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후 몸살

마음으로는 슬슬 책방 물색에 나가야 한다고 수없이 되뇌지만, 내가 제일 취약한 일이 부동산과 관련된 일이다. 단순히 구경하는 건 좋은데. 결정 장애자처럼, 어떤 물건이 좋은지, 또한 경제적인 이득이 있는지 헤아리는 것이 정말 어렵다. 그나마 집은 몇 번 경험이 있지만, 이번에는 가게를 얻는 일이니. 전혀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부자가 되려면 부동산 중개인과 친구가 되라하지만, 여태 데면데면 살다가 이제 와서 쉽게 바꾸어지겠는가. 겨우 하는 일이 인터넷 부동산이며 직방 같은 곳을 기웃거리며 눈요기만 하고 있는데. 친구가 전화로 어찌할 셈이냐고 묻는다.


자신이 없을 때는 솔직해야 할 것 같아서. 겨우 지역을 정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노련한 친구는 현재 운영 중인 책방을 가보는 게 우선 이란다. 나는 그것도 책이나 인터넷으로만 보고 있었는데. 날짜를 정해서 우리와 비슷한 성격의 책방이 몰린, 마포구와 서대문구를 방문하기로 했다. 역시 친구는 잘 사귀어야 몸이 덜 힘든 법. 여태 전혀 가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고객으로 방문한 것과 운영자의 입장에서 보는 서점은 천지 차이일 테니. 서점을 물색하는 중에도 여러 요건이 물망에 오른다. 비교적 오래된 곳과 막 차린 곳, 교통의 좋은 곳과 외진 곳, 일반 서적인지 독립 서적 중심 인지도 고려의 대상이 된다. 되도록이면 다양한 면모를 보아야 현실을 직시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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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을 열고 싶다는 열망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공간은 어디일까? 아마도 영화 <노팅힐>이 아닐까 싶다. 하와이에 살 무렵 집 근처에 추리 서적을 파는 곳이 있었는데, 그때는 전혀 흥미가 일지 않았다. 어두컴컴하고 심지어 괴기스럽기도 해서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그러나 영화 속의 서점은 고즈넉하고 조용한 도서관 같은 분위기였다. 어쩌면 가보지 않아서, 또한 달콤한 서사 덕분에 오히려 환상을 가진 것이겠지만. 여행 관련 서적만을 골라서 파는 서점이라니. 여행과 책,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부채질하는 매체가 아닌가. 둘의 조합이 너무 근사해서 꿈이 무럭무럭 자랐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미 언급했지만, 일본 도쿄 긴자의 골목에 있는 ‘모리오카 서점’이다. 한 주에 단 한 권의 책을 선별해서 소개하고 판매하는 게 전략이란다. 그 선택과 집중이 어찌나 충격적이었던지. 더구나 그런대로 운영되고 있다고 하니. 주인의 자신만만함과 그에 호응하는 일본인들의 저력이 부럽기만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오키나와의 <헌책방 울랄라>의 사연이었다. 큰 서점의 직원으로 오키나와 지부 발령을 받아갔는데, 그곳의 사람과 책이 좋아 퇴사를 하고, 전통 시장 한편에 아주 작은 헌 책방을 차린 사연을 쓴 책이다. 서점의 잔잔한 일상을 적은 글이 정말 재미있고 따뜻했다. 구체적으로 서점 운영의 어려움과 보람이 예측되기 시작했다고 할까?


