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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남 서촌 그 책방 Jul 29. 2017

구조적 모순을 안고 살다.

-김한민 저자와의 대화를 마치고

세상에는 꼭 하지 않아도 되지만, 하면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게 있다. 어려운 이웃을 돕거나, 내가 버리지 않았지만 쓰레기를 줍거나, 아무도 보는 사람 없는데 신호등을 지키는 일 따위가  여기에 속하지 않을까? 딱히 누가 나무라지는 않지만, 하는 사람이 은근히 기분 좋아지는 일인데. 이런 사람을 주로 착하다고 분류한다. 요즘 세상이 하도 험악해져서 ‘착함’을 ‘좀 모자람’으로 인식하는 게 탈이긴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이다.    

  

착하기 살기로 작정하고 보면, 아주 사소한 것부터, 우주의 일까지 그 범위가 넓고도 깊다. 실천의 방법은 사실 매우 복합적이기도 한데. 우선 제일 손쉽고도 간단한 것은 마음먹기이다, 다음 수순은 실천의 문제. 이 실천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까? 생활 속에서 소소하게 실천하기 쉬운 것도 있지만, 일생을 내놓아야 하는 일까지 광범위하니까. 그래서인지 착하게 살기는 이런저런 핑계를 뒤집어쓰고 구석에 방치해 두기 일쑤이다. 그러다 가끔 잠 안 오는 밤에 꺼내 곰곰 생각해 보는 정도.   

 

 <김한민 저자와의 대화>는 밤중에 마주한 민낯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할까? 흔히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라고 말한다. 또한 혹자는 자신을 제일 모르고 있는 사람이 당사자라고도 한다. 둘 다 맞기도 틀리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둘 다 진실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착하게 살기에 나를 대입해보면 그게 가장 잘 드러나는데, 스스로를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뭐라 대답할까? 아마 두 개의 마음이 갈등하리라. 비교적 착하다에 손을 들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양심의 가책을 스스로 느낄 터이니. 바로 그 대치하는 마음을 솔직하게 시인하는 시간 같았다.     


미리 말했듯이 큰 기대 없이 시작한 일이었다. 만약 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구태여 저자를 찾아다니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독서는 하지만 게으른 독자인 셈. 좀 솔직히 말하면 그간 내가 만난 저자들은 책으로 보았을 때가 더 좋았으니. 약간의 신비감을 안고 살고 싶었다 할까? 선입견은 깨라고 있는 것이겠거니 중얼거리며. 그나마 행사를 준비하면서 주요 장르인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의 세계에 어렴풋이 접근하게 된 것이 수확이라고 자평했다. 만화의 일종일 것이라는 안일한 분류를 벗어나게 되었으니.     


먼저 문자가 주는 상상의 세계를 좀 더 구체화하는 기능이 그래픽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접근하여 그림을 보게 되니, 표정 안에 담긴 생각까지 유추하게 하는 매력이 있는 게 아닌가? 또한 소설에서라면 대놓고 할 수 없는 말들을 그림 옆에 주저리주저리 붙여두어, 그것만 찾아 읽어도 속이 다 시원하다. <비수기의 전문가들>은 굳이 분류하자면 가벼운 주제는 아닌데, 표정이 깃든 그래픽으로 보니 딱딱하지 않아 덜 심각하게 느껴졌다 할까. 그러면서도 잔상은 꽤 구체적이면서 은근히 오래 지속되는 효과까지.     


저자와의 대화가 일대일 인터뷰와는 다르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조바심 때문이었다. 지인의 연락망을 통해 파악된 인원은 대략 10명 내외. 이들도 모두 참가할지 미지수인데. 기본적으로 SNS 시스템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더 오리무중이다. 그래도 만약의 사태는 대비해야 할 것 같아서, 전날 급하게 간이의자를 여럿 구입하였다. 저자가 영상물을 준비했다는데 소규모라면 PC로 보려 했는데. 아무래도 사이즈를 키워야 할 것 같다. 안 쓰는 집 TV를 택시에 싣고 낑낑대며 출근했다. 물도 넉넉히 사서 냉장고에 빵빵하게 쟁여두고. 그런데 날씨는 왜 이리 후텁지근한 건지.    

 

기적처럼 모인 사람들 같다 할까? 겨우 며칠 전에 올린 인스타그램을 보고 찾아오기도 한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저자의 친구까지 합쳐 서른 명 남짓까지. 더 오면 벽을 터야 할 지경이라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으니. 그것보다 더 기쁜 일은, 저자의 생생한 현재를 만나는 일이었다. 책이란 게, 늘 몇 년 전 저자의 생각을 담고 있는 상황이어서 아쉬웠는데. <저자와의 대화>가 이런 기회를 선사하는 줄 몰랐다. 왜 포르투갈에 갔는지. 현재 무슨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Sea Sheperd라는 해양환경 동물단체의 활동을 소개. 아직 한국에서는 결성되지도 않은 단체이고, 동양인은 거의 없단다. 우리가 동물이나 환경에 대해 저지르는 만행을 보여주는데, 일순 숙연해지는 느낌. 풍문으로 들었지만, 정색하며 보지 않았고,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은 진실이었다. 40분 남짓, 인간의 민낯을 보며 잠시 정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할까? 탐욕스러운 육식을 조금 자제하며, 되도록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그런다고 우리 삶이 갑자기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질의응답의 시간에도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저자의 용기가 어디서 기인했는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같은 주변적인 질문이 주를 이루었지만. 발설하지 않는다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 않은가. 저자가 정성을 다해 그려주는 그림 사인을 받으러 긴 줄을 서면서, 모두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지금 이 순간은 이 방법뿐이니, 이렇게 저자의 활동을 응원한다고. 저자는 바다만큼 큰 폭으로 우리는 소소하게 실천을 다짐하고 있노라고.     


주말에는 늦게까지 책방을 열어두고 동네 사람들과 교류할 계획이었다. 나이 들수록 뇌에는 총량의 법칙이 엄격히 적용되는 것인지. 행사를 준비 하노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 것이다. 평소보다 일찍 문을 닫을 수밖에. 친구들과 골목 앞 맥주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시원한 맥주와 닭튀김의 조합 앞에서 갈등이 시작되었으니. 오늘 행사를 알릴 포스트를 붙여달라고 부탁했으니, 다른 곳으로 발을 돌릴 수는 없지 않으냐고 변명하면서. 잔을 부딪히며 잠시 신경 줄이 느슨해진 틈을 타 닭다리를 뜯었다.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와 누운 한밤, 혼자 자책한다. 오늘도 착하게 살기는 요원한 하루였으니. 무슨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태어난 건 아닐까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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