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그 책방'

개업합니다.

드디어 문을 열었다. 그간 있었던 무수한 사연, 다 쓸 수 있을까? 정말 새로운 세상 경험이었으니. 여태 나는 다른 행성에서 산 것인지도 모른다. 분명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데, 이리 살벌한 문법이 적용되는지 어찌 알겠는가. 그 모든 징검다리를 건너는 데는 입장료 징수원이 굳건히 지키고 있었으니. 처음에는 하나하나 기록하다가, 스트레스가 한계치를 넘어서자, 드디어 계산을 포기하게 되었다. 마음은 조금 홀가분해졌는데. 뒷감당은 누가 할지? 아직 머리는 복잡하다. 다만,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 이 과정을 견뎌야 한다고 최면을 거는 수밖에. 날씨는 또 왜 이리 찌는지.

먼저 ‘디귿 책방’으로 글을 시작하였는데, 웬 개명인가? 싶은 분들을 위해. ‘디귿’은 우선 전면에서 본 책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독서와 담소도 디귿으로 시작하고, 고향이 경남 진주의 작은 마을 단목이라 ‘디귿 책방’으로 명명한 것. 신선하다는 반응이 많아 기분 좋았는데. 더러 발음이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다. 서촌의 한옥을 계약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같은 상호를 가진 게스트하우스가 지척에 있는 게 아닌가? 같은 이름을 써도 무방하다고 그분은 허락했지만. 혼란을 야기할 것 같은 찜찜함이 떠나질 않았다.



그러다 서점 만들기에 일가견이 있는 분을 소개받았는데, ‘서촌 책방’을 추천하셨다. 처음에는 지명이라 너무 일반적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으니. ‘디귿 책방’이라는 상호를 유난히 좋아했던 아이들에게 의논했더니, 엄마의 특성이 사라져서 싫다는 반응. 문득 입버릇처럼 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방’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책방’이나 ‘그 책방’으로 할까? 아니면 둘 다 써서 ‘서촌 그 책방’으로 할까? 모두들 그나마 엄마의 똘끼가 조금 반영된 것 같단다. 그렇게 상호명은 우연한 조합으로 탄생했다.

책방의 가장 큰 틀인 책장은 남동생과 남편이 이틀간 만든 것이다. 개업 선물로 책장을 만들어주겠다는 말을 들을 때만 하더라도 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옆에서 목수 보조로 일하며 느낀 점은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이사할 때 본 조립식 가구처럼 쉽게 만들어지는 줄 알았으니. 재단한 원목을 끼워 맞추면 되겠거니 했다. 몇 번의 기계 사포질과 색 입히기, 방수처리까지만 하루가 꼬박 걸리고. 이튿날은 틀어지지 않게 각을 잡으며 정교한 끼워 맞추기와 뒤판 붙이기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가구제작에 취미가 있는 두 사람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재미있어하는데, 겨우 못이나 건네는 나는 괜한 짓을 시킨 것 같아 미안하기만 했다. 완성하고 바라본 뿌듯한 느낌이라니. 색이며 결에 손맛이 살아있어 정말 예쁘고 듬직하다.


모든 일에는 후유증이 있는 것이니. 책장을 핸드메이드로 제작하고 보니, 인터넷으로 배달된 가구들을 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먼저 의자가 눈 밖에 나서 겨우 반품 처리를 하였다. 다음 타자는 책상. 다른 카페에 가보니 일반적으로 쓰는 것인데, 책장이 무게감이 있으니 상대적으로 너무 번쩍거려서 가벼워 보이는 게 아닌가? 의자를 사러 을지로 상가에 가보니 철제 다리만 주문할 수도 있다. 마침 지하실에 방치된 긴 목재가 있어, 그걸 상판으로 얻어 책상 대용으로 쓰기로 하고. 창가에 놓을 낮은 탁자도 예전 집에서 쓰던 남편의 수제품으로 교체했다.