다음으로 읽은 책이 <우리, 독립책방>이다. 풍문으로 들었지만, 생각보다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더 놀라운 일은 전국적으로 꽤 활발하게 운영되는 곳이 많다는 사실이다. 바로 우리 곁에서 고군분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너무 무관심했다 반성하면서. 언젠가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드디어 실천의 기회가 온 것이다. 이대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나서는데, 날씨가 무척 춥다. 오늘 다닐 거리를 생각하면 옷은 단출하게 가방을 큼직해야 한다. 걷는 시간은 만만치 않을 것이고, 방문하는 서점마다 적어도 책 한 권은 구입할 각오이니까. 친구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단단하게 무장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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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에 열어서 요즘 자주 신문에 소개되는 ‘위트 앤 시니컬’ 서점이 첫 방문지이다. 시인이 운영하는, 시집만 빼곡히 꽂힌 공간이라니. 가보기도 전에 벌써 설렌다. 스마트폰만 들여다볼 뿐 종이 책은 점점 사라져 가는 시대가 아닌가. 그중에서도 시는 얼마나 먼 나라 얘기인지. 자그마한 공간을 예상했는데, 옛 신촌역 대로변, 번듯하고 현대적인 건물의 3층이다. 내부는 세련되고 널찍하기까지. 알고 보니 ‘카페 파스텔’의 3평 정도를 쓰고 있단다. 제일 눈길을 끈 것은 단연 ‘시인의 책상’이었다. 상업적인 공간에 놓인 책상이니, 시 쓰는 장소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아닐까. ‘마음 어느 한 곳에 시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라는’. 시집은 부피도 얇아 대형서점에서 늘 옹색하기만 한데. 제대로 대우받는 걸 보니 은근히 기분이 좋다.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으니, 사고 싶은 게 한두 권이 아니다. 음반과 일반서적과 문구류를 파는 ‘프렌테 샵’도 같은 공간에 있다. 가끔 시 낭송회도 열리고 위층에서는 문학 수업도 정기적으로 한단다. 시를 위한 공간은 소박해야 한다고 누가 말했던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호사가 바로 시의 세계인 것이니. 오래 사랑받기를.


사실 책을 보고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여행 관련 책을 취급하는 ‘일단멈춤’이라는 책방이었다. 책방 이름부터 마음에 들어서. <노팅힐>의 우리나라 식이 아닐까 상상했는데. 아현동 재개발지역이어서 지난여름부터 쉰다는 것이다. 어찌나 아쉽든지. ‘론니 플래닛’ 유의 책이 아니라, 인문학으로 접근한 여행 서적이 많다고 해서 더욱 궁금증이 일었다. ‘나만의 여행 책 만들기’ 같은 작업도 병행한다니. 어떤 책들이 선정되었는지, 운영의 어려움과 즐거움은 무엇인지 어쩐지 할 말이 많을 것 같았는데. 쉬면서 다시 열정 충전 가득하기를 빌 뿐이다.


아쉬운 발길을 돌려 망원 시장 근처 ‘책방 만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가서 근처에 내렸는데 정말 찾기가 쉽지 않다. 한참을 헤매다 허름한 철물점 옆 소박한 간판을 발견. 날씨도 조명도 흐린데 주인의 인사도 조용하다. 언뜻 말을 붙이기 조심스러워 우리도 가만히 둘러본다. 문학과 사회과학 분야 서적 선별이 좋다. 존 버거의 <말하기의 방법>을 발견, 기쁘게 구입. 이것저것 궁금한 것은 많지만 눈치만 보다가 그냥 나왔다. 그리고 살짝 고민에 빠졌다. 내가 주인이 되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적극적으로 말을 붙이는 게 나을지, 도움을 청할 때까지 함구하며 기다려야 할지. 친구와 한참 동안 설전을 벌였지만 여전히 결론은 나지 않는다. 외진 곳에서 이만큼 버티기도 쉽지 않았을 거라는 위로의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나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기에. 적당함이란 어디서 구입하는 상자인지. 그래도 마음으로는 열렬히 응원합니다.


이번에는 독립 책방계의 롤모델이라는 홍대 근처 ‘땡스북스’로 간다. 대로변 일층, 볕이 환한 곳이니, 분위기가 다르다. 조금 전 본 서점의 잔상이 남은 내게는 그냥 대형 서점의 축소판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만큼. 내부로 들어서니 정말 아늑하다. 좀 사는 친구의 서재에 초대받은 듯하달까. 우선 북 큐레이터의 꼼꼼한 선별이 눈을 사로잡는다. 미술 관련 서적이 정말 풍성하니 기웃거리는 것만으로 즐겁다. 몇 권 챙겨서 주위를 살피니 안락한 의자도 있고, 음료도 판다.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될 만큼 책은 근거리에 있고, 몸은 서로 부딪히지 않을 만큼 여유가 있으니. 자존감을 느끼기에 딱 좋은 정도랄까. 이 정도 규모로 운영하려면 안목뿐 아니리 자본의 도움 없이, 어찌 가능한 일이겠는가? 서점 주인의 마음으로 보지 않았다면 한없이 즐겼을 시간이지만. 알 수 없는 낭패감이 밀려왔으니. 땀과 열정에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야 하는 데도 말이다. 앞선 누군가 이미 해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해야 하는 일이고. 이런 소갈머리로 뭘 하겠다는 것인지.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가방도 무거워지는데, 아직 한 곳이 남았다. 와우산로의 서점 ‘유어마인드’이다. 체력은 이미 바닥났는데,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5층에 있으니. 고개를 젖혀 창문의 상표를 보지 않았다면 서점인 줄 몰랐을 것이다. 힘들게 계단을 오르는데, 우리말고도 동행이 있다. 2010년부터 운영했으니 이미 독립 책방으로 단단히 자리매김을 한 덕분이 아닐까. 무심한 고양이 두 마리가 입구에 버티고 있다. 여기 주인도 조용한 응대이지만, 생각보다 방문객이 많다. 우선 전망이 너무 좋아 탄성이 절로 나고. 한참 넋 놓고 구경하다가 매대로 눈길을 돌리니 주로 독립출판물이다. 아직 관심을 가진 적이 없는 분야라서 무얼 골라야 할지? 집중해서 봐야 하는데,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많이 피곤하기도 하고. 빈손으로 나오려니 어찌나 미안하든지. 이럴 때는 말을 섞지 않은 게 편하기도 하니, 어느 쪽이 나을지 다시 결정이 유보된다. 한 가지 결심한 것은, 앞으로 독립출판물에도 좀 애정을 가져야겠다는.


