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잡는 날

by Nemo

도시에서 자동차로 여덟 시간 떨어진 시골마을 외갓집에는 작은 닭장이 있었다. 26년 전 여름의 이야기다. 그 닭장에서 아주 작고 갓 낳아 껍질이 무른 달걀을 꺼내 오는 게 일종의 모험 같은 나이였다. 그러니까 그 달걀이 먹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놀잇감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고기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던 날들. 외할머니께 닭을 잡아 달라고 했다.


건넛마을에 사시는 노 할머니(외증조할머니)께서 허리는 굽으셨어도 상당히 정정하셨는데, 외갓집에 들르셨다 내 이야기를 듣고는 손수 닭을 잡아 주셨다. 잡을 닭을 고르는 건 외할아버지의 일이었고, 외할아버지는 커다란 닭 두 마리를 두툼한 손으로 낚아채 날갯죽지를 뒤로 젖혀 가운데로 모아 제압했고, 닭의 곧고 매서운 두 다리를 노끈으로 동여맸다. 그때 처음 알았다 닭의 발톱이 날카롭다는 걸, 닭의 다리가 곧고 아름답다는 것을.


노 할머니께서는 마당 뒷문으로 닭 두 마리를 들고나가셨고 나는 그 뒤를 쫄래쫄래 쫓아갔다. 뒷마당에는 큰길과 이어진 차 한 대가 들락거릴 수 있을 정도의 쭉 뻗은 흙길이 70 미터 가량 나 있었고 그 흙길 한 면을 따라 낡은 집들이 여러 채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길 다른 한 면은 얕은 낭떠러지였다. 낭떠러지라고 해도 떨어져 죽을 정도는 아니었으며, 낭떠러지라기보다는 제방이라고 보는 게 더 적당할 듯하다. 돌과 흙이 굴러 떨어져 제방이 무너지지 않게끔 비탈에 굵은 철사를 엮어 마름모 패턴의 그물을 쳐 놓았으며 그 철사를 조심조심 디뎌 3-4미터 정도 아래로 내려가면 졸졸 흐르는 얕은 물의 냇가가 있었다.


노 할머니께서는 그 제방이 시작되는 비탈 위쪽의 평평한 돌 위에-마치 닭을 잡기 위해 누군가 가져다 놓은 듯이 넓고 평평한 돌이 하필이면 거기 있었다.- 닭의 모가지를 위치시키고 날이 무딘 도끼를 짧게 잡고 닭의 모가지를 힘껏 내려쳤다. 내리 쳤다기보다는 위에서 아래로 세차게 찍어 눌렀다는 표현이 맞겠다. 억세게 튀어나온 할머니 손 등의 핏줄이 도끼로 닭 모가지를 후려 치는 순간 더욱 불거져 저러다 비늘같이 얇은 살갗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도끼가 꽤 무뎠던 것 같다. 닭의 모가지가 한 번에 분리되지는 않았다. 도끼로 한 번 내리치자 닭은 엷은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여러 번 내리쳤는데도 그 가늘고 설운 소리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당시 나는 무섭지 않았다. 한 마리의 목을 내려치고 그다음 닭의 목을 내려칠 때까지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그 장면들을 똑똑히 보았다. 닭 모가지를 비틀지 않고 도끼로 쳐서 잡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뒤이어 외할머니께서 닭의 배를 가르고 그 안의 내장을 꺼낼 때도 똑똑히 다 보았다. 알집이 있다는 걸로 봐서 아마 한 마리는 암탉을 잡았나 보다. 사위 체면 세워준다고 모르긴 몰라도 한 마리는 수탉을 잡았을 것이다. 닭백숙을 끓여 가족 모두가 상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엄마가 내 얼굴에 닭의 피가 튀었다며 깜짝 놀라셨다. 나는 "꼬꼬가 불쌍해"라고 말하면서 닭백숙을 맛있게 먹었다. 사람들은 그 상황이 웃기다고 그랬다.


그게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계기가 된다. 당시에는 몰랐다. 닭은 그저 식자재일 뿐이었다. 먹을 것을 잡아먹는데 무슨 죄책감이 들었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을 닭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 노력한다. 나의 행동이 얼마나 기괴했었는지. 뭐랄까. 내 손에 피를 묻혀가며 닭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나치가 홀러 코스트를 저지를 때 문서작업으로 그들의 죽음을 승인한 아이히만 같은 자와 다를 게 없었던 것이다. 요즘은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는 게 너무나도 슬프다. 다음 생에 닭으로 태어날까 봐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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