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의 새벽 묵호항을 떠올리면 가슴을 파고드는 파도소리, 그에 묻혀 옅게 깔리는 갈매기 소리 그리고 생선을 팔고 사는 분주한 목소리들이 어우러져 특별한 BGM이 만들어진다. 어린 시절 동해 외갓집에 갈 때마다 묵호항 새벽시장에 들렀다.
새벽시장에 간다고 하면 벌떡 일어나 눈곱만 떼고 부모님을 따라나섰다. 바닥에 물이 흥건해서 신발이 젖기 일쑤였지만 그마저 새벽시장의 정취다. 오징어배가 들어온다. 집어등이 아직 켜져 있다. 오징어 배는 생각보다 작구나. 갓 잡은 뾰족뾰족 날렵한 오징어들, 바닷물과 먹물을 내뿜을 준비를 하는 빵빵한 오징어들이 하선한다. 만 원이면 오징어를 열 마리 살 수 있다. 이야기를 잘하면 두세 마리 더 얻을 수도 있다. 오징어를 흥정한 후 생선 손질하는 할머니들이 계신 곳으로 가져간다. 노파는 오징어를 어떻게 먹을 건지 물어본 뒤 재빠른 손놀림으로 오징어를 손질한다. 내 눈은 그 손놀림을 쫓느라 바쁘다.
바닷바람에 억세게 불거진 손등의 핏줄, 닳아진 칼과 도마에 고단함이 깃들어 있다. 재빠르게 오징어를 손질하는 그 손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기억을 더듬어가니 아련하다 못해 아찔하다. 묵호항의 새벽시장이 그리운 이유는 아무리 애를 써도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나의 어린 시절 한 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