 말이다.
나는 월요일 오전 10시경에 태어난 소띠인간이다. 회사 시계로 치면 월요병에 고통받고 아침 회의의 압박에 눈이 핑핑 도는 가장 바쁜 시간에 태어난 셈이다. 그래서인지 여러 의미로 일복이 많다. 소띠도 밥 먹는 시간이나 잠 자는시간에 태어나면 내내 쟁기는 안 끌지 싶은데 말이지.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일복이 많으면 먹고사는 걱정은 없을 거란 막연한 믿음이다. 이런 일복을 타고 났다고 생각하니 공백기에 굴하지 않고 언제라도 다시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도전할 수 있을 것같은 기분이 든다. 지난 10년간 끊임없이 나의 '일'과 마주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