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식 후기

보통 ‘개업식은 성황리에 마쳤다.’라고 쓴다. 그러나 사실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생애 처음 해보는 일이었으니까.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기는 했다. 예기치 못한 축하객도 많아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떡이나 과일 같은 음식도 풍족해서 어려움은 없었는데. 가장 중요한 내 정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에 없다. 하루를 보내고 나서야 내내 굶었다는 것과 화장실 출입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걸 알았으니. 얼마나 긴장하면 이런 초인적 능력이 나오는지. 생애 이런 날이 다시 있을지 모르겠다.


굳게 결심하고 실행에 몰입했으면 오히려 중간에 꺾이지 않았을까? 입학시험이나 고시처럼. 의지에 불타면 실패할 두려움도 그만큼 커질 테니. 나는 계속 책방을 열까 말까를 망설이느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아서 개업에 이른 건지도 모르겠다. 개업식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그날의 초능력은 일종의 신비체험 같은 건 아닐까? 일생에 몇 번 있다는 비과학적인 기운들의 조합 말이다.



조금 과한 축하의 말과 무사히 잘 치러야 한다는 부담감이 빗어낸.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말은 오죽 많은가? 육중한 고래도 칭찬 앞에서는 재롱을 부린다는 표현 같은. 딴엔 잽싸게 손님 접대를 한답시고 몰입한 탓이리라. 떡과 수박 몇 점을 먹은 것뿐인데, 정말 종일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으니. 저녁 무렵 심한 요의를 느끼면서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비로소 내 몸의 상태가 감지되는.

공사를 진행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소음 유발자가 된다. 책장을 만드는 이틀간 전기 드릴과 전동 연마기를 종일 틀어댔으니. 내가 옆집에 살았다면? 격하게 구시렁대거나 아예 다른 곳으로 피신을 갔거나, 참다못해 따지러 갔을지도 모른다. 작년 살인적인 더위 때 옆집에서 지붕 공사를 벌였는데, 얼마나 짜증을 부렸든지. 에어컨 구입을 심각하게 고민한 이유가 소음을 피해 창문을 닫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사 떡은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용한 마을에 부르르 앙금을 떠오르게 한 가해자였으니. 팥떡을 넉넉히 준비하고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거의 빈집인 게 아닌가. 내가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한 그때도 듣는 사람이 없었나? 아니면 아예 상종하기도 싫어서 문을 열지 않는 것일까? 떡을 들고 몇 번이나 오간 내 발자국 소리만은 들었길 바란다.



개업식 날, 더위와 비가 오락가락하는데, 만감이 교차한다. 나는 누군가의 개업식에 진심 어린 마음으로 가본 적이 있던가? 언제나 일이 터지고 나서야 반성 모드로 돌입하는 병은 평생 고치니 못하고. 급격히 자신감이 떨어진다. 책방이라는 게 크게 볼거리가 있는 공간도 아니고, 결혼식처럼 품앗이가 되는 일도 아니니. 거기다 이런 악천후에는 나들이 자체가 꺼려지는데, 거리까지 만만치 않다면 발걸음이 쉬울 리가 없다. 마음을 비우고 잠시 숨을 고르며 떡 배달을 다녀왔더니. 반가운 얼굴들이 속속 도착해 있다. 고마운 마음을 어찌 다 전할까?

일산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복순샘, 오랜만에 얼굴을 대하니 더 반갑다. 언제나 씩씩한 춘화 샘은 예쁜 두 딸을 대동하고 왔다.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정말 바쁘게 보낼 텐데, 독서모임도 열심히 하더니, 역시 다르다. 멀리 캐나다에서 귀국한 우리의 은정 씨, 개업 축하의 마음이 귀여운 화분과 빨간 체리 바구니에 가득 담겨있다. 박물관팀을 대표해 참석한 혜리 씨는 건축가 남편과 더불어 방문해서는, 한옥 공간을 유심히 뜯어보더니, 전문가의 견해를 피력한다. ‘멋진 공간이란 이런 곳이라고’. 에어컨과 멋진 탁자를 선물해 주셔서 책방을 만드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조교수님 부부, 맛난 간식까지 어쩐지 좀 과분하다.


이어서 가족 친지의 방문이 줄을 이어 일일이 기록하기 힘들 정도. 한 무리 딸의 친구들, 아들의 친구, 며느리의 친구에 내 친지와 이웃들까지. 6시 반 간단한 개업식을 열었다. 남편이 사회를 보고. 돌아가며 한 마디씩 축하의 말을 건넸는데. 김용태 샘과 중학교 동창 희숙의 축사가 마음에 남는다. 이어서 이현숙 샘께 건배사를 제안했는데, 그런 것 못한다고 빼시더니 근사하게 주도한다. 바쁜 윤 교수님 내외와 시누이 내외의 참석도 많이 고맙다. 이 모든 순간을 혜영 씨가 예쁜 사진으로 담아 주었다.


그리고 그날 누구보다 수고한 이는 남편이다. 아니 어쩌면 이 일은 시작부터 남편의 응원 덕분에 가능했으니. 나이 들어 무슨 일을 벌이느냐고 할 법도 한데, 원하는 일이니 해보라는 말로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일등 공신인 남동생은 행사가 겹쳐 참석하지 못했다. 창원에서 올라온 아들 내외와 딸의 도움은 개업식의 윤활유였으니. 가족 친지 모두 진심으로 고맙다. 세상에 혼자 하는 일은 결코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하루였으니. 이 묵직한 감상을 쉬이 내려놓지 못할 것이다. 그날 밤 지친 몸을 이끌고 잠자리에 누워 잠시 스친 예감이 있었으니. 어쩌면 개업식은 내 생이 탈바꿈하는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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