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딸 친구 엄마가 내게 물었다. ‘저 딸들을 모아 한 팀 만들면 안 될까요?’ 난들 왜 생각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또한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내 자식을 가르치는 일이니. 그간 교육을 빙자해서 치른 무수한 전쟁이 머리를 스친다. 어렸을 적에는 엄마 말에 고분고분. 어려워하고 제법 존경하는 티를 내기도 했지만. 이제는 내가 권하면 무조건 거부부터 하는. 사춘기 한참 지난 취준생 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친구 엄마의 부탁이 간곡하고. 딸을 설득하는데 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나도 이 기회에 책을 읽힐 시커먼 욕심이 있어서. 그러마고 대답은 하고도 미적미적하고 있었다. 토론이라는 게 최소한 셋은 되어야 하고 성장 환경이 비슷한 두 사람만으로는 너무 밋밋할 것 같아서. 그러다 동네 친구의 아들을 만났다. 다짜고짜 작업에 들어갔다. ‘독서 모임 하지 않을래? 또래 여자 두 명이 있는데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서.’ 크게 거부감 없이 미끼를 문다. ‘무슨 책을 읽는데요?’ 이때 결정타를 날려야 한다는 생각이 번쩍 든다. ‘소설책도 읽고, 사회과학 도서, 역사, 경제 뭐 다양하지. 가끔 만화책도 보고’
나중에 동네 친구에게 들으니 자기 아들은 책 읽는 것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웬일인지 모르겠다며 덧붙인다. 만화책이라면 몰라도. 그렇게 결성되었다. 마지막에 끼워 넣은 내 추천 도서 중 유일한 만화책 덕분에 모임이 만들어진 것이다. 뭐 여학생에게 관심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건 확인해 볼 수 없으니. 둘 다 근처에 살고, 딸도 나도 편할 것 같아서, 아무 생각 없이 우리 집에서 모임을 하자고 했다. 딸이 발끈했다. 왜 자기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결정하냐고. 엄마와 집, 둘 다 불편하단다. 그럼 바꿀까 하고 물으니, 지금 바꾸면 자신만 이상한 사람이 된다고 또 반대한다. 애고, 시작부터 내 맘은 편치 않다.
여기서도 첫 책은 <책은 도끼다>였다. 제대로 된 독서법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니. 그런데 정말 놀라울 일은 이 책은 연령과 남녀를 불문하고 극찬을 한다는 것이다. 정독의 중요성을 확실히 알았다고. 한 동네에 살아도 서로 모르는 사이이고 여자 둘에 남자 하나니 신경이 많이 쓰였는데. 의외로 잘 어울리고 토론이 술술 풀린다. 어른들은 이런 문화가 익숙지 않아서 처음에 많이 쑥스러워하는데. 요즘 학생들은 우리와는 다른 교육을 받고 있나 보다. 자기 의견도 당당하게 적극적으로 피력한다. 공부하듯 정리도 잘 해오고.
다만 대부분의 선정 도서가 30대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20대 청년들에게는 무얼 권하지? 고민에 빠졌다. 어렵게 얻은 기회인지라, 이번에 제대로 독서의 재미를 알리고픈 엄마의 욕심이 더해지니. 더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다. 다른 모임은 수업을 마치면 같이 밥도 먹으면서 친해지는데, 내가 편하지는 않은 눈치. 다들 엄마끼리 알고 있으니 말하기 자유롭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고. 여름이 오면서 핑계 삼아 나는 빠지고. 카페에서 저희들끼리 토론하도록 하기도 했다. 책을 선정해주고 몇 개의 질문을 정리해 던져주었더니, 오히려 재미있게 노는 것 같다.
짧아서 아쉬웠지만 나는 좋은 점이 많았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꺼내지 않는 청춘들의 내면을 볼 수 있었으니. 그리고 젊은 취향의 책과 저자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만화를 집중적으로 보게 된 것도 그중 하나. 문자보다 풍부한 상징성을 가진 세계가 있었구나. 다른 모임은 책을 소재로 경험을 나누는 대화가 대부분인데, 이곳에서는 제법 이슈가 되는 질문도 들어오니. 적잖이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런 긴장도 자극이 되었고. 일 년쯤 진행하다가 하나둘 취직이 되면서 그만두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책을 읽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런 나라에 살게 해서 미안하기도 하고. 그리고 아직 포기하지 않은 야무진 꿈 하나. 새 책방을 열면 주말에 직장인 대상 독서모임을 만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