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운명론자는 아니다. 이만큼 살아보고 나서 내린 결론은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다는 사실뿐이니. 지나친 비관도 낙관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가끔 어렴풋한 기류 같은 건 느껴질 때가 있으니, 이번이 그런 경우일까? 처음 좋은 집을 소개했던 부동산에서 근 4개월 만에 아직도 책방 자리를 찾고 있느냐는 전화가 왔다. 거의 마음을 접었다고 하려다가 엉겁결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수리 중인 한옥이 있는데, 책방으로 적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더란다. 순간의 선택이 얼마만 한 폭풍을 몰고 올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다시 낚시 밥을 물것인가? 다른 일로 약속은 잡혀있었고, 여유가 되면 잠시 서촌에 들러볼까? 그날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끝없이 갈등하고 있었으니. 친구들이 오늘 무슨 일이 있냐고 의아해하기도 했다. 시종일관 입을 닫고 있는 모습이 불편했나 보다. 생각에 몰두해서 머릿속이 복잡하면 대화도 조언도 시들해지는 원리인지. 지난번 요란하게 떠벌렸다가 그만둔 전적도 있지 않은가? 이번에는 신중을 기하자는 심리는 차치하더라도, ‘결정 장애자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만큼 하루 종일 부침이 심했다. 평소에는 비교적 거침없이 단안을 내리는 셈인데. 이런 내가 낯설기도 하다.
나도 모르게 경복궁역에 내렸고, 체부동 좁은 골목 안의 그 집을 보게 되었다. 수리 중이어서 어수선했지만, 볕 바른 창이며, 하얀 벽, 삐뚤빼뚤한 나무 기둥이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켰다. 왜 이런 느낌이 들지? 다른 곳들에 비하면 공간도 좁고, 세련된 맛은 없다. 그러나 많이 푸근하다. 좀 식상한 비유지만 고향집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할까. 고슬고슬하게 마른 면 이불이 맨몸에 닿을 때 느껴지는 감촉 같은. 집을 고르는데 이리 감성적이거나 주관적인 잣대를 들이 되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한동안 머물러야 할 공간이니 몸이 거부하지 않아야 된다는 정도.
그렇다고 신령스러운 ‘촉’ 만 믿고 덥석 계약하기엔 감당해야 할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텐데. 누군가의 조언이 절실한 순간. 때마침 남동생의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고, 회신을 보냈다. 강남 사무실에 있어야 할 시간에 광화문 근처에 왔다는 게 아닌가? 말미에 내가 괜찮아 보이는 한옥을 발견했다고 하자 당장 와보겠다는 것이다. 약속도 안 했는데, 30분도 안돼서 만나고, 주마간산으로 공간을 둘러본 동생이 계약하라는 지령을 내렸고, 나는 그걸 덥석 물었으니. 운명론자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좀 무리아닐까.
더 놀라운 일은 제일 처음 보고 놓쳐서 아쉬워했던 집과 같은 골목이고, 길을 사이에 두고 비스듬히 마주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집도 책방을 하고 있으니. 이런 인연이 또 있을까? 다음 날 계약 전에 잠시 망설이기는 했다. 같은 업종이 마주 보고 있으니 그러지 않아도 열악한 시장인데 괜찮을까? 미리 말은 해야 할 것 같아서 기웃거렸지만, 12시가 되도록 문을 열지 않는다. 다만 두 책방의 내용이나 대상이 완전히 달라서 경쟁 관계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서지만. 어찌 아는가? 체부동 골목이 전문 책방 거리로 특화될지.
야심 차게 추진했던 책방 계획을 접고 지낸 2개월은 많이 우울했다. 홀가분하다는 생각은 딱 일주일 정도. 아들과 딸의 연이은 이사를 돕느라 한동안 분주하게 보냈는데. 문득 찾아오는 소외감이라니. 빈 둥지 증후군이 이런 건가? 이제 뭘 하며 지내지? 아무 일도 벌이지 않으면 편안하기야 하겠지만, 무료함은 어찌 견디지? 독서모임을 괜히 관둔 건 아닐까? 그렇다고 다시 번복할 수도 없는데. 아니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마음이 이미 떠난 일이니 면목이 없다.
