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 버스나 지하철 속의 사람을 관찰하면 알 수 있다. 다들 심각하게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도서관을 제외하고는 공공장소에서 책 읽는 사람을 본적이 많지 않다. 사실은 도서관에 가 봐도 텅텅 비어있거나, 독서실로 이용하는 학생들이 거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나마 도서관 수도 많지 않고. 집안에 꼭꼭 숨어서 비밀스러운 독서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통계수치를 한번 보자. 한 달 평균 독서량, 미국은 6.6권 일본은 6.1권 프랑스는 5.9권, 중국도 2.6권인데, 한국인은 겨우 0.8권이란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이 수치도 전체 성인으로 보면 부풀려진 것이라고 말한다. 거의 30대 이전에 독서인구가 편중되어 있어서.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라고 해서 참으려 했지만, 외국에서는 공원이나, 잔디밭, 해변에서도 독서하는 사람이 종종 눈에 뜨인다. 런던에서 요크시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할머니가 인상적이었다. 기차 안에서 내내 책을 읽었다. 왕실의 스캔들 기사가 난 주간지를 먼저 읽고, 세상에나 할머니가 패션 잡지를 뒤적이더니, 가방 속에서 주섬주섬 책 한 권을 꺼냈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이었다. 청춘시절 시도했다가 의식의 흐름을 따라잡기 힘들어서 그만둔 책이었는데. 이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흘끔거리며 중얼거리곤 했다. 우리나라에도 저런 문화를 좀 수입할 수는 없을까? 저들은 무슨 특별한 훈련을 받은 것일까?
사실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요건을 보면 독서를 등한시할 이유가 없다. 역사 시간에 늘 듣던 말, 예로부터 문을 숭상하는 나라였다고. 우리글을 두고 굳이 어려운 한자로 된 책에도 그리 애정을 쏟은 나라였는데. 지금은 문맹률도 거의 없고, 고등교육을 받은 수치는 세계적으로 월등히 높은 나라이지 않는가. 대다수의 취미가 독서였던 적도 있었고. 지금은 모두 뭘 하며 지낼까. TV 시청. 하루 평균 3시간 이상. 독서는 라디오를 듣는 시간과 맞먹는 정도란다. 요즘 누가 취미로 라디오를 듣느냐고. 그만큼 희소하다는 것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일까.
<책은 도끼다>를 읽으면서 독서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 시절에 책을 읽기는 한다. 대부분 의무감에서,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추천도서 위주로. 바로 여기에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리의 추천도서목록, 너무 재미가 없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나의 중학교 시절, 독서경진대회 참가용 도서가 <삼국유사>였다. 전공자들에겐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지만, 중학생이 읽고 이해하기는 너무 딱딱하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갖고 읽으려고 해도 졸리기만 했다. 그런데 지금도 중고등학생의 필독서에 버젓이 들어있다. 추천도서는 누가 만드는 것인지. 독서의 흥미를 떨어뜨리려고 작정한 책들을 의무감으로 읽어야 하니. 졸업과 동시에 독서도 졸업하고 싶어 지는 게 아닐까.
6.25 사변을 겪은 역사학자의 기록인 <역사 앞에서>라는 책이 있다. 따로 배경 설명을 하지 않아도 바로 당시의 상황이 머리에 그려진다. 왜? 우리의 이야기니까. 낯익은 등장 인물도 많다. 그러니 감정 이입이 빠르고 비판의식도 생긴다. 중고교 수업시간에 보조교재로 반드시 읽게 해야 한다. 얼마나 할 얘기가 많을까. 부모님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열띤 토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전쟁 치하의 일기’라는 말만 들어도 대부분 <안네의 일기>를 떠올릴 것이다. 그때의 시대적 상황을 얼마나 알고 읽을까. 먼 나라의 가슴 아픈 역사로 정리하고 책을 닫는 것이다. 세상을 보는 넓은 시각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공중에 서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발밑을 제대로 인식해야 널리 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제대로 보려면? 황두진이라는 건축가가 쓴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라는 책을 추천한다. <역사 앞에서>의 후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자는 역사학자의 시각에서 후자는 건축가의 시선에서. 서울 토박이는 물론이고, 고향보다 훨씬 오래 산 곳인데 이리 무심했었나? 반성하게 된다. 서울의 지역별 아파트 시세 동향이나 살피지 말고, 이런 책도 좀 읽었으면. 무엇보다 책이 정말 재미있다. 사진만 보고도 할 얘기가 무진장 쏟아지고. 건축가가 얼마나 다방면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빨려 들게 된다. 모임에서 책을 읽고 나면 꼭 나오는 말. ‘여기 소개된 곳으로 답사 가고 싶어요.’ 그래서 본의 아니게 답사팀을 이끌고 북악산 길을 몇 번이나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이후로 나는 건축 관련 도서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리고 건축 자체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