독립 책방을 구경하고 돌아온 저녁 둘 다 감기 증세가 있었으니.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를 몸이 알아챈 신호가 아닐는지. 같은 독립 책방이어도 규모에 따라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작은 책방은 대체로 개점 시간이 오후였으니. 주인 혼자서 지키다 보니 체력적 한계 때문이거나 다른 일을 병행하며 겨우 월세를 해결하느라 늦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조금 어수선하게 정리가 안 된 곳도 눈에 뜨였는데, 그마저 남의 일 같지 않게 애잔하게 보이고. 규모가 좀 큰 곳은 교통도 좋고 대개 종업원을 두고 음료 판매를 병행하기도 했다. 자연히 환경도 쾌적하고 책의 종류도 풍성해서 선택의 폭이 넓다 할까. 그러니 몸살은 어쩌면 고질적인 문제에 봉착한 마음의 발로인 것이니. 돈은 없는데 쓸데없이 안목만 높은 이 묵은 질병 말이다. 숙제는 또 어찌 해결해야 할까. 며칠 몸져눕는다고 과연 풀리기는 할 것인지?



지난가을에 담은 오미자 즙을 물에 섞으니 색이 정말 곱다. 따뜻한 찻잔을 들고 창가를 서성이며 눈은 연신 히아신스 주변을 맴돈다. 며칠 전 눈곱만큼 보이던 잎 끝은 다시 어디로 숨은 것일까? 어젯밤 내린 찬 서리 탓인가. 오미자차 두어 모금을 마시니 칼칼한 목은 조금 풀리는데. 히아신스는 여전히 잠수를 타고 있으니. 이번 봄, 책방은 무사히 싹을 튀어서 꽃대를 볼 수 있을지. 이젠 부동산 사무실에서 내 꿈의 향방을 가늠해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니, 좀 으스스하다.


그리고 며칠 전 약속이 있어 강남에 간 길에 ‘최인아 책방’을 들렀다. 교통은 편리한데 쉽게 드나들 수 없는, 비밀의 장소처럼 살짝 숨겨져 있으니 더 매력적이다. 광고계의 전설이었다는 소문에 걸맞게 아래층의 입간판부터 예사롭지 않다. 공간은 복층 구조로 시원하고도 오밀조밀하다. 서고의 배치며 매대 공간은 크고 널찍해서 시원하고. 따로 막힌 공간에서는 독서모임을 해도 될 것 같다. 복층 계단을 오르니 편안한 의자가 마련돼 있으니, 공간 구성이 재미있다. 이곳에서는 누구 눈치도 안 보고 한없이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질 수 있겠다. 책은 모두 유명인사의 추천서로 채웠다 해서 궁금했는데, 신간도 많이 구비되어 있다. 음료를 소개하는 글귀마저 허투루 하지 않았으니, 지갑이 자꾸 얇아진다. 공간 전체가 잘 기획된 하나의 상품 같다고 할까? 여태 본 서점 중에는 가장 마음에 든다. 잠시 현실을 잊고 다시 백일몽에 꾸다 내려왔으니. 도서관이나 서점은 자고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공기로 채워야 마땅하다고. 나는 오늘도 혼자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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