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하는 밤 - 포항살이 03편(하)

우연이 이끈 신기한 인연

by 정월

그동안의 산책으로 알게 된 재미난 사실이 있다.

포항 북구의 특징인지, 내가 머무는 곳의 특징인지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걸으며 느낀 점은 이렇다.


부산처럼 고바위가 많은 듯한데, 막상 걸어보면 언덕 아닌 언덕과 평지 사이를 걷는 기분이다.

오르막을 올라도 평지를 걷는 듯 의외로 힘들지 않다. 참 신기한 지형이 아닐까 싶다.


점심을 먹은 후 산책 삼아 숙소 윗길을 걸었다.

그 길에는 둘레길과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고, 조용한 동네에 사람들이 이따금씩 걸어 다녔다.


주택 부지 곳곳에는 아담한 카페들이 눈에 띄었다.

그중 교회 건물 1층에 위치한 ‘로프 카페’가 유독 마음을 끌었다.

바로 입구를 찾을 수 없어 그대로 지나쳤다.

한 바퀴를 돌아 옆길로 내려오는 길, 다행히 카페 입구를 찾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카페는 나이 든 할머니께서 운영하고 계셨다.

연한 커피를 주문하고 카페를 둘러보는데, 벽면에 걸린 그림 하나가 낯익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동생의 그림이었다.


연고 없는 타지의 카페에서 동생의 그림을 보다니.

신기함과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었다.


할머니께 전시 작품에 대해 묻자,

“은행과 콜라보한 그림이며, 포항의 한 대학생 작품이에요.”라고 하셨다.

내가 “아는 동생의 작품이에요.”라고 하자 놀라워하며,

“포항 사람이 아닌데?”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셨다.

내가 부산에서 왔다고 하니,

그제야 “맞아, 부산 사람이야.”라며 신기한 듯 웃으셨다.


그림을 계기로 대화가 이어졌다.

할머니는 강원도 출신으로, 포항살이만 40년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부산과 포항의 비슷하지만 다른 고바위 지형 이야기를 했고,

할머니는 카페의 배경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우연이 인연으로 이어지는 순간이 신기했다.


할머니는 판매되는 굿즈와 사진들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시더니,

문득 작은 그림책을 꺼내 주셨다.

그림 그리는 방명록이라며 한 번 그려보라 하셨다.

그리고 손수 키운 향긋한 민트차를 대접해 주셨다.

그 차는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따뜻하게 했다.


몇 년 만에 그리게 된 고양이 그림.

담벼락에 앉아 쉬던 잘생긴 고양이를 찍은 사진을 보며 따라 그렸는데,

그만 못생긴 고양이로 전락해 버렸다. 고양이야, 미안.


우연한 만남이 인연으로 이어져 따뜻함을 남겼고,

뭉게구름처럼 몽글해진 마음은 앞날을 바라보게 했다.


카페를 나온 후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림을 통해 알게 된 할머니와의 인연처럼,

언젠가 나의 그림이나 글들도

어디선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다양한 삶으로 이어지면 좋겠다고.


차근히 실행해 보자고,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