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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남 서촌 그 책방 Oct 20. 2016

 모든 게 노래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탔다. 의외의 인물이어서 많이 놀라웠다. 그렇다고 그의 업적이 문학상을 탈만한가?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내가 판단할 몫은 아니니까. 시적인 가사가 돋보인다지만, 그림책을 제외한 책은 자서전 한 권뿐이어서, 세계적인 논란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이름은 들어보았으나 그의 음악은 잘 모른다. 부스스한 서양 남자가 기타를 들고 조금 감성적으로 노래하는구나 정도.   

   

솔직히 말하면 그의 수상이 놀라운 게 아니라, 노벨 측이 밥 딜런 같은 가수에게 상을 주었다는 사실이었다. 문학의 범주에 가수의 활동을 포괄하다니. 만만치 않은 상금으로 통 크게 외연을 확장한 사실 말이다. 나는 이런 발상의 전환이 흥미롭다. 물론 문학계에서 볼멘 투정이 있을 것이다. 모두 밥그릇 싸움이니. 그러면 우리의 밥 딜런들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가. 이상 문학상을 작곡가 겸 가수인 전인권에게 부여하는 일이 일어날까. 또는 한영애에게.     


소설가 김중혁의 글은 재미있다. 한겨레신문을 보며 건진 작가 중의 한 명이다. 작가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지만 소설보다 인터뷰나 에세이를 더 잘 쓴다. 그는 그림도 잘 그린다. 이번 책의 삽화도 직접 그렸으니. 그리고 한때 가수를 꿈꾸며 기타를 배우고, 노래를 부르려고 하였단다. 결국에는 노래를 들으며 소설가가 되기는 했지만. 이번 책은 김중혁의 애청곡 에세이다. 한 번도 가수가 되려고 생각한 적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잘 모르는. 독특한 목록을 자랑한다. 이런 다재다능함이 재기 발랄한 글의 원동력이 아닐까.   

 


모두 자신만의 노래가 있을 것이다. 그 노래를 잊지 않고 계속 불렀으면 좋겠다. 노래를 잊는 순간, 우리는 땅으로 곤두박질치게 돼 있다. 가사를 곱씹어가며 부르든, 흥얼거리며 콧노래를 부르든 상관없다. 무엇이든 노래가 될 수 있고, 우리는 늘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몰라서 그렇지. 자세히 둘러보면, 모든 게 노래다.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개의 장으로 되어있다. 모든 게 노래이니 사계절 내내 떠오르는 노래를 골랐구나! 생각하고 목차를 보면, 노래보다 이야기에 방점이 찍히는 책인걸, 금방 알게 된다. 글쟁이가 쓴 책이라 소제목도 남다르다. ‘우리가 먼저 외로움을 찾아가자’ 얼마만큼 외로워 보아야 이런 제목을 지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허공이야말로 우리들의 고향’ 같은 것도.    


그리고 눈에 뜨이는 작은 디테일 하나. 각장의 제호 아래에는 계절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글이 있다. ‘예술이 반드시 무엇인가를 비유하고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소리와 형체는 그 자체로 아름답고 미완성인 자체로 이미 완성된 것이다. 우리는 구체적이고 알기 쉬운 멜로디와 알아볼 수 있는, 혹은 알아보기 쉬운 형체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어느 계절 같은가? 책을 읽어보시길.     


봄 하면 무슨 노래가 떠오르는가? 작가는 <봄날은 간다.>로 얘기를 시작한다. 누가 봐도 소설가 김훈과 김연수가 틀림없는 두 k 씨를 씹으며.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는 말과 함께. 속이 조금 뜨끔하다. 이곡이 내 18번인데. 독서모임에서 애창곡 얘기를 꺼냈다가 애먹었다. 진도를 나갈 수가 없어서. 그리고 김추자와 김정미도 등장한다. 김추자는 건전지에 혀를 댄 것처럼 짜릿하고, 김정미는 무덤덤하게 폐부를 찌르는 목소리라는 평. 내게 김정미는 짝퉁 김추자 정도로 각인되어 있는데. 그런 매력이 있었나?     


트로트 인디 정신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자신의 음악 성향이 어머니의 트로트 인디음악에서 발현된다는 주장이다. 사실 주류 음악은 좀 지겹다. 너무 틀어대니 듣고 싶지 않을 때도 참아야 하고, 점점 신선함은 사라지고 고문이 된다. 인디음악의 장점은? 그럴 염려가 없다는 것. 내 상황에 꼭 맞는 음악을 스스로 선택한다. 왜? 대부분 잘 모르니까. 반드시 자신이 찾아서 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그래서 더 은밀하고도 짜릿하다. 히히 이 곡은 아무도 모르겠지. 

 


짧은 순간들, 바람 같은 순간들, 음악을 듣고 있으면 순간과 현재를 느끼게 된다. 좋은 음악은 시간을 붙든다. 현재를 정지시키고 순간을 몸에다 각인시킨다.

