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 겨울을 견딜 수 있을까?
따뜻한 실내에서 시린 바람이 오가는 뜰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이번 겨울은 그리 춥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덕분에 아직 이끼는 푸르다. 대나무 가지에도 얼음이 매달리지 않았고. 작년에는 가뭄이 정말 심했었다. 보다 못한 내가 물을 주었다가 오히려 대나무 두 그루를 죽이고 말았다. 다음날 엄청난 추위가 몰려왔으니 뿌리가 언 것이 아닐까. 겨울 날씨란 예측할 수 없는 것인데 괜히 행동이 앞선 것이다. 그러니 올해는 섣불리 손을 쓸 수 없다. 그냥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다. 식물이 계절을 제대로 견디도록. 겨울은 겨울답게, 적당히 눈을 맞으며, 추위에 몸을 떨기도 하면서. 하지만 맨 몸으로 겨울을 나고 있는 식물을 보면 마음이 쓰이기는 한다. 너무 춥지는 말고 적당히 비가 내렸으면, 식물들이 얼지는 않고 목만 축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세상사가 내 마음만 같다면? 그럴 리 없으니 세상 살기를 허투루 할 수 없는 이유이긴 하지만.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봄을 예고하는 식물은 매화이다. 부엌 식탁 옆 볕 좋은 창가에서 자란 탓일까. 아직 팥알만 하지만 꽃망울은 벌써 제법 붉다. 언제 가지 끝이 부푼 것일까. 붉은 치장은 또 언제 한 것일까? 일출이나 일몰처럼 중요한 순간은 왜 다 놓치는 것인지. 이번 겨울은 유난히 포근해서 예년보다 개화시기가 더 당겨질 것 같기도 하다. 막 새해가 시작되었을 뿐인데 벌써 이리 기대해도 될까. 생각해 보면 내가 언제 나이를 이렇게 먹은 것인지, 꿈속의 일처럼 몽롱하니. 꽃망울이 맺히는 시간까지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개화기를 가늠하는 일은 더 요원한 일일 테고.
세상에 식물만큼 강한 존재가 있을까?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주어진 여건 속에서 정말 잘 자란다. 물과 바람과 햇볕만 있으면. 어떤 불만도 말하지 않고. 단지 푸른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몸으로 행동으로 보여줄 뿐이다. 조용히 존재를 증명하니 자꾸 눈길을 끌 수밖에. 그리고 겨울이 되면 모든 가식을 벗는다. 마치 실존주의자처럼 나목으로 말한다. 단언컨대 겨울 나뭇가지만큼 아름다운 선은 세상에 없다. 제멋대로 뻗은 선이, 그 어우러짐이 기가 막힌다. 그래서 어느 계절보다 애틋하게, 시리도록 겨울 나뭇가지를 쳐다본다. 오래 감탄하면서. 그리고 빨리 봄이 오기를, 다시 풍성해지기를 기원한다. 사람은 눈앞에 보물을 두고도 다른 것을 상상해야 직성이 풀리는 오묘한 존재이니. 이 무슨 이율배반인지.
지난가을, 몇 년간 해 오던 독서모임을 그만두었다. 누가 보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 모임이었으니. 다들 의아한 반응일 수밖에. 무엇보다 미안한 일은 느닷없이 내 통고를 받은 수강생이었을 것이다. 정말 즐겁게 책 읽고 토론할 수 있어서 좋다는 반응을 수없이 보냈는데. 그런 과분한 애정을 받은 강사가 칠 뒤통수는 아니었으니. 나는 왜 그런 결정을 한 것일까? 매화나무 멍울이 언제 맺힌 것인지, 가늠하기 힘든 것처럼. 그런 생각이 마음에 스며든 때를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다. 다만, 어느 날 그런 생각에 골몰한 나를 발견했을 뿐이다.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란 누가 알려주는 것인지. 누군가 딱 집어서 통보해주면 더 편할지는 미지수이지만. 입 속에 오래 고여 있던 말이어서 나도 모르게 발화하고 말았다. ‘때가 되면 절로 꽃이 피듯이’ 라면 너무 미화한 것일 테지만.
뭐라 말할까? 지금 하는 독서 모임들도 충분히 좋지만 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할까. 안온한 실내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면 바깥바람이 쐬고 싶은 심리하고 할까. 조금 더 외연을 넓히면 어떨까. 매번 새로운 책으로 토론하는 형식이어서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피로감은 없었지만. 약간의 자극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시작된 것인지. 그 대책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감지되지는 않았지만. 막연히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거렸으니. 모임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조금씩 은밀하게. 아무리 좋은 일이어도 일상이 되고 나면 소중함을 망각하는 동물이 인간인 것인지. 내가 유난스레 싫증을 잘 내는 것이지. 무식해서 용감한 도전 의식이 발동한 것이지.
