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도 없이 무슨 일인가를 시작하려면 잘 두리번거리기라도 해야 한다. 가만 서 있으면 누가 알아주나. 그 무렵 살던 곳에서 버스를 타면 희망제작소 건물을 지나게 되었다. 단체 이름을 참 잘 지었구나 생각했다. 희망을 제작한다니. 그날따라 로고도 예뻐 보인다. 요술봉 끝에서 별이 반짝이는 것처럼. 그래서 들어간 홈페이지에서 강사 신청까지 연결되었으니, 인연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다. 희망제작소에서 행복설계아카데미를 알게 되고, 그 졸업생들이 만든 지혜로운학교를 클릭하니, 마침 강사 모집 공고가 뜬 게 아닌가. 다음날 전화로 문의, 마감을 조금 넘기긴 했지만 강의계획서를 올려보세요.
다른 강좌를 기웃거려보니 형식은 자유로운데, 주 단위로 진행되는 게 아닌가. 수강생도 직장인이 많아서 평일 저녁 수업이거나 주말이 많고. 밤에 나가는 건 싫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도 아니고. 할 수 없이 격주 저녁으로 수업을 잡았다. 그나마 강의 장소가 멀지 않아 다행. 그러면서 조금 불안했다. 바쁜 직장인이 언제 책을 읽을 것인지, 그것도 2주에 한 권을, 가능할까? 학기 시작 전 강사 상견례를 알리면서, 여기도 3명이 신청했단다. 최소인원을 5명으로 기입했는데, 애매한 숫자이다. 어떤 학교인지 강사들이나 만나볼까.
누구나 학생이 되고 강사가 되는 이곳은, 거창한 경력이 없어도, 경험을 녹여 꿈을 펼쳐 볼 수 있는 곳이란다. 내가 제대로 찾은 것. 그래서인지 여러 실험적인 강좌가 많다. 강사 중에는 꽤 활동적인 분도 있고, 막 첫발을 내딛는 새내기도 제법 있다. 취지가 이리 좋으니 나도 힘을 보태야지. 없는 시간을 쪼개 책을 읽겠다는 갸륵한 사람들. 만나보니 셋 다 무지 바쁘게 사나 보다. 내가 대신 읽어줄 수도 없고. <책은 도끼다>를 두 쳅터씩 나누어 읽자고 합의를 보았다.
뜻이 좋다고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닌 듯. 우선 육체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독서할 여유가 없다는 것. 읽지 않으면 수업을 할 수가 없는데. 그렇다고 나무랄 수도 없으니. 회식이며 출장이 잡히면 결석, 세 명이 다 와도 토론하기 부족한 인원인데 말이다. 그래도 내 소중한 첫 수강생이니, 마지막은 소풍 가듯 야외수업을 했다. 보라색 등꽃이 일렁이는 정독도서관 뜰에서, 꼭 완독 하겠다는 다짐을 받으며, 책거리를 한 것이다. 다들 잘 지내나?
다음 학기 강사 신청을 알리는 공고를 보고도 미적거리고 있었다. 계속해야 할까? 내 마음을 읽었는지 새로 실무를 맡은 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설득에 못 이겨, 한 달에 한 번, 주말 낮으로 강좌를 변경해 올렸다. 얼떨결에 <결정적인 책, 격정적인 대화>라는 강좌명까지 지어. 그러면서 5명이 안되면 폐강하겠다고 덧붙였다. 어찌 되었냐고? 수강생이 6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그중 셋은 식구였으니. 나를 설득한 분, 그 딸, 결국 사위가 된 딸의 남자 친구였다. 그렇게 강좌의 불씨를 살렸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도록 부추긴 이도 그녀. 다음에 만들 책방 운영도 책임져주려나?
지혜로운학교의 장점은 수강생의 연령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주중 낮 강좌는 주부가 대부분인데, 주말이니 남자들의 신청도 제법 있다. 같은 책을 읽고도 얼마나 다양한 생각을 하는지. 연령이나 성별에 따라, 전공이며 직업에서도 시각차를 보인다. 수업에 많은 질문을 준비할 것도 없다. <역사 앞에서>를 읽고는 6.25를 겪은 수강생의 실화를 한 바탕 들었으니. 책은 오히려 보조교재이고 그들이 풀어내는 경험이 산 공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