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rchid Mar 05. 2017

어느 P.H.D의 사생활

#2. 영원한 딜레마 앞에서

**본 이야기는 근미래에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시나리오와 가상의 인물을 바탕으로 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희소는 완벽한 새소리와 청량감 넘치는 민트 냄새에 눈을 떴다. 일어날 시간이 되었나 보다, 하며 몸이 반응한다. 시끄러운 알람 소리 대신 선택한 '모닝 케어' 솔루션은 희소의 아침을, 아니 하루를 바꾸어 놓았다. 뇌파를 분석하여 정확한 시간에 최적의 방법으로 잠을 깨워주는 시스템 덕에 하루하루가 덜 피곤해졌다. 플래툰 드라이버가 아닌 보잘것없는 트럭 운전사였던 시절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대충 씻고, 아침 대신 오늘 새벽 드론 배송으로 배달된 생과일주스를 마시고, 비타민을 챙겨 먹으러 약 챙겨주는 로봇 '필리'가 있는 부엌의 한 구석으로 간다. 약이 나오는 구멍으로 손을 대고 있으면 곧 약이 나온다. 오늘은 알약이 하나 더 늘었다. 생긴 모양은 꼭 우황청심환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딜레마 트레이닝'이 있는 날이다. 


플래툰 헤드 드라이버가 고속도로 위의 스타인만큼, 그 책임도 무겁다. PHD들이 정기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훈련이 몇 가지 있는데, 딜레마 트레이닝은 그중 하나다. 딜레마 트레이닝은 말 그대로, 도로 위에서 딜레마 상황에 닥쳤을 때 헤드 드라이버가 플래툰에 속한 차들의 안전을 위해 최상의 선택을 내리도록 훈련하는 것을 말한다.  도로교통국은 자율주행 자동차가 출시되기 훨씬 전부터 여러 가지 딜레마 상황들을 정의하고, 그것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왔다. 대부분의 상황은 탄탄한 지능형 교통 시스템 (ITS: Intelligent Transport Systems)을 기반으로 해결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있지만, 희박한 확률의 몇몇 시나리오들은 순전히 헤드 드라이버의 재량에 따라 위험도가 결정이 된다. 예측할 수 없는 운전 패턴을 보이는 개별 차량 (플래툰에 속하지 않은) 이 플래툰 헤드의 주행을 방해하거나, 플래툰 배열을 망가뜨리는 행위를 지속할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뒤따라오는 순수 자율주행 차량들이 예측할 수 없는 인간 드라이버의 돌발 행위가 플래툰 배열 자체를 망가뜨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들을 대비해서, 헤드 드라이버는 시뮬레이션 트레이닝을 통해 언제든 위급 시를 대비한다. 


희소는 평소와 같은 옷을 입고, 평소와 같이 출근한다.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고, 목에 두꺼운 손수건을 두른다. 아무리 베테랑급 드라이버라도, VR/AR 기술을 통해 극도로 현실화된 시뮬레이터 안으로 들어가면 식은땀이 속절없이 흐르기에. 희소는 시뮬레이터 안으로 들어가 VR 글라스(glasses)를 착용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작업환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하지만 날씨는 비가 오는 설정인지, 윈드실드로 장맛비의 굵다란 빗방울이 떨어진다. 왜인지 쉽지 않을 것 같다. 비가 오는 설정이면 노면이 훨씬 미끄러워 플래툰 속도 조절이 더 어렵다.


"환영합니다, 희소님. 오늘의 타겟 경로는 영동고속도로 A-67 구역을 경유하는 루트 번호 TS398 루트입니다. 오늘도 플래툰의 안전을 위해 적극 지원합니다. 출발합니다."


시동을 걸면 내비게이션에서 나오는 기계음이 똑같이 나온다. 평소에 자주 가는 지정 루트가 이번 미션이다. 플래툰 헤드 드라이버들은 고속도로의 '루트'가 23개씩 지정되고, 그 루트들을 숙지하여 정확하게 주행해야 한다. A-67 자율주행 구역은 해당 루트가 시작하는 지점을 의미하고, 거기서부터 플래툰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들어서자, 희소는 차량 자체에 결함이 없는지를 살피기 위해 차량의 모든 기능을 테스트한다. 자율주행 기능에는 다행히 문제가 없다. 원래는 차에 타기 전 차체를 검사한 후, 테스트 도로에서 검사를 한 후 출발하는 것이 관행이지만, 시뮬레이션에는 미리 테스트하는 세션이 없기 때문에 주행을 하며 테스트를 해야 한다. A-67구역으로 진입하자 빠른 속도로 플래툰이 형성된다. 


그림1. 플래툰


'Tagged: 12 vehicles'

"프로필 불러줘."


평소라면 뒤따르는 차들의 프로필을 요구하지 않았겠지만, 테스트 중에는 모든 확률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프로필 요청을 했다. 


'위치 3, 관광버스 확인'


사람이 만석인 관광버스가 뒤를 따르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큰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한껏 긴장된 자세로 속도를 조절하고 있던 찰나, 중앙 분리대를 넘어 날아오는 물체가 보인다. 졸음운전을 하던 반대편 노선의 중형차다. 윈드실드에 AR 디스플레이로 '주의' 표시가 뜨며 경고음이 울린다. 희소는 빠르게 계산한다. 지금 액셀을 밟는다면 날아오는 차량을 피할 수 있겠지만 뒤따라오는 차량들이 직격탄을 맞을 거다. 주의 표시가 떴기 때문에 이미 위치 5 이상의 차들은 속도를 최대한으로 줄이고 멈출 것이다. 하지만 그 이하의 차량들은 사고를 피할 수 없다. 관광버스에 부딪힌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플래툰 헤드 차량에 문제가 생긴다면 플래툰이 모두 해지되고, 뒤따라오는 차들은 더 이상 자율주행이 불가능해져 제어권을 전환해야 하는 상황에 닥치게 되지만, 이 편이 훨씬 안전하다. 


희소는 속도를 줄여 날아오는 차량과 부딪히기로 한다. 순식간에 윈드실드로 차량이 날아들었다. 쇳덩이가 부딪히는 둔탁한 굉음과 함께 화면이 정지되고, 의자 뒤로 쿵, 쿵하는 소리가 들린다. 뒤따라오는 차들은 단순한 접촉 사고로 마무리된 듯하다. 


실제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오늘 시뮬레이션 속의 상황은 운이 좋지 않다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사고처럼 보였다. 현실이었다면 과연,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희소는 자신에게 질문해본다.  

  


* 관전 포인트

자율주행 자동차의 알고리즘을 이야기하며 빼놓을 수 없는 복잡한 문제는 윤리문제이다. 관련된 사람들은 자율주행 알고리즘이 사고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 그것을 미리 프로그래밍해놔야 하는지 등을 고민한다. 아래 그림과 같은 상황에서 과연 어디로 핸들을 틀어야 할까? 의 문제인 것이다.  

그림2. Moral Dilemma

그렇다면 자율주행 자동차 군집을 이루는 플래툰을 이끄는 헤드 드라이버는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 하는 고민에서 상상해본 이야기이다. 





이미지 출처

커버: https://tti.tamu.edu/2015/12/01/next-level-trucking-autonomous-truck-platooning-a-game-changer-for-fuel-efficiency-safety/

그림1: http://insights.globalspec.com/article/2226/revolutionary-road-driving-toward-connected-automation

그림2: http://www.ibtimes.co.uk/who-dies-you-decide-mit-simulator-tackles-deadly-moral-dilemma-autonomous-car-crashes-1593963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P.H.D.의 사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