간판집도 꽤나 기웃거렸는데. 결국 손 글씨로 했으니. 역시 끼리끼리 모여야 제 맛이 살고 조화도 이루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내 눈에는 반듯하게 기계적으로 잘린 글씨보다는 삐뚤빼뚤 오려진 것이 좋아 보이는 게 아닌가? 간판은 남편이 나무 판에 조각하고, 창가의 붉은 글씨 ‘책’은 딸이 종이를 오려 만든 작품이다. 그리고 항상 하는 말이지만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고. 명함 디자인은 딸의 친구 작품이다. 불빛 아래 펼쳐진 책으로‘그’ 자를 형상화했는데. 이걸 로고로 써서 팸플릿도 만들고 에코백도 제작하게 되었으니. 볼수록 마음에 든다. 저작권료를 어찌 지불해야 할지 고민에 빠질 정도로.


이제 본격적으로 내용을 채워야 하는 시기, 책 주문이 생각보다 복잡하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아침에 주문하면 오후에 총알처럼 당도했으니. 그 편리함에 물든 내가 감당하기 힘든 수순이었다. 현금을 들고도 이런저런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이 버거워서, 몇 번이나 독촉 전화를 했는지 모른다. 명색은 서점인데 책이 없으니, 임시방편으로 내 책들을 들고 와서 꽂아 두었다. 포스트잇이 삐죽삐죽 나오고 감상을 연필로 휘갈긴 책이라 좀 망설여졌지만 어찌하랴. 그런데 의외의 반응이 있었으니. 내 글들을 보고 오히려 흥미로워하면서 책을 팔지는 않느냐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 헌책방 이냐고도 물었으니.


예전에 독서모임을 하면서 선물용으로 사 두었던 책들을 진열했더니 바로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물론 얼마나 재미있는 책인지 열심히 설명하는 내가 가여웠는지 모르지만. 젊은 커플인 듯한 데 어찌나 고맙고 흥분되는지. 1호 손님으로 명명하고 고객 명단 노트에 이름과 번호를 올리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실 인터넷 서점에서 사서 정가로 팔았으니 뭐 남는 것은 거의 없다. 공을 토스하는 정도. 그래도 의기양양해서 식구들에게 자랑을 해댔다. 참 신기하게도 그날 밤에 연이어 3권이 더 팔렸으니. 내가 가진 새 책이 모두 5권이었는데 한권만 더 팔렸으면, ‘전체 매진’ 기록을 세울 뻔했다.

아침저녁으로 닦달한 결과 화요일 늦게 주문한 책이 일부 배달되었다. 설명을 듣고는 책 주문을 의뢰하는 사람도 있으니. 어찌나 애가 타든 지. 너무 반가워서 이제 파는 일은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자신감이 승천한다. 그득하게 책을 쌓고 흐뭇한 눈으로 서가를 쓰다듬었다.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바심으로 바뀌는 게 아닌가? 이걸 어찌 다 팔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책 가뭄에 시달리다 보니 한꺼번에 너무 많이 주문한 것이 틀림없다. 조울증인가? 앞으로 내내 마주할 무수한 감정의 기복들, 그 전초전 일 뿐이니. 이 복잡한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이번 주말 드디어 개업식을 한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데는 친지들의 아부가 특효약이 아닐까 싶어서. 모두 말렸지만, 시작했노라 선언하고, 응원해 달라고. 떡을 돌리고, 잔을 부딪치고, 웃고 떠들면서, 잠시라도 걱정들을 잊으려고. 무엇보다 그간 열심히 도와준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하고 싶다. 여기까지 온 원동력은 전적으로 그들의 성원 덕분이라고. 7월 8일 토요일, 종로구 체부동 15-1 번지 ‘서촌 그 책방’으로 오시길. 오전 11시부터 저녁 8시까지 문을 열어두고, 6시 반경 간단한 개업식을 하려 한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그날의 드레스 코드는 쓴소리가 아니라 ‘달콤한 말’이라는 것. 길일은 사람의 입이 만든다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으니. 후후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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