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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남 서촌 그 책방 Oct 26. 2016

그림 여행을 권함

<책소개> 그림여행을 권함, 김한민저, 민음사. 여행을 계획하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인가? 마치고 돌아와서 하는 일은? 그 여행을 통해 남는 것은? 첫 질문의 답은 대부분 여행 상품 예약이고, 그럼 두세 번째 질문의 답은? 만약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사진’이라면 한번 읽어 볼만한 책이다. 사진이 쓸모없다는 것이 아니라 사진보다 인간적인 기록을 남기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으니까. 여행지에서 그림을 그려보라고.   

   

그림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실행하고 있을 테고, 나머지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 ‘나 그림 못 그리는데.’ 바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위한 책이다. 저자는 그림을 한 번도 그려본 적 없는 저자의 어머니를 내세워 얼마나 쉬운 일인지 보여준다. 그림을 그리라는 것이지, 작품을 만들라는 것은 아니니까. 일단 자신의 아바타를 하나 만들고 그걸 활용해서 시도해 보라고.     


방법은 목차의 소제목만 보아도 답이 나온다. 시작은 주저하다가, 부랴부랴, 한숨 돌리고, 어슬렁거리며, 밍기적 밍기적, 바보처럼, 흥분했다가. 이게 전반부의 소제목이다. 보이는가? 그림 여행을 처음 시도하는 사람의 심리가. 나는 책을 선정할 때 소제목을 좀 눈여겨보는 편인데, 이걸 잘 뽑는 저자의 글은 대체로 좋다. 언어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니 제목을 함축적으로 짓는 것이고, 자연히 글 읽는 재미까지 선사하더라는 말.  

 

    

  왜 여행을 가게 되었는지, 지금 기분은 어떤지, 뭐가 보고 싶은지, 뭘 하고 싶은지, 준비물은 무엇인지 기록해보자. 작은 것이라도 좋고, 못 그려도 좋다. 나만 알아보면 그뿐이다. 오로지 나를 위해 그리는 거니까.
 

그냥 시도해 보는 것이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이. 대개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해서 사진을 찍으면서 시작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방법을 쓰면 기간이 더 길어진다. 기계에 담을 수 없었던 것을 내 손으로 남기는 일이니. 여행을 떠나기 전의 내 마음 같은 걸 그려본다면? ‘마음을 어찌 그리라고? 그건 더 어려워요.’ 그럴 때는 단순한 그림과 더불어 짧게 메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저자는 실제 자신의 준비물과 여행 경비 예산을 그림으로 올려 두었다. 준비물도 가방에 넣을 것과 몸에 지니고 다닐 것을 구분하여 그렸고, 돈을 액수별로 몇 장씩 환전하였는지도 명시해 두었다. 종이 한 장에 아주 일목요연하게. 그렇게 작성한 수첩을 가지고 여행지에 도착하면 좀 더 체계적인 관광이 가능하지 않을까. 나갈 때마다 뭘 챙길지 허둥대지 않고. 때로 몸이 피곤해져서 여기까지 와서 왜 이 고생이지? 하는 마음이 들 때 그 페이지를 펼쳐 보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소개한 관찰하기 좋은 곳은 정말 유용한 팁이 된다. 대부분 지겨워하면서 시간을 죽이는 곳이지 않는가? 공항, 환승장이야말로 1순위. 이때 그림을 그린다면 여행이 더 풍성해진다. 이걸 실험해 보았는데, 은근히 재미있었다. 나는 주로 글로 기록을 남기는 편인데, 지겨움을 견디는 방법도 제각각이었다. 저자가 말한 노인 관찰은 특히 신기했다. 젊은이들은 대개 기계를 가지고 놀지만 노인들은 몸으로 보여준다. 무심한 듯 관찰하는 맛이라니. 나중에 그걸 읽어보면 그때의 상황이 확실히 떠오르고 나도 모르게 키득거리게 된다. 관음증 환자 같은 일면은 있지만.     



나도 그곳들에 갔지만 대부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그림도 남기지 않았다. 내 그림들에는 그런 명승지 그림이 거의 그려져 있지 않다. 아무 느낌 없음. 그것들이 그냥 거기 있더라. 끝.     


저자의 이런 태도도 마음에 든다. 우리는 너무 명승지에 목을 매단다. 사실 유명한 곳에 가봐야 관광객만 득실득실, 이미 사진으로 많이 봐와서 새로운 것도 없는데. 나도 그곳에 가봤다는 인증숏, 요새는 사실 별 값어치도 없다. 모두 가니까.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그림이 제일 심했었다. 왜 명작이라는 것인지, 전공자도 아닌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1시간이나 줄 서서 기다리다가 겨우 5초간 알현하는 정도. 그 시간에 책에서 보지 못한 그림을 보는 것인데.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저자가 선택한 여행지가 중남미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지리적으로도 너무 멀어서 가기 어려운 곳의 사람들 이야기니, 더 흥미로울 수밖에.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서로 그려주기, 호텔방 스케치, 비를 표현하는 법 등, 책 곳곳에 숨은 재미있는 그림은 샐 수 없이 많다. 펜으로 주로 그리다가 물감도 쓰고, 때로 파스텔도 등장하고, 저자의 글씨도 얼마나 특이한지. 모음이나 자음에도 느낌을 담을 수 있다니.  

   

책을 선정하고 토론할 때마다 칭찬을 많이 들었다. 읽기 쉽고, 재미있고, 실용적인 팁이 많은 데다가,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이라고. 그래서 누구에게나 부담 없이 선물하기 좋더라고. 몇몇 수강생은 그림 여행을 실제로 시도해 보았다는 평까지. 하기 전에 긴가민가 하지만 해 보면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고. 여행법에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되는 책이라고. 저자 김한민의 만화책 <카페 림보>도 추천한다. 지난번에 소개한 <세상 물정의 사회학>의 만화 버전이라고 할까. 좀 심오하게, 우리 안의 속물근성을 일깨워준다. 정신이 확 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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