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내게 하는 선물

하반기 독서모임 공고를 창가에 내걸었다. 지금부터 내 관심사는 오로지 독서모임 회원 모집이다. 솔직히 말하면 책방을 연 이유도 토론문화 활성화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토론이 여럿이 하는 달리기 경주라면, 책판매는 일종의 몸풀기 정도. 서가의 책들은 뛰기 좋은 복장을 진열해 두었다고 할까? 그러니 책방에 들어온 누군가 공고문에 눈길을 주면 갑자기 촉수가 돋는다. 대놓고 관심을 표할 수 없으니 은근한 눈길로. 기회는 놓치지 않아야 한다. 어떻게 독서모임에 입문하게 만들지? 서가에 전시된 책을 골똘히 쳐다보다 드디어 한 권을 고른다. 계산을 하며 구입하는 책에 대해 몇 마디 말을 나누다 보면 독서 애정도가 조금 가늠된다. 이때다.


"책 좋아하시면 독서모임 어떠세요?"

"독서모임? 하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글쎄요. 잘할 수 있을지."

" 뭐 꼭 잘 해야 할까요? 그냥 재미나게 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 아, 그래요? 옛날에는 책을 좋아해서 꽤 읽었는데, 요즘은 거의 손을 놓아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어떤 식으로 하나요? 그리고 무슨 자격 같은 건 없나요? "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과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 물론 내가 흥미 있어 하는 사람은 전자이다. 전자를 나는 애독가라 부른다. 이 중에서도 책을 읽은 후의 행동에 따라 두 부류로 나눠진다. 혼자 미소 지으며 조용히 읽고 책을 덮는 사람과, 누군가에게 내가 읽은 내용과 느낌을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분으로. 이번에도 나는 이 분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런 분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뇌에 반짝 불이 켜진다. 이제 복장은 갖춘 듯하다. 어깨를 슬슬 풀고 목소리를 가다듬어야 하는데. 이때를 놓치면 안 된다.



" 자격이랄 것도 없습니다. 기본적으로는 한글 읽을 줄 알면 됩니다만. "

"그럼, 독서모임은 얼마나 자주 하는 건가요? 일주일에 한 번? 아니면 한 달에 두 번? "

"그리 자주 하지는 않고요. 부담 없이 한 달에 한 번, 한 권의 책을 읽고 모인답니다."

"한 달에 한 번? 그럼 책은 누가 정하고, 토론은 어떻게 하나요? "

"책은 제가 한 달 전에 선택해서 알려드립니다. 주제는 문학, 역사, 건축, 미술, 법학, 경제, 사회, 환경, 여행 등 다양하고요. 주로 한글 저자가 쓴 재미있는 책이랍니다. 문장이 유려해서 읽기 편하고 현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내용이 주를 이루지요."

"그런데 토론이라면, 말을 잘해야 할 것 같은데. 누구 앞에서 말 잘 못하는 사람도 괜찮을까요?"


토론이라니까 대부분 조금 겁을 먹는 것 같다. 언제 우리가 제대로 토론이란 것 해본 적이 있나? 그것도 재미있게 웃으면서. 누군가 시키면 내키지 않지만 쭈뼛쭈뼛 일어나서 말한 기억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잔뜩 긴장해서 머릿속은 엉키기 일쑤고. 정신없이 무슨 말을 한지도 모른 채 끝맺는 경우가 많다. 사실은 조금 정돈된 수다라고 할까? 어쩌면 책을 소재삼아 하는 대화이니 지적인 수다라고 하는 게 좋겠다. 수다라면 너무 가벼워 보일까 봐 토론이라고 한 것일 뿐.


" 책을 읽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있지 않나요? 이분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또는 이건 무슨 말일까? 의아해질 때도 있고. 도저히 이해가 안 되어서 혹시 내가 뭘 놓쳤나 싶어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어보기도 하고. 그렇게 겨우 한 권을 마치고 나면 그냥 덮기는 좀 아쉬운 감정이 드는 순간이 있지요? 북받치는 감동으로 때로는 뭔지 모르는 찜찜함으로.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싶지만. 딱히 말할 상대 찾기가 쉽지 않지요? 그래서 참지 못하고 학교 때 독서 좀 한 친구들을 만나면 책 얘기를 꺼내 보기도 하는데. 요즘은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진다)'된다 하더라고요."

"맞아요.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너무 진지하다는 말 가끔 듣거든요. 그러면 갑자기 외로워지기도 하고."

