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움은 존재하는가

by Nemo

생소함은 좋은 걸까 나쁜 걸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생소함은 이따금씩 자유로운 생각과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다섯 살 때 처음으로 생소함을 진지하게 마주했다. 당시 내게는 신경을 건드리는 단어들이 몇몇 있었다. 가장 강렬하게기억에 남는 것은 '베개'와 '젓가락'이었다. 그런 단어들은기괴할 정도로 묘하게 느껴졌다. '다른 친구들 집에서도 베개를 베개라고 부를까? 아랫집과 윗집에서도 젓가락을 젓가락이라고 하나?' 그 단어들을 내입으로 발음하면서도 못마땅하고 떨떠름했다. 하여 나는 전전긍긍하며 그 단어들을 최대한 내 입으로 말하지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는 동안 생소한 단어들은 더 이상 생소하지 않아졌다.


여덟 살 때에는 한동안 아침마다 같은 시간에 눈을떴다. 누구도 깨우지 않은 평화로운 아침, 혼자 스르륵 일어나부엌에 있는 전자시계를 본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소름이 끼칠만큼 정확하게 아침 7시 5분이었다. 그 생소하고일관된 기상이 몇 일 혹은 몇 주나 지속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반복된 매일이 마치 같은 날처럼 느껴졌다. 영화에서본 조바심나는 시간여행자들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 혼란스럽던 긴장감이 사라지고원래의 들쭉날쭉한 익숙함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 강렬한 생소함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한동안나름의 노력을 해보았으나 유감스럽게도 그런 느낌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생소함은 평범함이 주는 권태로움을 반감시켜 주기도하지만, 단기간내 일상을 뒤흔들어 놓기 일쑤라 다소 부담스럽고 퍽 못마땅하기까지 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 그러하다. 생소함에 대처하는 자세가 넌더리 나게 위태로웠던 날이다.


전교생이 운동장을 나른하게 둘러싸 계주 대형을만들고, 나는 우리반 계주 선수 중 한 명으로 뛰었다. 왜였을까. 앞서 달린 선수들이 팔을 흔들며 뛰는 게 꼴 보기 싫었다. 그모습이 생소하다 못해 참을 수 없이 바보 같이 느껴졌다. 조연인 팔이 얄팍한 수로 주연인 다리의 자리를꿰 차려는 느낌이었다. 마침내 내 차례가 되어 바통을 이어받았다.


두 팔을 몸통에 딱 붙이고 달렸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트랙을 따라 울려 퍼졌다. 계주가끝나고 담임선생님께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다독이며 달리는 모습이 코알라처럼 귀여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제서야트랙 밖의 불쾌한 웃음소리가 나를 향했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달릴 때 더 빨리 달리기 위해 팔을젓는 거라면, 팔을 젓지 않고도 빨리 달릴 수 있는 사람은 굳이 팔을 젓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닌가? 아주 잠시 뒷골이 뻐근했고 약간 쪽팔린 기분이었지만 그 뿐이었다.


내 삶 속에는 문득문득 생소함이 깃든다. 그 중에서도 익숙함이 생소함으로 변하는 순간 나는 늘 불안함과 불편함을 느낀다. 내가 느낀 대로 생소함을 염두에 두고 행동할 것인지 생소함을 무시하고 어떠한 의문도 제기하지 않을 것인지는앞으로도 치열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 중 하나다. 생소함과 익숙함이 크게 다르지 않듯이 맞고 틀림옳고 그름의 본질도 어쩌면 거기서 거기일지 모르겠다. 생소함은 반가우면서도 바짝 경계해야 하는 대상임엔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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