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에 진심을 올리는 법?

독서모임 공지를 올릴 때만 하더라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6 강좌를 만들기는 했지만 반만 차도 좋겠다고 생각했으니. 불특정 다수를 향해서 나를 인정해 달라고 외치기는 언제나 낯선 일이고. 자연히 누가 관심이나 가질까라는 의문이 들었으니. 여태 다른 곳에서 모임을 했던 멤버들을 헤아려보았지만, 이미 일 년이 지난 일이지 않는가. <서촌 그 책방> 열리기만 기다릴 것이라는 착각은 접은 지 오래였으니. 그래도 옛정이 있으니 한 팀 정도는 어찌 엮을 수 있으려나?



광복절 무렵 처음 공고를 올렸는데, 한동안 기척이 없었다. 빛의 속도로 소문이 난다는 sns는 조용하고. 서점을 찾는 사람도 드물었으니. 책방의 승패는 독서모임 결성 상황이 좌우한다는 생각이었던 나는 낭패감에 사로잡혔다. 더구나 휴가철이라 서울이 텅 빈 것인지, 문의는 고사하고, 하루에 한 권 팔기도 어려웠다. 목이 시큰하게 설명을 해도 책 구입은 어찌나 망설이는지. 책이 미끼가 되어 매력을 발산해야 모임까지 이를 텐데. 거대한 벽 앞에 서있는 기분이 종종 들었으니. 또다시 시작되는 레퍼토리. 내가 이 일을 왜 시작했던고? 그나마 다행인 점은 말 인심은 풍성하고 야무졌다는 것. 책방이 정말 이쁘다는 덕담에, 이런 책방 운영이 꿈이라는 고백, 이 골목에서 오래 살아남기를 바란다는 주문까지.


그리고 절대 빠지지 않는 호기심 하나가 덤으로 붙었으니. 책 팔아서 임대료가 나오느냐는 질문이었다. 대놓고 월세가 얼마냐고 묻는 사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하고 있느냐? 집이 부자인가 보다는 추측까지. 처음에는 장황하게 처지를 설명하다가. 어느 순간 너무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건 좀 사생활 침해가 아닌가에 이르렀으니. 좁은 골목, 10평도 안 되는 책방 하나 차리고, 재산공개까지 해야 하나? 그 와중에도 공개할 재산이라도 있으면 덜 억울하겠다는 속물근성이 불끈불끈 치솟았으니. 누구 말처럼 돈이 없지 성질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목구멍을 간지럽히는 한마디 말. '운영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책이나 사가시면 안 될까요?'


드문드문 문의 전화가 오기 시작한 것은 휴가 기간이 끝나갈 즈음이었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X1반 아직 신청 가능한가요? ' 였으니. 어찌 대답해야 할까? 아직 아무도 신청자가 없다고 솔직히 말할까. 딱 한 두 자리 남았다고 허풍을 떨어야 할까? 갈등의 나날이었으니. 그나마 조용한 곳에서 문의 전화를 받으면 평정심을 유지하겠는데, 시끄러운 차 안에서 모르는 번호가 울리면 허둥대기 일쑤였다. 잘못 대응해서 마음을 접으면 어쩌나? 책방 주인 노릇은 정말 미답의 세계였으니. 지적이면서도 서비스 정신이 있어야 하고, 계산은 영악해야 살아남을 게 아닌가?


첫 신청자는 동네 주민이었다. 개업식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했다가, 김한민 저자와의 대화에도 모습을 보이더니. 모임 신청을 고민 중이라고 밝혀왔다. 8월 17일 첫 입금이 확인되었다. 기쁨 그 자체. 내 진심을 누군가 헤아려준다는 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리고 조금씩 신청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니. 물꼬를 터 준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을 어찌 전해야 할까. 예상외로 현재 여섯 반이 거의 결성되었다. 의리로 뭉친 고수들이 두 반, 새로 결성된 세 반. 그리고 하던 모임을 단체로 옮겨와 신청한 반이 더해졌다.


서촌에는 생각보다 직장인 신청 문의가 많았는데. 저녁 반을 하나 만들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으니. 주말 반을 권유하면, 평일에 출근하던 곳으로 주말에 다시 오고 싶지는 않다고 했으니. 그 마음은 충분히 헤아려져 목요일 밤 반 공고를 냈다. 없다고 할 때는 많이 아쉬워하더니 막상 모집해보니 신청은 거의 전무. 하루 종일 근무하고 평일 밤에 독서모임까지? 아무리 야무지게 결심해도, 실행까지는 시간과 열정을 요구하는 일인 것이다. 사실은 나도 밤 강좌는 자신이 없었으니.


무슨 일인가를 시작하려면 무수한 선택의 강을 건너야 하는 것이니. 이번에도 예외가 없었다. 틀을 만들고, 디테일을 신경 쓰느라 머리에 쥐가 날 뻔했으니. 누군가 정해서 내게 명령을 내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했다. 어느 죄수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감옥만큼 편한 곳이 없다는 말을 했는데, 그 심정이 이해되기도 했을 정도. 거기다 딸랑 나 혼자이니, 모든 결정이 내 몫인 것이다. 입바른 비평이 내 특기인데, 이젠 상황이 역전되었으니. 우왕좌왕 하영남으로 이름을 바꿔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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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명도 고민이 많았는데, 주일 명을 붙이기는 너무 평범해서 싫고. 고민 끝에 입문반, 주말반, 고수반으로 명명했다. 그중 고수반에 대한 질문과 항의가 종종 발생. 고수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사실은 농담반 진담 반의 작명이었는데. 너무 진지하게 물어와 당황스럽기도 했으니. 독서의 깊이를 내가 무슨 근거로 재겠는가? 꽤 오랫동안 독서모임을 한 사람들이니 이제 고수로 대우해 주고 싶은 마음과 조금만 더 하면 곧 이를 수 있다는 심정을 담았을 뿐인데. 어떤 고수는 부담스러워서 입문반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다 하고, 어떤 입문자는 자신이 고수반에 들 자격이 되는지 물어오기도 했으니. 농담 한번 했다가 식겁했다 할까.


무엇보다 뿌듯했던 경우는 독서모임 경험자들이 친구를 대동하고 와서 등록하는 것이었다. 좋다고 하니 믿고 신청하겠다는 그들의 우정이 부러웠으니. 부담과 책임감으로 살짝 어깨가 무거워지면서도 기분은 으쓱했다. 그리고 우연히 책방에 왔다가 모집 공고를 보고 현장에서 신청한 사람들은 또 얼마나 이쁜지. 책방을 열고부터 간헐적인 결정 장애자로 살다 보니. 그들의 신속한 대응이 신기하기도 했다. 가장 놀라운 사람들은 따로 있었으니. sns로 신뢰를 개척하는 사람들이라고 할까? 한 번 와보지도 않고 독서모임을 하겠다니, 그만큼 절실했다는 증거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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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가을 특별한 결심을 한 회원들의 과분한 애정을 받았다. 이제 책상을 펴서 손님맞이를 해야 할 시간. 서촌 그 책방에서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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