가끔 예전 수강생의 독촉을 받기는 했다. 언제쯤 다시 시작하느냐고? 독서모임을 하지 않으니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토론에 참여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으니 대충 읽게 되고. 궁금한 것이 있어도 물어볼 때도 없고.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지 확신도 서지 않는다고. 자연히 집중도 잘 안되고 내용을 금방 잊어버리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꼭 덧붙이는 말이,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넘겨보고 자신이 이리 참신한 생각도 했는지 스스로 놀랐다고. 공간 준비가 생각보다 여의치 않다고 변명하면, 자신들은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책과 사람만 있으면 어디든 무슨 상관이냐고.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나도 책임감이 없어져서인지 예전만큼 치열하게 독서에 집중하지 못한다. 한 달에 한 권 이상의 추천 독서를 선정해야 하니, 의무감으로 똘똘 뭉쳐 비슷한 주제의 책을 몇 권씩 읽어냈는데. 추천도서를 발표하는 시점이 다가오면 밤을 새워서라도 단안을 내려야 했다. 벼락치기 수법이 여지없이 재현되는 것이다. 때로는 이 나이에 무슨 생고생이냐는 생각이 들다가도. 학교 때 슬렁슬렁 놀고 다닌 죄 값을 이제야 받는 것인가? 반성한다. 모든 일에는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다시 일을 하고 싶다는 맹렬한 욕구가 생긴 계기가 있으니. 5월 말경 경희여중의 독서토론 때문이다. 이 강의도 독서모임이 맺어준 인연. 작년 정독도서관에서 한 한강의 <채식주의자> 공개강좌 덕분이다. 우연히 도서관에 왔다, 우리 강좌 안내문을 보고 참여한 것이 계기. 수강생들의 열띤 토론을 보고 참 좋았다는 평을 남기며,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는데. 그분이 경희여중 사서였던 것이다. 그리고 올봄, 여중생들의 토론회를 한번 맡아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그간 성인 위주의 토론만 해서 좀 망설이다 경험 삼아 그러마고 했는데.
도서 선정이 만만치 않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천방지축의 여자 중학생들이라니. 그들의 감성을 어찌 공략해야 할지? 교사 시절의 목록은 너무 낡아서 아무래도 재미없을 것 같고. 여기저기서 내려받은 추천도서 목록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판에 박은 고전이거나, 비현실적이면 환상을 주기라도 하든지, 거기다 교훈을 강요하기까지. 부모님 잔소리 같은 책은 아니어야 하는데. 청소년 권장 도서는 아주 제외하기로 했다. 현란한 비주얼의 세상을 살아가는 소녀들이 그나마 읽을 만한 책 어디 없을까? 사진이나 그림도 좀 있고. 그럴듯한 것을 겨우 고르고 보면 성인 대상의 책이라 선정적인 부분이 꼭 있다. 요즘 애들은 더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긴 하지만, 학교 수업이지 않는가.
엄마와 17살 딸이 세계를 일주하는 <엄마 떠나길 잘했어>라는 여행기를 골랐다. 서문부터 흥미진진. ‘왜 공부를 하는지? 내 꿈이 무언지 모르겠다.’는 딸의 푸념을 듣고 엄마가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다. 1년간 휴학하고 아무 계획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아주 잠깐 나도 이런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바로 정신을 차려 딸에게 이러자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책은 사사건건 부딪히는 모녀의 투쟁사를 쓴 글이다. 세상의 모든 가족은 끝없이 싸우는 게 정상. 하나의 사건을 각자의 입장에서 기술하여, 같은 것을 얼마나 달리 생각하는지. 그 재미가 쏠쏠하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누구보다 끈끈한 애정으로 돌변하는 모녀애도 눈물겹고.
신청 인원이 30여 명, 토론하기는 좀 과하다. 그나저나 책은 읽었을까? 재미있게 끝까지? 반쯤은 읽은 듯하고 나머지는 바빠서 중간에 멈추었단다. 뚜렷한 스토리가 없으니, 완독은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무작정 딸을 부추기는 엄마를 어찌 생각할까? 만약 엄마가 이런 여행을 제안하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 중학생들에게는 조금 무리인 질문이다. 여행지를 선택하느라 시끄러울 뿐, 가서 할 일은 별 계획이 없다. 성인에게 물어도 거의 비슷하겠지만. 모녀의 잦은 싸움을 보는 시각은? 엄마가 여행을 제안한다면 거절하고 혼자 있고 싶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사춘기, 독립의 욕구가 거세지는 시기 아닌가? 토론은 다소 무리였지만 좋았던 사진 얘기에는 열을 올린다. 고양이가 단연 인기.
토론 전에는 모녀가 세계일주 씩이나?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았을까 걱정스럽기도 했고. 요즘은 한 부모 가정도 많은데, 그런 학생이 상처받지는 않을까? 단어 선택도 조심스러웠다. 서울 시내 돌아보기나 국내여행도 얼마든지 신선한 볼거리가 많다며 끝을 맺었다. 학생들과의 토론, 새로운 시도여서 많이 걱정했지만, 모든 여행은 마찬가지. 확실히 어려운 문제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나 보다. 내가 돌아가야 할 자리도 토론 모임이라는 생각이 무럭무럭. 아이들에게 말하며 내가 확인했다. 아직까지는 거센 바람의 전조인지도 모른 채. 오랜만에 맛보는 뿌듯한 피로,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환청으로 들으며 그날 달게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