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1시

by Nemo

토요일 1시의 볕은 강렬하면서도 나른하다. 그 특유의 정취를 사랑한다. 그 시간만이 가지는 귀가 멍 해질 정도의고요함과-가끔은 너무 고요한 탓에 귀에서 '삐-' 소리가 나는 듯한 착각도 든다- 무기력해지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나른함은 줄곧 변치 않는 내 취향과 맞닿아 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쭉 유지해 온 것이 있다면 그시간 특유의 느낌을 알아채는 감각이 유일할 것이다.


'토요일 1시'가 좋다고 느낀 건 열 살 무렵 부터이다. 종례 후 분명 친구들과함께 교실에서 나온 것 같은데 어느새 혼자다. 등교길은 늘 시작점부터 목적지까지 줄기차게 북적거리는데하교길은 어느 시점이 되면 주변이 잠잠해진다. 나만 외딴곳에 사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다. 특히 토요일은 더욱 그렇다. 아무렴 어떠한가. 혼자 걷는 그 시간이 무척 마음에 든다. 기억속의 토요일 1시는 늘 맑다. 음식에 불 맛을 입히듯이, 볕이 온 몸을 덥히고 그 볕내음이 온 몸에 입혀진다.


집에 도착하면 엄마가 있다. 토요일 1시 집에 엄마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그 시간의 엄마는 디폴트값이다. 늘 그랬기에 당연한 건 데도 엄마가 있다는 사실에 항상 안도했다.-어쩌면 그 때부터 당연한 건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엄마가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실내화를 빤다. 실내화를 1년내내 안 빨고 신는 애들도 있는데 우리 엄마는 일주일마다 빨라고 한다. 쪼그리고 앉아서 실내화에 솔질을하는 건 별로였지만, 온 몸에 볕 내음이 배어 있는 동안만은 나름 견딜만 하다고 느꼈다.


엄마는 자주 핫케이크를 만들어 주었다. 봉지에 인쇄된 핫케이크처럼예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맨 위에 올린 건 버터인가.동봉된 핫케이크 시럽은 왜 이렇게 양이 적을까.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식탁에 앉아핫케이크를 깨작거린다. 그러고나서 햇빛이 드는 거실 창가에 앉아 빛 속을 부유하는 작은 먼지를 한참동안바라본다. 먼지는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손으로 만지려고 하면 다시 떠오르곤 한다. 나른하다.


지금도 토요일 1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좋아한다고 해서 매번 기다리는 건 아니다. 그저 자연스레 마주치기마련이다. 그 시간임을 생각하지 않아도 토요일 1시 고유의느낌이 내 감각을 일깨운다. 그 느낌을 나의 아이들도 알았으면 해서 아니, 그보다 공감해줬으면 해서 자주 그 시간에 아이들과 산책을 나간다. 큰아이가 햇볕이 따갑다며 모자를 달라고 한다. 작은아이도 형 따라 모자를 쓰겠 단다. 얼굴의 반은 마스크로 가려졌다. 머리도 가리고 얼굴도 가리고 아이들이과연 이 햇살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을까. 이 고요하고 나른한 느낌을 아이들이 훗날 기억이나 할까. 아마도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문득 아쉬워진다.


내가 아는 수많은 토요일 1시는 대체로 맑다. 엄마가 우산을 들고 마중 나왔을까 싶어 평소보다 느리게 걷던 비 내리는 토요일 1시도 분명 존재했을 텐데, 내가 좋아하는 것들-고요함, 나른함, 햇빛, 엄마, 핫케이크시럽, 먼지놀이-을 모아 놓은 그 형태 그 느낌의 시간만을 기억한다는 건 기억이 다소 짜맞춰졌음을 반증한다. 마음 한 켠에 여지껏 자라지 못한 어린이의 마음이 남아 있나보다. 토요일1시의 정취는 나를 열 살 어린아이로 되돌려 놓는다. 나는볕에 취해 혼자 걷고 있다. 아마 가을볕인 것 같다. 햇빛의복사열에 눈이 살짝 부어오르는 느낌이다. 건조한 공기중에 잠자리들도 부유하고 있다. 고요하고 나른한데 그렇다고 그 무엇도 멈춰 있지는 않다. 모든 것이딱 내 취향이다.


대상이 아니라 대상을 향하는 마음에 주목해 본다. 아니다. 마음이 깃들어 있는 대상에 주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그러니까 본질은 좋아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을 좋아하게 된 계기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취향이란 것은 실체가 없으며 실은 기억속에 깃들어 우리를 살게끔 한다. 토요일 1시의 정취가 내게 그러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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