그간 몇 번 시도해보기는 했다. 몇몇 단체의 강사 모집 공고를 보고 응모하기도 했으니. 면접을 보러 가면 대개 강의 횟수와 방법은 정해져 있었다. 매주 또는 격주로 독서토론을 해 달라는. 그들의 조건을 들어줄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얼마든지 적당히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간의 경험으로 보면 썩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확신이 있다. 우선, 그 짧은 기간 동안 책을 읽어오는 사람은 드물다. 한 달에 한 권도 겨우 읽는 경우가 허다했음을 익히 알기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에 오래 매달릴 수 없다는 건 전적으로 내 탓이다. 스스로 재미를 느낄 수 없는 일 하는 걸 좀 힘들어하는 체질이라. 독서모임이란 단순히 책을 읽는 모임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신나서 해도 마음에 닿기 쉽지 않은 일이거늘. 그리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는 나이 탓이기도 하다.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좀 참으며 기다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젠 잘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세월을 내가 긍정하지 않으면 누가 헤아려 줄 것인가.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는 일의 체력적인 한계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책방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은 서서히 부풀었다. 은연중에 조금씩. 책을 읽다가, 기사를 통해서, 영화를 보다가, 여행지의 낯선 서점 앞을 지나면서도 문득 떠올랐다. 내가 선정한 책만 파는 서점을 만들면 어떨까? 그곳에 가면 언제나 좋은 책을 소개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줄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선정 도서는 그 이유를 정성스럽게 표기해서 공신력을 높이고. 무슨 책을 읽을지 망설이는 사람에게는 내가 직접 골라주기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내 독후감을 공개하지 뭐. 그게 무슨 비밀일 것도 없지 않은가. 책을 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슬쩍 독서모임을 소개하는 건 어떨까? 그렇다면 독서모임의 장점은 어찌 증명할까?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는 아무리 설명해도 확인할 수 없으니. 그 체험의 장을 넓히는 일이 궁극적으로 책방을 열려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라고.
꿍꿍이가 무럭무럭 자라,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터져 나왔으니. 계획을 들은 첫 번째 청자는 회의적이었다. 미끼는 자고로 달콤해야 하는 것이거늘, 책이 사람을 모을 수 있을까. 수면제가 되지는 않을까.
요즘 세상에 책방이라니.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말은 차마 발설하지 않았지만 내 귀에도 분명 들렸다.
이쯤에서 어릴 때 들은 얘기 한 토막. 한 소년이 며칠간 밥을 먹지 못해서 배가 몹시 고팠다고 합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음식을 먹기 시작했지요. 처음에 자신의 신발을 주고 엿을 바꿔 먹었고, 잔칫집에 가서 고기 한 토막을 얻어먹고, 남의 집에 가서 밥을 구걸해서 먹었지만 배가 부르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개울가에 가서 물을 마셨더니 배가 빵빵해지는 것입니다. 그러자 소년이 말했습니다. 에잇, 처음부터 물을 마실걸 그랬어. 그럼 배가 바로 불렀을 텐데. 세상에 이리 어리석은 이가 어디 있느냐며 웃어넘긴 얘기입니다만.
작년 봄에 히아신스 화분 하나를 샀다. 보라색 꽃대가 어찌나 소담스러운지, 향기로움은 또 어쩌고. 등불 하나를 켜 둔 듯 집안이 향기로 일렁였으니. 황홀함 그 자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책상 위에 올려두고 족히 2주는 감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꽃대가 시들기 시작하자 화분 채 버릴 처지가 되어 버렸으니. 몇 번의 경험으로 온상 식물은 노지 생존율이 거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화원에 물어보니 구근을 뜰에 심어보기는 하되 기대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 그러지 않아도 꽃 욕심이 과해 비좁은 뜰 한편을 파는 나를 식구들은 미심쩍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 기억력에 구근 심은 것도 잊고 다른 식물을 위에 심을 게 분명하다고.
사실은 나도 잊고 있었다. 뜰에 나가 땅을 살펴보기 전까지. 며칠째 겨울 치고는 햇볕이 너무 따사로워 마당가로 나갔다가, 새싹 하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한눈에 알아보았다. 히아신스구나. 작년에 심은 것,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혼자 싹을 틔운 것이다. 너무 대견해서 식구들을 불러내서 또 한 번 호들갑을 떨었다. 모두 시큰둥한 반응. 뭐 꽃이 핀 것도 아니고 싹 조금 올라온 것 가지고, 너무 야단스러운 것 아니냐고 불퉁댄다. 싹이 났으니 곧 꽃이 필 것이라고 하려다 그만둔다. 누가 알겠는가? 아직 겨울은 창창하고 언제 눈보라가 칠지 모르는 일이니. 다만 작년처럼 쓸데없는 애정을 쏟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자연은 자연스럽게 키워야 자연에 적응하는 법이니.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풍경 소리가 요란하다. 바람이 거세다는 증거이니. 다시 갈등한다. 오늘 밤만이라도 구근을 캐다 따뜻한 실내에서 견디게 해 볼까? 꽃을 보고 나서 다시 내다 심어도 되지 않을까? 익숙한 일,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들이라니. 크고 작은 갈등을 추슬러 겨우 잠이 들었는데. 새벽녘에 느닷없이 들 고양이 울음소리가 끼어든다. 다른 때 같으면 버럭 짜증을 냈을 것이다. 야릇한 소리로 잠을 깨웠다고. 그러나 고양이는 울음 외에는 자신의 뜻을 알리는 방법이 없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