 이런 순간을 많이 가진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책을 읽다가, 그림을 보다가, 영화를 관람하다가, 음악을 듣다가, 맛난 음식을 먹다가, 좋은 사람과 담소를 나누다가, 가끔 이런 경지를 경험한다. 어렸을 적엔 그 순간을 거의 모르고 지났는데. 요즘엔 행복이 몸을 관통하고 있다는 걸 가끔 느낀다.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는 순간. 전율하며 행복해하다가 다가올 소멸의 순간마저 예감하긴 하지만. 너무 오래 산 것일까? 아니. 제대로 인식할 수 있어서 오히려 좋다. 우울할 때 꺼내 먹을 달디 단 초콜릿을 확실히 저장하는 것이니까. 이런 행복한 기억이 많은 사람을 부자라고 생각한다. 엄청난 돈을 깔고 누워 숨만 쉬고 있는 사람보다.  


김중혁은 음악의 종류도 그답게 분류한다. ‘배경음악, 실용음악, 기능 음악’으로. 여러분은 분류별 어떤 목록을 갖고 있나? 나는 거의 모든 음악이 배경음악이다.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거나 읽기가 쉽지 않다. 자꾸 신경이 분산되어 하나도 제대로 할 수가 없으니. 이런 경지에 오른 사람이 부럽다. 내 유일한 실용음악은 아주 피곤한 날 신경 줄을 이완시켜주는 것 정도. 음량을 최대로 증폭시켜 신나게 음악 샤워를 하고 나면 피로가 풀린다.   

    

실용적인 팁도 있다. 노래방에서 필요한 예절 같은 것을 알려 준다. 눈치와 전략과, 조화가 필요하다나. 음치에 박치인 나야 노래방에만 가면 갑자기 조신해지지만. 자신이 독립 운동가라도 되는지 <선구자>나 <마이 웨이>만 목청껏 질러대는 남자들이 좀 지켰으면 좋을 예절이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듣는 목록 소개도 좋다. 책에서 ‘가을방학’이라는 팀을 알게 되어 나도 CD를 샀다. 이름처럼 가을에 듣기 딱 좋다. 이태원에 놀러 갔다가 그의 콘서트 안내문을 보고 어찌나 반가웠든지.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이런 곳에는 20,30대들만 득시글득시글할게 뻔해서 참았다.     



상상 속의 래퍼들은 철근을 잘근잘근 씹어 먹을 기세로 폭주하는 엄청나게 거친 사람들, 입속에 가득 들어찬 단어와 문장과 욕을, 메시가 축구공 다루듯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들이었다.
 

처음 랩뮤직을 들었을 때 이것도 음악 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비트박스에 나도 모르게 반응하는 내 몸을 보며 생각을 고치게 되었다. 의미 없는 후크송이 난무하는 우리 가요계에 그나마 의식 있는 랩 가사가 우리의 현실을 담아낸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만 들었을 때는 한껏 거친 이미지를 풍기지만, 토크쇼에 등장하는 래퍼들을 보면 선입견이 깨진다. 일반 가수들보다 더 수줍어하거나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려고 문신을 하고, 가죽 재킷을 입고, 코걸이로도 모자라 혓바닥에 압정까지 박고 다니는 건 아닐까?     

이 책의 가장 큰 재미는 여러 인디 뮤지션을 소개받는다는 것이다. 나는 거의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분들이다. 얄개들, 이아립, 이호석, 오지은, 야광 토끼, 로지피피, 넬, 손성제, 정바비, 계피, 리을. 이 들 중 아는 사람이 셋을 넘으면 당신은 인디음악 팬이다. 사야 할 음반 목록을 적어서, 들어보기를 해보니, 좋은 게 많다. 다 사고 싶다. 그러나 우리의 무관심을 견디다 못해 이미 해체된 그룹도 있고 음반은 거의 절판. 우리의 밥 딜런이 이렇게 살고 있다.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어떤 단어를 사용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하는가에 따라 호감도가 달라진다. 좋은 단어로 빚어진 경쾌한 이야기를 듣고 나면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좋게 느껴진다. 

사람의 목소리가 가장 좋은 악기이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외모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목소리가 거슬리면 그만 귀를 막고 싶어 진다. 그리고 훌륭한 목소리를 지녔어도 구사하는 어휘가 빈한하면 매력이 확 떨어진다. 그 사람의 지적 능력이 말로 표현되니까. 어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가치관이다. 사물을 보는 눈. 좀 속 깊은 대화로 들어가 보면 가치관이 그 사람의 품격을 드러낸다. 이 책은 소설가 김중혁의 음악 성향이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귀에 쏙쏙 들어온다.     


서양 고전 음악만이 진정한 음악이라고 생각하며 한껏 목에 힘주고 다니는 사람, 역시 팝이 최고라며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열심히 흥얼거리는 사람, 젊은 시절의 향수만을 되새겨서 가족들을 질리게 하는 사람. 나는 어떤 부류일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셋을 두루 섭렵했다. 이 책을 보고는? 이런 재미있는 노래가 있다는 걸 모르고. 혼자 중얼거렸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바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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