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음재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많이 외롭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돈의 유무와 상관없이. 내가 좀 더 나은 위치에 오르면 덜 외로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곳에 가보면 또한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여전한 고민을 하고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언제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있었으면. 그런 진정한 친구가 많았으면. 모두의 소망이 아닐까. 나는 여기에 하나의 욕심을 더했다. 그 친구들과 무슨 일이건 꺼내놓고, 마음껏 얘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막연한 생각을 구체화시킬 수 있겠구나, 어떤 여지를 심어준 게 한 권의 책이었다. 이 글에서 두 번째로 소개한 책,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이다. 같은 책을 읽고 얼마나 다른 생각을 하는지.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나인 셈인데. 독서 후 모두 답사를 원했는데 나는 다른 꿍꿍이가 생겼으니. 건축가 황두진이 만든 ‘영추 포럼’이라는 모임에 꽂힌 것이다. 저자는 서촌의 낡은 집을 사서 개조하였는데, 일층은 생활공간으로, 이층은 자신의 집무실로 쓴다고. 그리고 주말이면 사람들을 집무실로 불러 재미있게 논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거나, 소규모 연주회를 열거나, 토론을 하기도 하면서. 얼마나 부러워 보이든지. 이런 방법이 있구나. 그러면서 스치는 생각, 공간만 있으면 나도 얼마든지 가능한데.



지음재 독서모임은 그 꿍꿍이가 발현된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가족이 동의하고, 그리고 이 집이 완성시킨 셈. 3년 전 이 집으로 이사할 때만 하더라도 모임까지 가능할지는 미지수였다. 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할까. 작은 2층 집은 마침 생활공간과 주거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나는 늘 거실을 서재로 꾸미고 싶었는데. 드디어 실현된 것. 벽면을 모두 책으로 에워싸고, 거실 중앙에 커다란 탁자를 놓고, 책을 읽다 눈을 돌리면 옆집 마당에 훤히 보이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가만, 이 정도면 ‘포럼’까지는 아니더라도 친구들 불러다 ‘모임’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침 집 이름도 지음재였다. 건축주가 짓긴 했지만 의미가 딱 맞아떨어졌다고나 할까? ‘지음’이라는 말은 거문고의 명인 백아가 연주를 하면 음 만으로도 친구의 심정을 아는 종자기와의 관계에서 유래했단다. 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을 일컫는 말이라니, 더 보탤 것도 없다. 낮에는 주로 혼자 있으니, 식구들도 흔쾌히 허락했다. 그냥 부를 친구야 많지만, 이왕이면 책 읽는 모임을 만들고 싶었으니. 그래서 인선에 조금 신경을 썼다.


같이 책을 읽고 토론할만한 친구,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영화나 미술관 관람은 두어 시간이면 족하고, 눈으로 보는 것으로 끝낼 수 있지만. 독서 모임은 오랜 집중과 토론이 필요한 작업이니. 우선 선정된 도서를 반드시 읽는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친하다 보니 수다나 떨려하면 모임의 향방이 흐려지는데. 이걸 대놓고 나무랄 수도 없으니, 더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토론을 하다 언성이 높아질 수도 있는데, 의견이 다르더라도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상처 주지 않을 만큼 적당한 거리 유지도 필요하다.



권유하고 설득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모두 여섯 명이다. 박물관에서 알게 된 친구, 영화를 좋아하는 고교 동창, 그림 그리는 딸 친구 엄마, 미술관 도슨트 하다 만난 친구,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친구, 참 다양한 조합이다. 나를 중심에 놓고 다들 모르고 지내던 사람이니. 일단 적당한 거리감은 합격점이다. 처음에 서먹서먹해서 어울리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책이 매개가 되어 얘깃거리가 풍성하다. 평소에 꽤 독서를 했던 친구들이고, 전문 분야가 있어 여기저기서 진가를 발휘한다. 오히려 내가 도서 선정에 고심했을 정도. 책이 쌓일수록 토론도 길어졌으니, 비교 분석에 열을 올리느라, 오전에 시작해서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끝나기도 했다.


집을 개방하면 약간의 수고는 따른다. 미리 집 청소를 해야 하고, 시든 화분도 갈아주어야 하고, 냉장고 정리도 해야 하는. 좀 번거롭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덕분에 밀린 집안일을 해치우는 효과도 있다. 살림이란 게 하다 보면 타성이 붙어 대충하거나 자꾸 미루게 되는데,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니까. 토론에 집중하기 위해 먹는 건 간단히 하자고 다짐하지만, 늘 차고 넘쳤다. 오는 친구들이 이것저것 들고 왔으니. 아줌마들이 모여 시시한 잡담을 하는 게 아니라 독서모임을 한다는 게 어디 흔한가. 친구들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좀 우쭐해지곤 했다. 내가 이리 행복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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