"독서모임의 필요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이 모여 수다를 떤다 생각하세요. 학교식으로 심각하게 책의 내용을 요약하고 발표하면 부담스럽고, 재미도 없겠지만. 그냥 자신의 느낌을 두런두런 대화하듯이 하면 되거든요. 뭐 그래도 영 내키지 않으면 입 다물고 가만히 지켜보아도 되고요. 말하겠다는 사람은 차고 넘쳐서 원래 모임은 두 시간인데, 한 번도 제때 마친 적이 없을 정도랍니다."

"혹시 회비가 있나요? "



회비의 액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얼마가 좋을까?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여태까지의 관례를 참고하기도 했지만, 적정 수준을 정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무료가 유료보다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다. 무료 강의는 부담없이 등록해서 그런지 슬그머니 그만두는 경우가 오히려 잦다. 돈을 들이지 않았으니 강좌에 집중하지 못하고, 소중함을 느끼지도 못하는 것 같다. 책방도 엄연한 사업이니, 뭐 현실적인 상황도 무시할 수 없다.


문제는 적정 수준을 정하는 일이다. 말은 굉장히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누구를 위한 적정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내가 한 노력의 어느 부분까지를 계산해야 할까? 하나하나 열거하기는 별 게 없는 듯하지만, 소소하게 복잡한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어쩌면 이건 자처한 일이니 앓는 소리를 할 수는 없다 치자. 그러면 독서모임에 참여하려고 지갑을 여는 사람은 얼마가 적정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생활수준으로 환산할 수 없는 복잡한 셈법이 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독서모임에 거는 열망만큼의 액수가 아닐까?


"주로 어떤 사람이 등록하나요?"

"주말반에는 아무래도 직장인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주중반은 다양한 분들이 모이는데, 주부나 프리랜서, 재택근무자가 주를 이루지요. 많지는 않지만 직장인 중에도 하루나 반일 휴가를 쓰고 주중반에 참석하는 분들도 있답니다. 제가 보기엔 이들의 만족도가 최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주중에 나와서 취미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은근 즐겁다는 표정이거든요.

"그럼 연령대는 어찌 되나요?"

"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합니다. 이점이 저희 책방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녀노소가 혼재해 있으니 같은 책을 읽고 굉장히 다층적인 분석을 한다 할까요? 직업도 경험도 천차만별, 얘기가 끊임없어서 모임 시간을 넘기기 일쑤랍니다. 이 골목에 사는 동네분들이 책방이 생기고부터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고. 무슨 얘기를 그리 재미있게 하느냐고 묻곤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독서는 혼자 즐기는 놀이이다. 할 말 많은 저자를 마음 내킬 때 조용히 불러놓고 그의 글에 귀를 기울이는 행위이니. 충분히 동의한다. 굳이 사람들과 어울려 말을 섞을 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묻는 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 않아도 되지만 하면 더 풍성해진다고 대답할까? 수학에서 말하는 필요조건은 아니지만 충분 효과가 있다. 단출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가끔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고 싶은 심정. 그와 얘기까지 잘 통하면 한없이 흡족해지는 기분과 비슷하다 할까?


또 하나, 내 입으로 말하지 않으면 잘 모르는 일이니, 굳이 덧붙인다. 혼자 읽다 보면 자꾸 같은 유형의 책을 고르게 된단다. 그래서 좋은 점은 그 분야에 일가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편향된 사고를 할 수 있다. 독서모임에 참여한 분들이 자주 토로하는 말, "선생님이 권하지 않았으면 절대 사거나 읽지 않을, 관심 1도 없는 분야의 책도 있다"라고. 덕분에 읽어서 사고의 지평을 넓힐 수 있었다고. 그리고 혼자는 몰라도 그냥 지나쳤을 부분들을 다른 사람과 얘기하다 저절로 깨우치게 되었다고.


독서모임은 누가 시킨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책을 읽어야 하고, 읽으면서 생각을 해야 하고, 그 생각을 나누고 싶은 열망이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여정에 오로지 내가 서있다. 지독히 자기중심적인 행위가 독서이고, 또한 독서토론이니. 그렇다면 독서모임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누가 결정해야 할까? 이 세상에서 나에 대해 가장 큰 애정을 가진 사람, 누구보다 오래 같이 할 사람. 바로 나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나뿐이다. 한 달에 한 권, 2시간, 나에게 하는 토론모임 선물 하나, 더 망설일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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